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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2020 여름의 기억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2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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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법, 요트이야기 10]

기후 변화, 2020 여름의 기억

지난 7~9월의 여름 동안 우리는 세 번의 태풍과 40일 이상 이어지는 장마, 혹은 기후 변화로 인해 꿈쩍 않고 비를 뿌려대던 먹구름 떼들을 보았다. 장마가 이어진지 한 달쯤 되었을까?  중간에 출장으로 포항을 갔을 때 잠에서 깨어나 KTX 창가로 환한 햇살을 보고 그 햇볕이 낯설게 느껴져, 또 그 환한 햇살이 반가워, 부러 포항 역사 옆의 그늘이 없는 뜨거운 햇볕 아래 잠시 서 있기도 했다. 
피부에 와 닿는 따끔한 자외선이 이리 반가울 줄이야. 세일러의 일상은 날씨 어플을 켜고 당일의 날씨와 바람, 하늘을 살피는 일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간혹 날씨와 어플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어 창 밖 나무들의 흔들리는 정도를 참고하며 바람을 꼼꼼히 챙긴다. 또 유용한 어플은 한강의 수심을 말해주는 홍수통제소 어플이다. 서울시 주요 다리 밑의 유량과 수심 등을 10분 단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이라,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엔 꼭 챙겨보며 유량을 체크하고 있다. 

큰 비가 내리면 중부 산지에 머금은 물이 서울 서쪽 김포 하류까지 도달하는데 보통 이틀 정도가 걸린다. 8월 첫 큰 비가 내리고 호기심에 어플을 켜자 행주대교 아래 4미터가 조금 넘는 물높이가 떴다. 평소의 행주대교 수심 저점은 2미터 안팎, 2미터나 상승한 한강의 물살은 어떨까, 이 호기심은 날 그냥 두지 않고 크루들을 불러 한강으로 나가게 했다. 행주대교 아래 접근하자마자 강한 물살이 시작되는데 2.5 노트(시속 5킬로미터)의 속도로 물이 내려온다. 방화대교까지 접근하는데 평소보다 역류를 거슬러 오르느라 두 배의 시간이 더 걸린다. 역류로 물들이 솟구치는 게 보이는 곳에서 조향이 불투명한 세일링은 일찌감치 포기한다. 행여 엔진이 멈추면 저 아래 신곡수중보로 요트가 곧바로 떠내려갈 수도 있는 상황. 긴장하며 배를 몰아 방화대교를 지나 가양대교까지 조용히 답사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와 크루들과 모험담을 공유하고 헤어졌는데, 그날 밤 또 며칠간의 폭우가 시작되었다. 어플로 한강의 수심을 살피니 행주대교 밑이 4미터를 넘어 최대 7.5미터에 육박한다. 4미터 정도 높이의 유속을 몸으로 경험한지라 저 정도면 TV 속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다 떠내려가고 말 거라는 상상이 된다. 그 후로도 한동안 한강의 수심은 계속 내린 비로 잦아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중부권의 남한강, 북한강, 강원도와 경기도에 내린 대부분의 물들이 모여들어 바다로 빠지는 곳은 바로 이곳, 한강이었다. 한강에 묶어두었던 배 두 척이 유실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크고 작은 사고 소식들도 이어진다. 서울마리나 쪽을 가보니 진흙뻘로 초토화되어 승객들의 진입로가 복원되지 않았고 두 달간의 여름 성수기를 날렸다. 몇 년간 지켜보아온 한강이지만 이런 큰 비와 많은 유량을 받아내는 모습은 또 처음이다. 

장마가 그치고 지난 주 한강에 나갔을 때, 하류 왼쪽에 처음 보는 기이한 진흙 산을 보았다. 상류부터 온갖 진흙들이 떠밀려 내려와 차곡차곡 쌓인 것이다. 큰 물은 한강의 하류 지형 전부를 바꿔놓았고 나는 작은 요트를 타고 나가 더듬거리며 다시 안전한 수중 길을 찾아다녔다. 기억 속에 아름답기만 했던 한강은 기후 변화와 함께 내게 날 것의 자연 특유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끝없이 무섭고도 아름다운 자연과 타협하며 도전해 나아가는 것이 세일링. 20~30대의 젊은 크루들은 이런 여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 틈틈이 우리는 요트 위에서 장맛비를 맞으며 세일을 펴고 여름을 즐겼다. 나는 크루들에게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특혜’라며 함께 비를 맞았다. 비에 몸이 젖고 엉덩이가 젖어도 여름이라 그리 춥지 않다. 바람은 그 비를 다시 말려주고 비 개인 하늘은 평소의 하늘과는 달리 깊고 아름다운 구름과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선셋들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비는 피해야 하고 막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맞으며 즐기는, 우리가 잊고 사는 삶의 이면을 느끼게 하는 축제의 도구가 된다. 땅 위의 사바세계는 장마로 홍수로, 태풍과 역병으로 우울했지만, 간간히 보이는 하늘의 아름다움과 시원한 바람, 또 이를 맞이하는 하얀 세일을 올리며 또 한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모아나호에 30마력 새 엔진을 달았다. 비가 멈춘 가을에는 이 엔진으로 부리나케 달려 자주 가을 바다에 나가볼 생각이다. 

 

4m 이상 물이 차 올라온 방화대교

 

임대균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keaton7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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