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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에서, 사람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로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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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에서,
사람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로

 

사회복지사로 돌아오기까지
‘인천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 김윤재.’ 현재의 저를 소개하는 말입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서버 엔지니어로 5년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객들이 구입한 서버에 리눅스나 윈도우 서버 운영체제를 설치해주고, 운영 도중 생기는 문제들을 관리해주며 유지 보수를 했습니다. 서버 엔지니어도 처음에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고장 난 서버를 고치는 일을 많이 했는데 제 자신이 고쳤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재미도 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일을 하는 것이 저에겐 힘이 들었습니다. 금융업무나 게임 등 대부분의 서비스는 사용자들이 적은 밤에 서버 점검을 하는데, 밤에 혼자 일하려니 그게 더 힘들더군요. 월 1회 고객사에 방문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벽에 서버가 고장났다는 연락이 와도 혼자 해결하러 가고, 그뿐만 아니라 고객사와 갑과 을의 관계로 일하는 것 또한 저에겐 큰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긴 서버를 고치고 있으면 고객사 담당자가 제 등 뒤에 서서 일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서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서비스가 작으면 상관없지만 POS 등과 같이 큰 서비스들은 서버가 고장 나서 서비스를 계속하지 못할 경우 그 손해의 일정 부분을 책임져야 하기에 전화가 오면 언제든지 출동을 해야 합니다. 밤에 잘 때에도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잘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5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계속하다 병원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사회복지사이었기에 학창시절부터 봉사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사회복지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요. 사실 대학을 진학할 당시에는 그래도 돈이 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회복지를 선택하지 않고 컴퓨터 학과로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이렇게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인천쪽방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있답니다.

쪽방촌에서 나를 찾아가다
쪽방은 1.3평(넓으면 2평) 정도 되는 방으로 고시원, 여관, 여인숙 등이 쪽방에 해당됩니다. 화장실이 집안에 없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며 제가 있는 곳에는 여인숙이 많이 있습니다. 여인숙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폐쇄적인 공간입니다. 건물 자체가 워낙 오래되었기에 조명도 없고, 방도 딱 한 사람 누울만한 공간이며 공동 화장실은 냄새도 많이 납니다. 여인숙에는 대부분 노숙을 하다가 갈 곳이 없어 오신 분들이 많고 이분들 중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많이 있어서, 처음 상담을 나갈 때에는 어느 정도 체격이 있는 저도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복지사각지대라고 하는 곳에서 직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상담을 하고, 그분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한 번은 40대 중반으로 말도 잘 못하시고, 아프다며 일도 안 하고 여인숙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분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상담을 하러 가보니, 월세도 계속 밀리고 일을 안 해서 밥도 못 먹어 몸에 살이 하나도 없는 게, 이대로 있다가는 아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긴급 지원으로 물품을 가져다드리고, 동사무소에 연결해 직접 모시고 가보니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습니다. 다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드리고, 긴급 지원 신청과 함께 조건부 수급자(국가에서 지정한 일을 해야만 돈이 나오는 수급자) 신청도 해 드렸습니다. 처음엔 행색이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말끔해졌고, 말씀도 잘하시고 열심히 일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제 자신이 힐링을 받습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성취감이 많이 듭니다. 

이런 좋은 일도 있지만, 안타까운 상황도 많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우리나라 복지가 정말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요. 아무리 자신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동사무소에 신청만 하면 자활 근무를 할 수 있고, 정기적으로 일을 나가며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는 시스템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것도 귀찮고, 사회라는 것에 얽매이는 것도 귀찮은, 그러면서도 국가의 도움은 다 누리려는 복지병에 걸린 사람들을 볼 때는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필요하다고 하면 다 가져다주니 재활의 의지가 전혀 없이 빈둥빈둥 지내다가, 가끔 일용직으로 일 다녀와서 하루 일당 받으면 술 마시고, 그리고 월세가 너무 밀린 분들에게 해드리는 월세지원을 그냥 받는 분들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내가 도와줘서 뭐 하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도와드리지 않을 수도 없고... 이런 것들이 어렵습니다. 상담 할 때에도 이 분들은 조금만 화를 내도 마음을 닫아버리기에 항상 애 키우듯이 타일러야 합니다. 물론 가까워지면 답답한 마음에 왜 이렇게 사냐고 타박을 하기도 하지만요. 아무리 도우려 해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억지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420명의 쪽방촌 주민 전체를 저희 사업팀 3명이 돌봐야 하기에 싫다고 하는 분들까지 다 챙길 여력은 부족합니다. 그리고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제게 연락을 자주 하시는 분들에게만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 때문에 소장님께 자주 혼이 납니다(웃음).

이전에 서버 엔지니어로 일할 때에는 갑을관계가 분명하게 있는 고객들을 만나고 상대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이곳에 온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은 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만나고 싶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가운데 대인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물론 소통이 이도저도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상대하는 분들이 다 아저씨들이다보니 나이어린 제게 농담도 잘 하시고 친해지면 굉장히 재밌습니다. 상담소로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자체가 고맙고 반갑습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었고 저를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성취감이 듭니다. 주변에서도 이직을 한 후 제 얼굴이 환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지금 이 일이 제게 딱 맞나 보다 생각하고 있지요. 물론 아직 연차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웃음).

전문 사회복지사의 길에 도전하다
사회복지사로 이직을 한 후 엔지니어로 일할 때보다 110~120만 원 정도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이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내려놓고, 일하며 보람도 느끼고 주말이나 저녁에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현재의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해 대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평생교육원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많이 부족해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쪽방에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가족과 같이 사는 아동, 청소년, 장애인, 정신질환을 가진 분 등 여러 케이스가 있어서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또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의 언행이나 프로그램 기획 등이 이분들에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의심이 들 때가 많아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제대로 배우고자 합니다. 사실 공부에 자신이 없어 겁이 나긴 하지만, 도전하고 더 멋진 사회복지사로 제 자신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사)인천내일을여는집 인천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 김윤재 010-2553-5824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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