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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은 식물, 질경이

2018년 8월호(제10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8. 1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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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사 이야기 23]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은 식물, 

질경이



 질경이만큼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식물도 드물 겁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풀, 질경이는 어디서든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그리고 수레를 두려워하지 않는 풀이라 하여 ‘차전초’(車前草)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어요. 질경이는 꽃이 작고 색깔도 튀지 않아 화려한 꽃을 찾아다니는 벌과 나비 대신 개미와 잎벌에게 꽃가루받이를 부탁했고, 사람들을 통해 이동함으로서 번식에 대한 고민을 해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친해야 하고 사람들의 이동 수단은 무엇이든 이용해야 해요. 수레바퀴에 묻어 이동한다는 것은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질경이가 가지고 있는 고도의 전략이지요. 그 뿐만 아니라 발에 밟히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서 주로 자랍니다. 혹시 산에서 길을 잃는다면 질경이가 있는 곳을 따라서 내려오면 인가를 만날 수 있다는 산악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만큼 사람들과 친하다는 이야기이지요. 


 사람들과 친한 이 식물을 북미 인디언은 ‘White man’s foot’이라고 불러요. 북미로 이주 하던 청교도인들이 약으로 쓰기 위해 질경이(plantago)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백인들과 함께 온 식물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질경이는 왜 밟혀도 죽지 않는 걸까요? 모든 식물들이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진화해 왔지만 질경이 또한 사람들의 발에 밟혀도 죽지 않도록 부드러운 잎과 질긴 주맥과 측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한 것은 외부로부터 충격을 당하면 꺾이지만 부드러움은 꺾이지 않죠. 우리네 삶의 모습도 그런 것 같아요. 강한 성격보다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들이 어디서든 융화되고 잘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묻어 어디든 편하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질경이는 바닥의 세계를 지배하는 대표 식물입니다. 키 큰 식물들처럼 햇빛경쟁을 위해 키를 키우려하지 않고 곤충들의 호객을 위해 화려한 꽃도 피우지 않는 질경이는 스스로 앉은뱅이 식물이 되어 안정된 곳에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아플 때는 약으로, 춘궁기에는 나물로 사용하도록 희생하면서 사람들의 힘도 빌리기도 하지요. ‘Give and Take’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 분수에 맞게 안정되게 살아가려는 질경이의 생존 전략입니다. 씨앗 뿌리에서 소복하게 잎이 모여 나는 질경이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어디서든 적응을 잘 하기 때문에 밟히고 밟혀도 또 다시 일어나는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는 식물이기도 해요. 다음 詩처럼 말입니다.




질경이에 대하여


                      장병연  



애초, 밟는다고 밟힐 풀이 아니다


그대의 등산화 속을 뚫고 지나

두근거리는 바짓가랑이에 얹혀

속도로 무장된 자동차 바퀴여도 좋다

육신을 통과하는 불안에 실려 

이동의 거리만큼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어디서든 밟혔던 먼 과거 속에

둥둥 떠다니는 무수한 이야기가 전해져

원하지 않는 웃음이 되고 아우성이 되고

뜨거운 여름을 토해 더 뜨겁게 달궈진 삶

점도를 높인 울음은 식도를 타고 흘러

흙을 적신다, 피가 쏟아진다



그러니,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 흉보지 말아라

초라한 이름도 자꾸 불러보면 정겨운 법이다






시인, 숲해설사 장병연
bomnae59@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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