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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반년살이,독일 교환학생 라이프

2019년 4월호 (11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5. 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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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 이야기]

시골마을 반년살이, 독일 교환학생 라이프

 낭만과 현실 그 언저리, 교환학생

 동아리, CC, 미팅 등 대학생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수험생 시절 가장 꿈꾸고 그리던 대학생의 특권은 교환학생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직접 살아보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 유럽풍 캠퍼스를 내가 거닐 수 있다니. 당시에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교환학생 지원을 결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교환학생 지원 시, 학점과 토플 IBT 점수를 함께 제출하는데 고고익선입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 1지망부터 최대 7지망까지 희망하는 국가와 대학교를 적어 낼 수 있습니다. 저는 유럽을 가고 싶어서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다양하게 적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독일은 생필품 물가가 저렴하고, 유럽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여행하기 좋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저는 학점이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일을 2지망에 찔러보듯 넣었는데 운이 좋게 붙었습니다. 사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것도, 꼭 독일을 가야겠다는 것도 아니었기에 합격하고 나서야 이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이히리베디히‘( Ich liebe dich’)가 독일어로 ‘I love you’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때 즈음이었죠.
여행을 하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영어실력 향상 등 교환학생을 가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10년 동안 지겹게 배워온 영어 대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으로 자주 언급되는 독일이라는 국가는 과연 어떤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영어로 대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서, 독일어를 내 영어 수준만큼 끌어올리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단순히 의사소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어에 녹아들어간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범위만큼 내 세계도 확장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독일어는 독일 외에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도 사용하니 얼마나 나의 세계가 넓어질까요? 또한, 여러 산업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수십 개에 이르는 독일의 기업 문화, 전반적인 시민 의식, 교육 제도 등 여행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짧은 시간이지만 독일에서 직접 살아 봄으로써 깊게 느끼고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독일은 원래 이런 곳이었다?

 저는 막연히 유럽이, 특히나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이 마냥 완벽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독일에 대한 이런 로망은 독일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처참히 깨졌습니다. 그 시작은 한국에서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독일 공항에서부터였습니다. 시간이 늦어 하룻밤 묵기로 한 지인의 집으로 가야 하는데, 기차가 40분이나 지연됐습니다. (독일에서는 도시끼리 기차로 연결되어 있어 지하철만큼 기차를 많이 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이 10분만 지연되어도 뉴스에 뜨고 난리가 날 텐데, 같이 기다리는 독일 사람들은 익숙한 듯 전혀 화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피곤해 죽겠고 빨리 침대에 눕고 싶은데 이렇게 기차가 늦다니, 나만 억울해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시간 관리가 철저할 줄 알았던 독일에서 열차 지연은 아주 다반사로 발생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 더, 독일은 노동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노동자의 권리가 잘 보장된 국가입니다. 평균 6개월인 Probezeit(수습기간)을 문제없이 패스하고 나면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노동자를 해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관료주의가 굉장히 심하고 시간 압박에 크게 쫓기지 않기 때문에 행정 처리가 말 그대로 세월아 네월아입니다.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경우는 하루에 4시간만 여는 날이 잦고, 평일임에도 업무를 하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럼 자연스레 행정처리가 느려지는 결과가 초래되는데, 한국은 20분이면 끝날 계좌 개설, 카드 발급을 독일에서는 계좌 개설 약속을 따로 잡아야 하고 카드까지 수령하려면 족히 한 달은 걸립니다. 빨리빨리 민족인 우리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이죠. 한국의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가 너무 그리운 순간이었습니다. 마트 같은 경우도 오후 9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아예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깜박한 것이 있거나, 출출할 때마다 친구들과 종종 가던 24시간 편의점은 독일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맛 없기로 유명한 독일 음식의 명성은 익히 들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맛을 보니 깜짝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독일에 도착한 후 둘째 날, 독일 남부 지방의 전통적인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서 주 요리 2개와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처음 현지에서 맛보는 독일 음식이라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함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나온 음식을 맛보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주방에서 요리사가 실수로 소금통을 엎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짰습니다. 맥주로 입을 헹구고, 두 번째 요리를 먹는데 이 음식은 밍숭맹숭하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혹시나 이번엔 다를까 하는 마음으로 도전한 독일 음식에 연거푸 실패를 하고, 음식에는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시안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한식만 주구장창 해먹었습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면 자취학과를 자동 복수전공 하게 된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웬만한 한식은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순댓국이나 감자탕같이 국물이 들어간 요리들은 쉽게 만들 수가 없어 항상 간절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튀빙겐(Tübingen)

 헤르만 헤세가 일했던 서점, 괴테가 토했다는 간판이 붙어있는 집을 찾을 수 있는 곳, 독일의 튀빙겐(Tübingen).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에 속해 있는 튀빙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렇게 나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6개월 살게 되었습니다. 튀빙겐은 메르세데스 벤츠, 보쉬 같은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대도시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처 음 도착해서 본 튀빙겐은 정말 동화같이 아름다웠고,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살았던 저는 항상 작은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서점과 개인 카페로 가득한 거리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튀빙겐은 대학 도시라고 불리는데, 도시 전체에 대학교 건물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지역 주민이거나 학생입니다. 특히 독일에서도 국제 도시 중 하나라,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아, 아시아인도 상당히 많아서 길거리를 지나가도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신기하게 바라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튀 빙겐으로 교환학생을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튀빙겐 대학교에는 한국학과가 있어 한국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고 서로 언어를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학과에서 할로윈, 설날 행사 등 여러 가지 이벤트를 주최하는데 그 중에서도 탄뎀(Tandem)과 AG 프로그램은 매우 유익했습니다. 탄뎀은 언어 교환 파트너 제도인데 나는 한국학과 3학기인 독일 친구에게 한국어를 알려 주고, 그 친구는 나에게 독일어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튀빙겐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4학기부터 한국으로 1년간 필수 교환학생을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가게 될 한국의 대학교에서 온 한국 교환학생을 파트너로 매칭시켜 줍니다. 단순한 언어 교환을 넘어, 한국에 가서도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죠. 그리고 AG는 갓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제나 학습을 도와주는 튜터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두 명의 학생을 맡아,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꾸준히 만났는데, 한국어 이외에도 한국의 수능, 교육제도, 독특한 미신, 최근 사회 현상, 페미니스트 이슈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소개해 주었습니다.
독일에서 살면서 튀빙겐 이외에도 베를린, 드레스덴 같은 유명한 대도시도 많이 여행했습니다. 여행 중에도 며칠만 지나면 이 심심하고 작은 도시가 금방 그리워졌습니다. 제 2의 고향 같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풍경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넥카강 다리, 자주 가던 베이커리, 카페, 어제도 마주쳤던 사람들 모두 튀빙겐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독일에서의 삶이 마냥 맑았던 것은 아닙니다. 외로움이 문득문득 찾아올 때도 있었고, 몇몇 독일 사람들의 아시아 문화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무례한 언행들에 화난 적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본 독일은 장점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미세먼지가 없는 깨끗한 하늘, 어릴 적 시골에서만 볼 수 있던 밤하늘을 가득 덮은 별, 처음엔 다가가기 힘들지만 친해지면 깊이 마음을 터놓는 독일 친구들, 외국인까지 누릴 수 있는 무상교육 혜택, 사람이 우선시되는 직장 문화, 저렴한 생필품 물가 등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교환학생이 끝나갈 무렵, 나는 휴학을 하고 독일에서 6개월 더 살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일어도 확실하게 배우고, 기회가 된다면 여기에서 인턴으로도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영어와 비교했을 때 독일어는 확실히 배우기 까다롭지만, 같은 게르만족 언어 뿌리라 배울수록 어휘가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처음엔 딱딱하다고 생각했지만, 배울수록 부드럽고 시적인 표현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정복해보고 싶을 정도로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언어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좁은 한국에만 있기에 내가 가고 싶은 세계는 넓었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상하관계, 은근한 야근 장려 문화, 직장 상사와 내키지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회식 등 부정적인 한국의 직장 문화 속으로 선뜻 발을 내딛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팀원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 정해진 근무시간에 최대한 몰입하여 일을 끝내고 야근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여성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존중받고 보호되는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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