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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를 책으로 만들다. 세상에 없는 원화를 그대로 담은 책

2019년 1월호(제11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2. 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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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도전]


갤러리를 책으로 만들다. 

   세상에 없는 원화를 

그대로 담은 책



유화(실제 사람 이름^^)님을 처음 알게된 것은 2017년 12월 어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서였습니다. ‘28,000원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23점이 담긴 그림책을 받아볼 수 있다고? 음...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그림과 실제 인쇄된 책 질감이 얼마나 차이가 날지는 모르겠지만 28,000원이면 예술의 전당에서 포스터 사는 것보다 훨씬 싸니 한번 해보지 뭐.’ 그렇게 제 손에 도착한 갤러리북의 퀄리티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고가의 포스터에서나 볼 수 있는 도톰한 엠보싱 페이퍼에, 고흐 특유의 유화 붓터치까지 느껴지는 질감, 그대로 액자를 해 놓으면 예술의 전당에서 구입한 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책 덕분에 IT 개발자들만 가득한 저의 사무실은 고흐 미술관으로 변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실제 유화님을 만나 갤러리북 뒤에 숨어있는 지난 16년 동안의 스토리를 들어보았습니다.


갤러리북을 만들게 된 계기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그림을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벽에 걸려있던 것은 할아버지 사진과 괘종시계가 전부였지요. 그림을 볼 기회는 오로지 미술책밖에 없었습니다. 미술책에서 고흐도 알게 되고, 달리도 알게 되고요. 그런데 20대 후반, 처음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네전에 가서 원화를 봤는데, 그 때 느꼈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 왜 미술책이랑 이렇게 다르지? 왜 책에서는 감동이 없지? 그럼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책의 그림들은 원래 이 색감의 그림일까? 끊임없는 의문이 제 속에 들었습니다. ‘인쇄에서는 정말 원화처럼 표현 불가능할까? ’만약 지금 이 나이에 제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안되는거야 하고 말았을텐데 17년 전, 어렸을 때에는 뭔가 될 것 같은 열정,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 다니던 출판 회사를 그만두기 전, 45일 동안 독일에 가서 인쇄소 40군데를 다니며 물어봤습니다.(인쇄 선진국은 독일이거든요. 인쇄기의 대부분은 지금도 독일제 인쇄기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원화느낌 그대로를 살려서 인쇄해 본 적 있나요? 시도는 해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이런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을 아주 작은 인쇄소부터 큰 인쇄소까지 모두 다니면서 물어봤습니다. 아무도 없더군요. 독일조차도 시도해볼 생각을 안했던 것입니다. 굳이 인쇄가 아니더라도 이미 복제기술은 많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판화로도 가능하고, 직접 보고 그리는 것도 가능하고요. 지금도 판화나 이런 건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비싸다는 것이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나면 원화의 느낌과 아주 비슷하게 판매하는 것이 바로 판화입니다. 이렇게 판화로 제작한 포스터들은 한 장에 액자 없이 기본 5만원 이상 합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건 판화는 아니었습니다. 이건 어릴 때의 나, 시골에 사는 꼬마아이들 같이 아무나 볼 수 있는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어린 마음에 ‘내가 하면 이거 대박이겠다’ 생각이 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갤러리북 연구의 위기

회사를 4년정도 다니면서 나름 돈을 많이 모았는데 그 돈을 까먹는데 6개월도 안 걸렸습니다. 인쇄가 워낙 비쌌기 때문입니다. 인쇄기 한 대가 보통 10억이 넘는데 이걸 대여하면 기본 재료비와 인쇄기를 돌리는 기술자까지 한 번에 400만원이 듭니다. 한 번 테스트를 하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안되는 원인들을 분석하죠. 그리고 그 부분들을 보완해서 다시 또 테스트를 합니다. 또 400만원. 테스트 후 또 문제점이 나오니 보완해서 또 테스트를 하고... 이렇게 테스트를 하면서 내가 가진 돈 1억원을 모두 사용하고 빈털터리가 되는데 6개월이 채 안 걸리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연구할 수 있는 돈을 모으는데 집중했습니다. 원래 디자인을 했었으니 전단지를 시작으로 돈이 되는 건 뭐든 하면서 그 돈이 모이면 다시 테스트를 하고... 이런 연구를 5년 동안 했습니다. 
특히 34살 즈음에는 국내 유명 게임회사의 pc방 포스터는 제가 다 만들었었습니다. 그 때 한참 스타크래프트 붐이 일어나면서 pc방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길 때였는데 pc방 들어가는 입구에 포스터가 쫙 붙어있었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게임회사 포스터를 제가 만들었으니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겠어요? 그런데 그 돈을 벌면 또 연구하는데 들어가고, 벌면 또 들어가고... 어느날 그 게임회사가 어렵게 되어서 일이 끊겼습니다. 인쇄 기술 연구는 제 생각에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아직 완벽한건 아니라 갈 길이 먼데 큰 수입까지 없어졌으니,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건 안되는거다. 이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친구가 운영하는 pc방에 얹혀살면서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아무것도 안하고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요. 내 삶에 대한 회의. ‘내가 무모하게 왜 이걸 시작했는가 ’5년 동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제게‘바보 같다, 망상가일 뿐이다, 전 세계에 인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니가 하면 그 사람들도 다 한다’ 등 한 사람도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안되는 건데 내가 붙잡고 있었던 거야’하는 마음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 친구 pc방에 있으면서도 무작정 얻어먹을 수는 없으니 테스트할 때 쌓여있었던 그림들은 내다 팔았습니다. 대학로, 일산 호수공원, 한강 고수부지 등에 좌판을 깔아놓고 한 장에 5천원~1만원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프린트된 나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뭔가 보통 인쇄물과는 다르다는걸 알아봐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시 조금은 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해오던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안보였습니다. 운명처럼 그래도 이걸 계속 해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예전에  알던 출판사 사장님이 저를 끌어냈습니다.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데 유화씨가 해줬으면 좋겠다면서요. 그래서 1년을 쉬고 다시 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책을 만들면서 연구는 다시 시작되었지요.


인쇄소에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쫓겨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기억 중에 마산의 한 인쇄소에서 테스트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평일은 힘들다고 해서 어렵게 일요일에 테스트하기로 하고 새벽 1시에 종이, 잉크, 판을 차에 싣고 7시간을 걸려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인쇄를 준비하고 몇 가지 테스트를 한지 두 시간 만에 기장님이 청소하던 헝겊을 팽개치고 나가버리셨습니다. 잉크를 바꿀 때마다 인쇄기에 있는 가로 길이 1m가 넘는 고무롤러 수십 개를 다 세척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자동세척 기능이 없어서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기장)가 벤졸을 묻힌 헝겊(보루)으로 일일이 닦아야 했습니다. 테스트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잉크를 사용하다보니,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닦던 헝겊을 집어 던지고 못하겠다고 선언하신 것이죠. 업체에서는 돈은 안 받을테니 그냥 가라고 했지만, 준비한 재료비용까지 날리면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기장님을 붙잡고 2시간 넘게 사정해서 테스트를 했었습니다.

총 16년의 연구기간 중 8년 정도 되었을 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 제품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죠. 이때부터가 가장 힘든 자기와의 싸움 시작이었습니다. 내 스스로 만족하는 퀄리티에서 연구를 그만하고 그 정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으로는 부족하니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구를 이어갈 것인가. 그런 나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아이디어가 조금씩 떠올라 갤러리북은 서서히 만들어져갔습니다. 거의 10년이 다 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 후 5년을 더 진행하여 2017년 테스트 때 거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공정을 거쳐 좋은 퀄리티를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책이나 잡지를 만드는, 아주 단순한 공정을 거치면서 좋은 퀄리티를 내는 것이 드디어 눈앞에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명화의 원화 찾아 삼만리

갤러리북의 그림들에 원화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실제 원작을 찾아가서 그 느낌 그대로를 노트북에 맞춰와 구현을 합니다. 한 작품을 보는데 3일정도, 세 번을 확인하죠. 각각 다른 위치, 다른 방향, 다른 거리에서 확인해봅니다. 고흐의 1, 2권을 내기위해 원작들의 그림을 확인하는데 든 시간만 거의 두 달이 넘게 걸렸고, 비용도 3천만원정도 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정신 나간 짓이라고 이야기 하시죠.(웃음)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 어찌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림과 사진은 직접 원작을 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인쇄를 잘 하고, 모작을 정밀하게 그려도 절대로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 그림을 보았을 때의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명화를 보았을 당시의 느낌과 감동을 기억하는 것이죠. 갤러리북은 바로 거기에 집중합니다. 그 느낌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 그 감동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인정받다

2017년에 테스트가 끝나고 정말 이런 책이 이 세상에 없는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샘플을 들고 네덜란드에 갔습니다.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에 고흐 그림의 60%가 소장되어 있고,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30%의 고흐 그림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 미술관 담당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반고흐 미술관에서는 직원을 만나서 미팅을 했는데 이 곳에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오지만 고흐의 그림책을 이런 퀄리티에,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책은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뿌듯한 마음에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관장급의 미술관 책임자를 만났는데 그 분이 미팅을 하면서 제가 만든 샘플을 두 시간 내내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면서요. 그리고 영어버전이 나오면 꼭 뮐러 미술관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말 이 때의 감동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지난 시간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는 듯 했죠. 


우리 아이들도 유럽 아이들처럼 


미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 음식, 건축, 거리 등 이 모든 공간과 삶 속에 미술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레 주변을 둘러보면 미술을 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들은 미술을 싫어하게 되지요.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우리는 미술을 접할 때 ‘이 화가의 이름은? 작품의 이름은? 미술사조는? ’명화가 명화로 보이지 않고 하나의 수학문제 같은 개념으로 자리잡아버렸습니다. 마치 영어단어를 외우듯이 말입니다. 그런 편견들을 깨고 싶습니다. 어떤 책을 만들어도 책에 있는 그림의 퀄리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가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퀄리티와 감동을 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갤러리북을 한국에서 꼭 이어가고 싶은 이유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이러한 명화에 적응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유럽의 아이들에게는 이미 어릴 때부터 명화가 삶의 소금같이 배어 있습니다. 그 수많은 미술관에 유치원 때부터 드나들며 그런 명화를 볼 기회가 엄청나게 많지요. 그리고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창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없을까요? 갤러리북 첫 번째 책을 만들고 나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주변의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그림에는 관심도 없던 아이가 우리 책의 그림을 보고 예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미술을 향한 눈이 하나 둘 띄어져 가기를 소망해봅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

나는 과연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고민 합니다. 내가 세상에 남긴 돈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도 돈은 한 푼도 물려주지 않으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내가 행하는 행동은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을까요? IT가 더욱 빨리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멀리하는 시대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책을 만들다가 죽고 싶습니다. 갤러리북이든, 동화책이든, 사진집이든 말이죠. 책은 10년, 20년, 아니 100년이 흘러도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나의 열정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종교는 없지만 하나님한테 항상 기도합니다. ‘지치지 않게 해주세요.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가장 힘든 건 여기에서 포기하면 내 자신이 편합니다. 16년 동안 한 우물만 파고 이것만 연구했으니 일반적인 상업 인쇄도 아주 좋은 퀄리티로 가능하죠. 그렇게만 일해도 충분히 먹고 사는 건 크게 걱정이 없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런 상태였기에 악마의 유혹처럼 항상 제 자신과 싸웁니다. 이게 나의 꿈이고, 내가 사는 이유입니다. 힘든 순간이 1년에 몇 번씩은 고비로 찾아오는데 그 때마다 이걸 내가 왜 하는가 생각합니다. 인터넷 서점에 마치 나를 아는 것처럼 달린 댓글이 있습니다.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 글을 볼 때마다 어떻게 내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이렇게 알까 싶죠. 그런 응원들이 힘이 됩니다. 결국 내가 이렇게 계속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내가 만든 것을 좋아해주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19년도엔 미국에서도 영문판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데요. 그 때는 10권이 팔리면 한 권은 이 책을 절대 볼 수 없는 나라에 보내려고 기획중입니다. 정말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명화 같은 책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유화컴퍼니 대표 유화
gallerybook@naver.com
www.facebook.com/uhwacompany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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