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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배의 행복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3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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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호의 칠레통신]

7배의 행복

 

작년 10월부터 칠레 산티아고 전역에서 심한 데모가 있었습니다. 빈부격차가 나날이 심화되면서 분이 풀릴 때까지 데모를 하겠다는 것이었죠. 성난 데모대들은 지하철 시설과 도로의 안전 시설물들을 파괴하였습니다. 그 시설물들로에 바리케이트를 쳐 경찰, 군인들과 대치하였습니다. 곳곳에 쓰레기 더미와 폐타이어를 가져다가 불을 질러 도로를 점거하였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밤에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가게에 도둑이 들까, 불을 지르지나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에 불안의 일상을 지내야 했죠. 21년을 칠레에서 지내면서 데모가 있다해도 가게 문을 열지 못하는 날은 없었습니다. 조금 일찍 문을 닫은 적은 있었지만 이번엔 일주일 넘게 아예 문을 열지 못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슈퍼마켓, 백화점, 약국, 정육점들은 다 털렸으며 심지어는 불까지 질러 전소시켜 아예 영업폐쇄를 선언한 대형슈퍼마켓도 여럿 발생하였습니다. 데모대 중 극렬분자와 이 기회를 노려 노략질을 하는 일부 데모대가 문제였지만 이들이 슈퍼마켓, 백화점, 약국, 정육점들의 문을 부수면 정상적이었던 데모대들도 덩달아 한몫 챙겼습니다. 도덕은 간데없어 칠레라는 나라가 정이 뚝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간 백작의 후손으로 예의와 범절이 뛰어난 민족으로 알고 지냈던 이들이 약탈자의 후손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빈곤층에서 들고 일어났던 불만이 중산층에까지 확산되어 안전 자체가 위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카톨릭대학교의 권위 있는 교수들은 이런 초유의 사태에 대해 나름 설득력 있는 분석을 내놓았으며 일부 평화주의자들은 이제 파괴적인 데모는 그만 하자고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이유가 30년 전부터 슬금슬금 학교에 잠입한 의도된 교사들이 학생들을 세뇌시켜 정부를 원수 취급하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남미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세력이 있는데 남미에서 칠레가 유일하게 바람직한 나라라 골치가 아팠다고 하는군요.
시간이 흐르자 일반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자리를 잃게 되거나 일을 못하게 되면서 소득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데모대에 동조하던 태도가 수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파괴한 지하철 때문에 교통수단이 그만큼 줄어들어 일상생활이 끔찍해지면서 도리어 데모대를 대놓고 욕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이 데모대와 싸우는 진풍경도 생겨났습니다. 그제서야 정부에서 서서히 공권력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에게 괜찮은 조건들을 제시하였습니다. 게다가 때마침 12월(이곳 칠레는 여름)이라 조기 방학을 시행하였고 무더위 휴가철을 맞이하면서 데모가 멈췄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운명의 한수인가
3월 첫 주까지 정상적으로 지내다가 둘째 주부터 다시 데모가 격렬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개학이 되면서 다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셋째 주부터는 드디어 칠레에도 코로나 사태가 가시화되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통행금지령을 발표하였고 데모대는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더 이상 모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폭력적인 데모대보다 안 보이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더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나에게 벌어진 일
해마다 여름휴가 때 삼주간 내리 쉬는 직원들이 부러웠습니다. 간혹 어떤 가게들은 주인과 전직원들이 한꺼번에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예 21일 즉, 3주간 문을 닫기도 하는데 문을 닫는다는 ‘공지’를 볼 때마다 가게 문을 닫지 못하는 신세가 참 처량 맞고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게 웬일입니까!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155일간이나 휴가를 즐긴 셈이 되었으니까요.
그토록 바라던 휴식을 실컷 누렸으며 정원을 꾸미고, 그림도 마음 놓고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간 음악에만 심취했었지 미술영역은 작품 감상이나 대화를 위해 교양을 쌓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친구 몇 분이 아마도 예의상, 칭찬을 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그림을 그렸는데 말도 못하게 재미가 있었습니다. 잘 그려서가 아니라 생각이 그림으로 표현되어진다는게 신비로워서였습니다. 처음엔 하루에 한 장 그리기도 벅찼는데 그리다보니 하루에 다섯 장도 그려질 만큼 재미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재밌던지 약 40년간 즐겨왔던 오디오 매니아 행각보다 더 즐거웠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두 달간 낙원 같았지만 서서히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비축한 돈이 모자랐습니다.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저는 학기 철 때 학용품을 팔아야했지만 절반 밖에 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들여놓은 학용품값을 갚기 위해 은행에 빚을 졌습니다. 또한 예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전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 달간은 조마조마하면서 지냈습니다.

삽화:노익호


각종 보조가 시작되다
가게 건물 주인은 수입이 없는 우리에게 연말까지 약간의 월세만 받겠다고 통보했습니다.(놀라운 일임) 또한 정부에서는 일부 보조금을 주었습니다. 연금을 미리 당겨 내주었고, 새로 직원을 뽑을 경우 6개월간 봉급의 절반을 보조해주기로 약속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은 완전 복구가 되어 국민들이 원하는대로 헌법개정 투표까지 끝난 상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12월에는 또 한 차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연금의 일부를 지불해 준다는 발표가 있었지요.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렇습니다. 삶의 태도, 그 태도가 바뀌면서 행복의 무게가 7배로 강화가 된 것입니다. 사는데 돈이 그닥 많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똑똑히 경험한 것이지요. 다섯 달이 넘는 격리생활은 곧 훈련생활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생존형의 생활이었지만 메이커 불명의 생필품조차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별 재미없다 싶었던 일상이 얼마나 귀한 하루하루였던가를 깨달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위상이 아주 높아진 것입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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