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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소는 참~ 행복하겠다! ‘이천한우 새봄농장’ 김성진, 김나연 부부를 만나다

2019년 4월호 (11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5. 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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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이곳에 있는 소는 참~ 행복하겠다!
‘이천한우 새봄농장’ 김성진, 김나연 부부를 만나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 목축업 하는 분을 소개하기는 처음입니다. 가축분뇨 냄새, 구제역 등을 떠올리며 경기도 덕평에 위치한 ‘이천한우 새봄농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도착해서 축사 가까이 갔는데도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깨끗하고요. 농장을 둘러보며 구제역 한번 없이 한우 300마리를 키우고 있는 이 농장의 비밀이 뭘까? 궁금했습니다. 또 젊은 부부가 축산과 관련해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부부가 아닌 동료로서 농장을 어떻게 운영해 가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부부가 건국대 축산학과 선후배로 만나셨다고요
흔한 이야기지만, 복학생과 재학생 관계였죠. 복학생은 재학생, 특히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있지만, 재학생들에게 복학생은 관심보다는 경계의 대상이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고 특히 저희 축산학과는 남학생 위주여서 거칠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여느 복학생 같지 않아서인지 먼저 관심을 보이고 다가가 자연스레 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 방향을 향해 같이 가는 동료입니다.

두 분이 석, 박사 과정에 자녀 키우랴, 목축사업까지 엄청 바쁘셨을 것 같은데요. 목축업을 계속하겠다 결심한 것은 단순히 축산학과를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목축분야가 가장 자신 있고,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최근입니다. 공부하면서 알고 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석사 졸업이후에는 사료업계 대기업에 입사하여 도시적인 삶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결국 가업을 잇기로 다시 마음을 잡았지만요. 특히 2010년 구제역 사태 이후 한우산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국내 축산업의 불안정성에 방황도 하고, 언제든 축산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체험농장도 준비하고 애견카페도 운영했었죠.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수록 제가 설 수 있는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힘들지만 내가 꾸준히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는 결심에 목축으로 방향을 다시 정하고 이 일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40대 중반인 제게 제일 행복한 게 뭐냐고 물으면 지금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힘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밖에서 활동하다보니 노동의 강도가 세고, 가축이 죽거나 하면 의도치 않게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목축업을 하는 분들이 가축 사양과 목장 운영에 다양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리는 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공부를 할 때에는 우리 스스로의 내재적 가치를 만들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부부가 공부한 명확한 이유가 생긴 것이죠.

그렇다면 두 분이 목축업 하는 분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은가요?
(남편) 우리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 운동으로 1시간정도 걷습니다. 이때 걸으면서 대화를 많이 합니다. 인생의 방향, 그날 할 일, 소 키우는데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목축업 하는 분들을 도와줄까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보여주고 말로 전달하는 게 제일 빠른 것 같아 작년부터 매주 유투브로 ‘송아지의 사망률’줄이는 법에 대해 올리고 있습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바로 어린소가 죽는 겁니다. 미국은 4%정도의 사망률이지만, 몇 만 마리 목축으로 워낙 규모가 커서 이 정도 비율이면 잘 키우는 겁니다. 이것을 보고 ‘난들 못 하겠냐’하는 도전의식이 생겨 우리나라 사정에 맞춰 체계적인 방법을 시도하며 도입했습니다. 우리 이천 ‘새봄농장’은 소 사망률이 2017년 2%, 2018년 0%였습니다. 보통 100마리 목축 한다고 했을 때 통계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망률이 높았지요. 어떤 경우는 1/3정도 죽기도 합니다. 체계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으로 키우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부분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 과정을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 서울대학교와 함께 연구도 하고, 건국대학교나 한국농수산대학에서도 실습학생들을 보내어 저희 시스템을 견학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인) 저는 일반 반려동물과 유기견의 실태연구, 즉 유기견의 건강 및 위생상태와 유기견이 어떻게 행동을 표출하는지를 통해 감정상태를 분석하고 결과를 종합해 유기견의 입양 가능성에 관한 석사논문을 썼고, 농장 동물의 행동과 동물 복지로 박사학위를 했습니다. 동물에게도 5대 자유가 있습니다. 1)배고픔,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2)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3)고통, 상해,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4)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5)정신적인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인데, 이런 복지가지켜졌을 때 그래도 소를 잘 키웠다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적어도 ‘내가 먹는 고기가 행복하게살다간 고기였으면 좋겠어’ 라고 사람들은 생각할것입니다. 저희 농장에서는 이 5대 자유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소들이 아주 순둥이 같더라고요. 웃음)
(남편) 와이프와 같이하며 좋은 것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에 있어 가장 좋은 선생님이죠. 서로 물어보고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일을 진행할 때 어느 누구보다도 대화를 통해 사고의 확장이 빨리 됩니다. 단지 의견 충돌이 있다면 자녀를 대하는데 있어 저는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강하고 엄하게 어필하는데, 엄마는 부드럽게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접근하려 하는 것이죠.

본격적으로 목축사업을 하면서 목축에 대한 전문연구들을 많이 하셨을텐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효율적으로 소의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말하면 어떻게 제한된 시간 내에 소를 잘 키워 제대로 소의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느냐는 것이죠. 2004년도에 농장에 들어와서 2~3년 현상유지를 하다가 농촌진흥청 연구과제 공모에 채택되어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사료 비용도 낮추고 소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박사학위도 함께 병행했습니다.

이 일이 쉬운 게 아니었을 텐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었고, (사실 일반사람들은 구제역정도 알고 있지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남편) 2010년도 구제역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면서 그 당시 상당량의 소를 매장했습니다. 물론 정부에서도 지원을 했지요. 하지만 보상받지 못한 농가들은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져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농장이 전반적으로 많이 위축 되었죠. 다행히 저희 농장에서는 구제역이 없었어요. 2010년 구제역 발생 당시에도 이 지역만 없었습니다. 한 마리도 걸려 본적이 없어요. 운도 있었지만, 발병하지 않게 하는 백신, 방역을 잘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구제역이 혼자서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혼자서만 잘해도 됩니다. 백신, 방역 중 더 중요한 것은 백신인데, 백신을 한다는 것은 구제역 청정지역을 포기 한다는 겁니다. 국가 자체가 우리는 구제역 상시국가이니 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 국제수역사무국 - 가축의 질병과 그 예방에 대해 연구하고 국제적 위생규칙에 대한 정보를 회원국에게보급하는 국제기관)규제를 받겠다는 것이죠. 여기에 규제를 받게 되면 수출입에 문제가 생겨 발굽이 두개로 갈라진 소, 돼지, 염소 등을 수출 할수 없습니다.저희 농장에서는 키우던 소 중에서 결핵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핵이 발생하면 입식을 못 합니다. 즉 소를 사오지 못 한다는 거죠. 고급육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아 좋은 성과도 많이 있었고 전국 랭킹 안에 들어갈 정도의 농장이었지만, 이 일 때문에 번식을 하지 못해 운영자체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입식을 못해서 6개월 동안 소를 못 사 들이니 농장이 스톱되어 소를 다 팔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송아지를 사오지 않고 모두 직접 생산하였습니다. 외부 전염병위험으로부터 목장을 지킬 목적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죠. 당시 적극적인 노력이 지금은 규모 있는 송아지 생산목장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인) 결혼해서 남편은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매일 아침에 나가 농장일로 밤늦게 들어오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을 했었죠. 한밤중에 볏짚을 실은 화물차에서 볏짚을 내리다 낫으로 손을 찍어 두 손가락의 인대가 끊어져 수술하고, 손을 재활하기위해 색소폰을 불기도 했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지치기도 했습니다.
(남편) 심리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이 목축업을 하셔서 이 일이 굴레로 다가왔습니다.‘아! 여기에서 벗어나기 힘들겠구나!’이 절망감이 긍정적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즐기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둘이 수시로 상의하고, 삶의 여유를 갖되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 즐기게되더라고요.(웃음)
(부인) 저는 굴레라기보다 원하는 일을 해서 굉장히 좋았고, 잠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돌이켜보면‘정말 이 일 밖에 없구나’하면서 더 열심히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2010년 즈음 한참 구제역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물에 대한 강의도 하며 애견카페도 시도했었죠. 하지만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는것을 깨닫고,‘다시 목축으로 돌아가 끝까지 가보자’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목축업으로 끝까지 간다’라는 생각을 하고 난 이후의 삶
(남편)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 등을 시도하면서 이 분야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축사를 운영하는 사람들, 연구하는 사람들, 이 일의 관련자들이 저를 찾아오더군요. 학생들 강의 뿐 아니라 유튜브로‘김박사의 한우 이야기’로 저희 농장의 송아지 사양방법을 소개하는 동영상 강의도 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부인) 저도 동물의 행동, 가축복지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제 자신만의 철학을가지고 가게 될 때, 미미하더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갖는다면 충분히 가치가있는 거겠죠.
(남편) 같이 한 길을 가면서 현장에서 공부하고, 그것을 공유하고 넓혀가는 것이 큰 즐거움입니다. 아마 제가 잘나서 바로 축산학과 교수가 되었다면, 이런 즐거움은 몰랐을 것 같아요. 조금 모자라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웃음)

성공 사례
저희 농장은 크지는 않지만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축에 속합니다. 매년 투자를 했고 현재도 투자진행형입니다. 매해 소를 늘려가며 축사를 지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축사가 2~3동 이었는데, 지금은 7동 정도 됩니다. 전체 소가 300마리로, 시작할 때보다 300~500%커졌다고 봐야죠. 일하는 사람은 정식 직원 1명과 실습생 2명, 저희 부부입니다. 비육(소, 돼지, 닭 등 식용으로 이용할 가축을 살찌게 키우는 일)을 할 때는 매출이 크게 생기지만 자금 회전주기는 2년입니다.하지만 번식 할 때는 송아지를 팔기 때문에 연간전체 매출이 비육할 때의 반 정도지만 자금회전은 1년입니다. 결국 그게 그거죠. 경영비 등 모든 것을 제하고 순수익이 발생하면 다시 이것을 재투자합니다. 하지만, 투자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최근 환경규제로 인해 가축 사육제한에 대한 법규들이 생겨 확장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죠.

한국 축산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사람들의 인식 문제가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생산자인 축산업자는 생산과정에서부터 어떻게 생산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생산물을 내기까지 자신의 철학을 담고 키워야하는데, 아직은 규제를 쫓아가기 급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소비자는 제대로 된 농축수산물을 먹기 위해 무조건 싼 것이 아닌, 제대로비용을 지불하고 먹겠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정부가 꼭 해줘야 한다기보다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들의 문화적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소비자들이 생산자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고‘이 사업은 없어져도 돼! 옆에 있는 나라에서 수입하면 되지!’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에서도 이렇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돼지 키우는 것을 동남아로 다 옮겼는데 제품에 대해 믿음이 생기지 않고, 질병조절 등 컨트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꼭 축산 뿐 아니라 모든 농업분야도 마찬가지겠죠. 전에 있었던 배추 파동처럼 되지 않기 위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에 대한 업적적, 인식적 가치부여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새봄농장’에서는 소 300마리를 키우는데도 냄새가 별로 나지 않은데 그 비법은?
소와 같은 반추동물(되새김동물) 자체가 다른동물보다 분뇨냄새가 적은 이유는 소화률이 높기때문입니다. 단위동물(위가 하나인 동물)하고는 다르지요. 이천시의 농업관련 사업 중 EM을 농가에 보급해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 유산균, 고초균, 효모를 사료에 매일 넣어 배합 해줍니다. 또 한 가지는 BMW(Bio Mineral Water)활성수를 가축에게 먹이고 작물에게 뿌려주고 있습니다. 이천시가 BMW 활성수를 도입해 농가에 무료로 나눠 주어 저는 이것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들에게 영양분 사료를 줄 때도 과하지 않게 주고, 분뇨는 법적규제 안에서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축산업 가운데 우리가 배울만한 제도를 갖춘 나라는 어딘가요?
주로 우리 한우 산업은 일본을 답습하는 형태입니다. 먹는 문화, 생산하는 법, 정부의 지원정책등 말이죠. 이제는 이것을 벗어나서 우리나라만의 색깔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네덜란드는 땅도 작고 규모도 작지만 축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해 돼지나 낙농을 수출하는 환경입니다. 미국과 같이 넓은 공간이 아닌 우리와 유사한 제한된 공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네덜란드를 모델로 삼았으면합니다.

이천한우 새봄농장 김성진, 김나연부부

후배 영농인들을 위한 한 마디
제 자식, 후배들, 저에게 조차도 항상 말하는 것은 ‘절실함’입니다. 내가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거든요. 지금은 행복하다고 하지만, 저도 그전까지는 절실함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계기는 2010년 구제역 파동 후, 저의 입지가 줄어들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한 권의책을 읽으면서입니다. 바로 김병완의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 라는 책이었습니다.‘생각이 바뀌면 태도가 바뀐다’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한마디로 40세에 환골탈태하라는 말이었습니다. 40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가장 필요한 게 뭘까를 생각하니, 제 스스로 바뀌고자 하는 절실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소 관리하는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현재는 외국의 앱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앱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IT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며 의견을 나누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앱이 잘 개발되어 목축업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미세먼지에 밖에 있는 소들은 어떡하냐고 하니사람도 극복을 못하는데 어찌합니까? 하고 웃으며 하는 말씀“안타깝죠.”이 한마디에 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요즘 송아지 분만이 많다며 바쁘다는 부인 김나연 박사의 말은 즐거운 비명 같았죠. 우리나라 목축업 현장을 든든히 버텨 줄, 새봄농장 두 주인장이 키우는 소는 참 행복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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