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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휴전선 걷기 동행

2019년 1월호(제11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2. 1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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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여행기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3)]

아들과의 휴전선 걷기 동행




  전 생애를 통틀어 당신이 한 기도가

  “감사합니다.”한 마디라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에크 하르트(13세기 독일 신학자)


생의 끝에 감사함도 좋지만 출발이나 과정 중에‘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삶이 더 즐겁고 기쁘고 보람되지 않을까?

“우린 그렇게 출발했어, 그치 아들아?”

교동대교와는 달리 걸어서 강화대교를 넘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버스로만 몇 번을 건넜던 곳, 그 때마다 든 생각은 우리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몽골이 이 좁은 곳을 넘지 못 했다?’

역사는 가르쳤다. 지금의 강화대교 아래,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물살이 거세어서 해상에서의 전투를 해 본 적이 없는 몽골은 이 좁은 바다를 건너지 못 했고, 고려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고 이곳이 몽골저항지의 본부가 되었다.

‘과연 그런가? 그럴까?’당시 고려의 지배세력은 몽골을 피해 강화도, 이 작은 섬으로 피신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강화도 이외의 땅을 포기한 것이다. 백성을 포기한 것이다. 몽골에 내준 강화도 이외의 고려 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곳에 사는 우리 백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강화대교를 걸어서 넘는다. 자연스럽게 역사를 되돌아보는 길이 된다.

이어서 강화대교보다도 몇 배나 긴 일산대교를 걸어서 넘었다. 더 긴 이 강을 몽골은 넘었을 것이다. 몽골은 강화도 앞에 쳐들어 올 때까지 당시 고려 땅으로는 대동강을, 아직 우리 땅은 아닌 압록강을, 그리고 중국의 더 넓고 더 긴 강들을 넘었다. 강화도도 못 넘어간 몽골이 제주도는 어떻게 정복해 이백년을 넘게 지배할 수 있었을까?


역사를 되짚어보면 모순투성이이다. 고작 이 좁은 바닷길(강화와 김포 사이)을 포기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술적·전략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고려 조정을 강화도에 묶어놓고 그 이외의 한반도 땅 모두를 몽골 땅으로 복속시키고 유린했다는 사실이다. 고려를 무너뜨리는 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흔히 하는 말을 내 입으로 내뱉고 만다. 승자도 아닌 고려 위정자들, 그 이후의 기록에서 민족에 대한 당당함은 커녕 치졸을 넘는 야비함을 본다. 내 나라의 정치인에게서 말이다. 몽골에 대항한 저항역사는 당당함으로 치환시켜놓고 그들이 버린 민족을 그들만의 역사로 가르치며 세뇌시켜 놓았다. 내 나라의 역사이야기이다.

김시습의 시 하나가 떠오른다.

 

웃음을 터뜨리며


고금 역사를 살펴보노라니

웃음을 못 이겨 자꾸만 껄껄

나라를 그르치곤 말끝마다 협력하자

제 몸만 돌보면서 일마다 협력하자


김시습은 웃고 나는 운다.


울음을 터뜨리며


배운 역사를 돌아보며 걷다보니

울음을 못 이겨 자꾸만 가슴이 흐느적

그래도 내 나라인 걸 그래도 내 역사인 걸

어제 속아왔고 오늘 속고 내일 속을 것에

 쏟아지는 눈물 안에 비참함만 서린다.


출발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건만 두 다리가 뻣뻣하다. 마음이 몸을 짓눌러서 일게다.‘이러지 말자’하며 클라우스 노미가 부른 노래의 가사를 읊조린다.


‘그대 나를 아는가. 그대 이제 나를 아는가.’

(Do you know me, Do you know me now.)

웅얼대며 따라 부르는데 미국의 목사, 카일 아이들만이 내 잡념 안으로 끼어든다. 


‘쾌락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면 즐거움이 우리의 눈앞에서 증발해버리고 만다.’

‘쾌락의 역설’이라고 했다. 걷기로는 쾌락이 될 순 없다. 또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자각으로서의 역설이랄까.  

             

강화대교를 넘는 내내 내 자신이 수치스럽기만 하다.‘너도 별 수 있어?’하지만 자괴감은 때론 자각이다. 그대는 내가 되고 나는 그대가 된다. 그대 이제, 이제, 이제는... 걷고 걸으며 강화대교를 넘으니 이제(now)는 미래(will)가 된다.


“아빠. 곧 시간 내서 또 같이 걸을게.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하고 싶었는데 다시 또 걷고 싶어지네. 묘하게도. 걷기의 힘? 마력? 괴력? 자발적 고행이라선가?”


이제(now),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툭 던진 아들의 이 말 안에 미래가 담긴다.



또바기학당, 문지기(文知己) 오동명

momsal2000@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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