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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추억과 평양유람기

2018년 7월호(제10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8.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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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14]


냉면의 추억과


평양유람기


 

더운 여름 날 가장 많이 먹게 되는 음식은 ‘냉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잊지 못할 냉면의 추억이 떠올라 메뉴를 냉면으로 정했습니다. 필자는 2006년‘옥류관’의 냉면을 맛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2000년대 초 저는 평양에 있는 적십자 병원 정형외과 병동 개보수 사업과 평양 내 탁아소 물품지원사업의 후원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북경주재 북한 대사관에 들러 비자를 받고 고려항공에 가서 비행기 표를 샀습니다. 북한대사관은 북경주재 대사관들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과연 중국이 북한을 형제의 나라로서 예우한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평양으로 떠날 준비를 했지요. 우리가 탄 JS152비행기에는 2/3가 외국인이었는데 모두 주재원과 특파원들이라고 하더군요. 평양에 그렇게 많은 외국 사람들이 살다니…… 지금은 순안공항이 개보수를 하여 현대적 건물로 변화했지만 그 당시 평양 공항은 김일성의 사진이 상징적으로 게시된 2층짜리 단출한 건물 하나가 다였습니다. 약간은 을씨년스러울만큼 이용객이 적었고 비행기가 뜨는 요일에만 붐비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수속이 끝나고 공항에 차가 대기해 있었습니다. 안내원들이 꽃다발을 준비한 것으로 봐서 짐작 가는 곳이 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우리는 만수대로 향했습니다. 만수대는 평양에 입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찾아야만 하는 곳이죠. 뉴스나 사진에서 본 커다란 김일성 동상이 서 있는 그 곳입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의 경관을 잠시 보았죠. 나지막한 동산처럼 평양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난 생가인 만경대를 둘러보고 우리가 묵게 될 양각도 호텔로 향했습니다. 평양엔 생각보다 많은 호텔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호텔을 뭐에 쓰나 했는데 점점 중국인 단체관광도 늘어나서 호텔이 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양각도 호텔은 외국인 전용호텔로 주로 비즈니스 차 방문하는 외국인이나 외교사절들이 묵곤 합니다. 평양역 부근의 고려호텔이 80년대 완공되어 오래된 반면 양각도 섬에 새로 지은 양각도 호텔은 1995년에 완성된 특급호텔로 그 당시엔 시설이 깨끗했습니다. 이튿날 우리는 묘향산으로 향했죠. 묘향산을 감상하며 시원한 차를 마시는데 나무 냄새에 머리가 아찔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보현사를 들러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셋째 날 아침 우리는 이번 방북의 목적지인 조선 적십자병원 정형외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시골에서도 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들러서 치료받고 싶어 하는 곳으로 북한 내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은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엔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번 적십자병원 정형외과 수술실 개보수는 남측의 안세병원이 방북하여 북한의 디스크 환자들을 수술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열악한 수술실을 보고 개보수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 일이 추진된 것이었습니다. 수술실은 우리의 60~70년대 초 수준이었어요. 아니면 동구권의 60년대 수준이랄까? 예전 몽고의 열악한 수술실을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손 볼 곳이 많아 공사규모가 커질 것 같았지요. 


기술자가 병원을 실측하는 동안 우리는 ‘평양9.15주탁아소’로 향했습니다. 9.15주탁아소는 엄마의 직업상 출, 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가정의 자녀가 우선 입소 대상으로 엄마가 공훈배우이거나 특파원, 기자인 경우 입소가 가능한 탁아소였습니다. 두 살 반부터 여섯 살까지의 아이들 600여명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생활하고 주말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이곳 탁아소는 시설도 좋고 조건도 좋아 보이는 데도 물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다른 곳은 어떠랴 싶었습니다. 

넷째 날 우리는 평양 시내 관광을 했지요. 그리고 옥류관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맛본 옥류관의 냉면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양념 맛이 세지 않아 본연의 재료의 맛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슴슴하고 소박한 맛의 냉면이었습니다. 다시는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맛있었지요. 


내가 방북한 이후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되어 민간교류 뿐만 아니라 북한 돕기 통로가 일시적으로 막혔었는데 그 때의 순간순간의 노력이 합쳐져 미국과 북한의 회담 이후 핵시설 폐기, 기타 민간 교류의 움직임이 활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평양은 참으로 독특한 곳. 언제든지 가 볼 수 없는 비밀의 화원 같은 곳. 하지만 그 안에도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경쟁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도 해빙되어 봄바람이 불고 있으니 10년 전 방북했던 평양과 묘향산, 옥류관을 다시 한 번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때 방북을 통해 앞으로 저의 작은 힘이나마 이와 관련된 일에 계속 도움을 주고 싶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거창한 사명감과 목표를 가지고 참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현재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저의 작은 도움으로 그리고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북한 돕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뭐든 어떤 일이든 시작은 극히 미약한 법이니까요. 오늘따라 냉면이 참 맛있습니다.


 

예술의전당 미술부 과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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