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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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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30]

 

지금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

지난 6월호에 새 학기가 시작되며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된 단상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새 학기를 맞아 영상으로나마 학생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공존했었지요. 한 학기가 지나고 가을을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지금은 학기를 마무리하며 느꼈던 불쾌감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지난 학기엔 대면으로 학생들을 만날 수 없어서였는지 인간적인 교류가 없다고 느껴졌고 비록 메일로 인사를 하거나 질문에 대답하기도 했지만, 직접 만나서 느끼는 사제 간의 정을 느낄 수는 없었던 학기였습니다. 과제에 성의가 없거나 온라인임에도 출석이 불성실한 학생을 발견하면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은 매주 강의와 관련된 토픽에 대해 자기 생각을 써내야 하는 과제가 8주 동안 계속되는 것이 약간은 불만인 것 같았고, 기말고사를 대면으로 치르려다가 코로나의 위험 등 여러 변수로 온라인으로 치르기로 했는데, 온라인 시험을 주장하는 어떤 학생은 지방에 살고 있어서 시험 보러 올라오기가 번거롭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기말고사 시간을 바꿔 달라는 학생도 있었지요.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주장들입니다. 학기가 끝나고 나면 강사평가를 열람할 수 있는데 그 결과를 보고 힘이 빠졌습니다. 평소 전체 강사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곤 했는데 이번 학기에는 중상의 점수에 그쳤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노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학부생들을 가르치기에 이젠 내가 너무 늙었나?’, ‘공부하는 아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과연 아이들만의 문제인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종강을 한 후, 다른 과 교수님들과 차를 마시며 요즘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늘 대하는 교수님들의 생각은 영상과 인강을 통해 입시를 경험한 학생들에게 더 이상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공과목이란 인강에서 필요한 강의를 고르는 것처럼 장바구니에 강의를 넣고 수강 신청에 성공하면 듣는 것이고, 아니면 버리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에겐 그에 버금가는 부모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임용이 되어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 된 선생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반에서 말썽 피우던 아이가 이 선생님에게 폭력을 휘둘러 학폭위(학교폭력방지위원회)가 열렸는데 학생은 당연히 그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였고, 또 다른 당사자인 초등학교 교사 또한 그의 부모님과 함께 참석했더랍니다. 그리고 요즘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 임용장 수여식에 입사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님들이 함께 참석하기 때문에 1인당 좌석 3개씩 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더구나 임용식이 끝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우르르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데 그 대상이 사장님이 아니고 인사고과 담당자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부모를 이해해야 한다더니 따지고 보면 온전히 젊은이들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어떤 부모님에게 양육되었는지 사뭇 의심스런 사례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한 교수의 친척 아들이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군대 가서 보직으로 운전병을 맡았답니다. 하루는 그 애 어머니가 자고 일어나니 꿈자리가 굉장히 사나워서 부대에 전화를 걸어 “우리 ㅁㅁ이는 오늘 운전시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스무 살만 넘으면 온전한 성인으로 대우받으며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 당연했던 과거의 20대와 중·고등학교의 연장선에서 대학생이 되어도 부모의 보호 아래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런 분위기에서 20대를 맞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이 40~50대가 되어 이 나라를 이끌어 갈 때쯤 우리나라는 과연 어디에 놓여있게 될까요? 
코로나 시국이 생각보다 장기화되어가고 교육환경은 물론 사회 각 분야가 최소한 5년은 훌쩍 당겨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것, 과거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으로는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100세 시대가 되어 지금의 중년은 최소한 30~40년동안 젊은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학기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젠 예전의 가치관으로는 살아가지 못하겠구나, 세대 간의 차이도 다르다는 것 때문에 노여워해서는 안 되겠구나, 적어도 30년 이상은 그들과 함께 살아갈 텐데 내 삶의 패러다임도 조금은 빨리 바꿔야겠구나, 그것이 나의 자식세대, 제자들 세대와 공존하는 최소한의 노력이겠구나. 요즘은 기대 수명의 증가와 함께 한 평생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업도 2~3개는 되어야 한다는데 앞으로 30년 동안 할 일은 분명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겠구나…’
지난 학기는 당혹스러움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저에게 많은 질문을 남겨준 한 학기였습니다. 앞으로 내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해 봐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은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는 것입니다.

 

예술의 전당 영상문화부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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