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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변신>누가 더 벌레 같은 존재인가?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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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변신> 누가 더 벌레 같은 존재인가?

만약 내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다면?
‘내가 벌레로 변한다...’ 도무지 어떤 기분일지, 좀처럼 상상이 가지는 않지만 분명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이런 내용을 진지하게 소설로 만든 작가가 있으니 바로 ‘카프카’(1883~1924, 오스트리아-헝가리 령의 프라하 출신의 유대인)입니다. 얼마 전 그의 소설 ‘변신’(變身)을 연극으로 보았습니다. 미리 책을 읽어 보았기에, 과연 글 내용을 어떻게 연극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해 낼까 궁금했습니다. 특별히 연극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어떤 모습을 하고 나올까(유치하게 커다란 더듬이 같은걸 달고 나올 것 같지는 않았죠) 사뭇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모습은 단순했습니다. 변하기 전에는 옷을 입었는데, 벌레가 된 후에는 윗옷을 벌거벗고 나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무대 세팅도 아주 간단해서 가족들이 앉을 의자와 놀이터의 구름사다리 비슷한 철재로 된 구조물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곰곰이 생각하는 가운데 조금 더 새로운 각도로 내용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짧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벌레가 된 주인공, 도구가 된 인간의 비참함
벌레로 변한 한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 가족 안에서의 이야기는 소설이 쓰여졌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주인공인 그레고르가 집안의 가장역할을 하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의 가족들은 그를 의지하며 고마워했습니다. 하지만 벌레가 되어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의 태도는 돌변합니다. 단순히 징그럽고 더러운 벌레라는 외모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돈을 벌어 오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레고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직장상사가 집까지 찾아와 그를 의심하고 회사에 나오지 않은 그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이런 모습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인간은 돈을 버는 기계, 사회가 돌아가는데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쓸모없는 도구로서 가족과 사회 속에 소외되어 사라지는 인간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변신>>을 소설로 읽거나 연극을 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공감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누가 더 벌레 같은 존재인가?
그러나 이번 연극을 통해서, 특별히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벌거벗은 존재’로 표현한 것은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동물(벌레)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변한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냉혹한 시선 속에서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발견해 갑니다. 그러기에 ‘벌거벗음’은 곧 벌레같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정직한 드러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반면에 그의 가족들은 겉은 멀쩡하고 옷을 걸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은행경비 유니폼, 주부로서의 어머니의 옷, 예쁘게 차려 입은 여동생의 옷들은 주인공의 벌거벗은 몸과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옷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과 말은 너무나 악하고 이기적이었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오빠를 향해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속마음을 쏟아놓는 여동생의 모습은 벌레보다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서두에 ‘만일 내가 벌레가 된다면?’이라는 질문이 조금은 실감이 되는 듯합니다. 세상이라는 쳇바퀴 속에 그저 매일 매일을 반복하며 의미 없이 살아간다면 어쩌면 나도 주인공과 같은 벌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마치 인생이고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거나 잊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레고리의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고3 한수정
hannah0112@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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