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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받았으니, 나눠줘야죠.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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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기]

나도 받았으니, 나눠줘야죠.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에 20년째 살고 있는 한국인 아줌마입니다.
1999년 남편의 이직으로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둘째는 유치원 때 일본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일본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일본어를 몰라 학교 공부를 도와주지 못하면 어쩌지?’라며 노심초사했으니까요.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각 구청마다 외국인들을 위한 일본어 교실이 일주일에 세 번씩 있더군요. 프랑스나 영국 등 이미 외국에서의 힘든 경험을 한 일본인 자원봉사들이 일본어를 가르쳐 주는 제도였습니다. 그분들이 일본인의 잔잔한 일상을 통해 일본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자원봉사가 무엇인지를 잘 몰랐던 그때 참 소중한 가치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단시간에 일본어를 익힐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일본 분들과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일본어를 포함해 여러 교육 문제로 많은 걱정을 했는데 고맙게도 PTA(Parent-Teacher Association)를 통해 한국인으로서 현지 일본인과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이분이 직접 학교 수업도 같이 들으면서 아이에게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더구나 교육청에서는 전문 일본어 교육과정 중에 있는 동경대학원 한국유학생을 섭외해 따로 교육을 시키는 등, 한국이란 낯선 땅에서 온 학생 한 명까지도 배려하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사람들 덕분에 감동을 받으며 저희 가족은 일본 생활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에는 한류 붐이 있기 전이라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는 못하는 상황이었고, 저나 남편이나 80년대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성공에 대한 강 한 생각으로 “이방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가려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라며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일본 속에서 한국 문화만 통용되는 가정이 어쩌면 제일 적응하기가 힘든 곳이었을 겁니다.

일본인들은 감정적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나라 전체가 안정적인 삶이라, 굳이 남들과 비교 경쟁의 삶을 살기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삶을 즐기고 누리는 당당함이 보여 참 좋았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의 남을 배려하는 교육은 비교 경쟁이 삶의 기준이었던 저희 세대의 눈에는 삶의 풍성함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이런 여유로운 일본인들 속에서 저의 굳고 강한 표정들이 점점 부드럽게 변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한 가지 놀란 점은 일본인들은 누군가를 사귀게 될 때 저 사람이 내 친구가 될 것인가 아닌가를 미리 잰다는 것입니다. 첫아이를 가르쳤던 일본어 선생님이 지금은 저의 양부모가 되었지만, 연을 맺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습니다. 저를 2년 동안 지켜보고서야 자신의 집과 생일에도 초대하고 어디 놀러 가자며 제안도 하더군요. 2007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저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현지인 보증인이 되어 주고, 좋을 때뿐 아니라 힘들 때는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면서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이 많아 금방 친구가 되고 또 상대가 싫으면 쉽게 헤어지지만, 일본인들은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한 번 맺은 관계는 상대의 단점이 보여도 끝까지 가는 신의를 지키는데 이런 점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동안 제가 받아왔던 많은 것들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인재 컨설팅 사업부’에서 한국청년들을 일본 회사에 취업하도록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청년들이 일본 회사에 내정되기 전후의 케어도 담당하고 있지요. 거주해야 할 집도 알아봐 주고 청년과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도 하면서 말입니다. 회사에서는 개인 돈과 시간을 쓰면서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지만,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일본인들에게서 받은 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나누고자 하는 감사의 마음 때문입니다.

이방의 나라에서 그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그 여유와 풍요로움을 배워 남에게 흘려보내는 소중한 가치를 계속 간직하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려 합니다.

(주)글로벌 로드 김미영
mykim@kankoku.co.jp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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