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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숲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3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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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법, 요트이야기 12] 

한강의 숲

 

지난 8월 한강 대홍수(?) 때 한강 지류에 큰 변화가 생겼다. 김포 하류에 진흙이 쌓여 한강 갑문 앞 수심이 60센티까지 내려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한강을 다닐 수 있는 높이. 하루가 멀다하고 배들의 좌초 소식이 들려왔다. 킬이 없는 40피트 이상의 파워 보트들은 한강을 나갔다가 뻘에 걸려서 119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나가고, 킬이 있는 세일요트들도 한강을 나갈 엄두를 못 냈다. 흘수가 1.1미터 정도 밖에 안 되는 아리엘호로 상태가 궁금해 답사를 나갔다가 나 역시 진흙뻘에 걸려 10분간 헤매다 엔진을 풀가동 시켜 겨우 뻘을 빠져나왔다. 몸이 근질거려 진흙을 파달라고 민원을 넣으니 곧바로 회신이 온다. 안전에 관한 사항이라 파주기는 하는데 진흙양이 많아 진흙을 퍼다 쌓을 곳을 협조 받느라 서류 작업이 길어졌단다. 11월 중순 넘어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는데 작업 상황이 한 눈에 보이는 갑문에 전화를 걸어 진행 상황을 물으니 바지선이 나가기 위해 아주 ‘약간’땅을 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오, 그래?’ 크루들을 소집해 아리엘호를 끌고 곧바로 한강에 나간다. 세 명이 잔뜩 배를 기울이고 엔진으로 배를 밀었더니 두어 군데쯤 쓰윽~ 킬이 진흙을 밀어내는 느낌이 나더니 위험 구간을 겨우 통과해 다시 한강을 누빌 수 있게 되었다. 

배가 나갈 때 벌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배를 기울이는 모습


한강사업본부의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준설 상황을 물으니 수심과 팔 곳을 측정했는데 하류의 깊이가 6미터까지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와, 진짜요?’ 모아나호로 측정했던 행주대교 앞의 깊이는 평소 2.3 ~ 2.5m에 불과했다. 결론은 지난번 홍수 때의 물살이 얼마나 셌는지 그간 쌓여있던 진흙 뻘들을 죄다 쓸고 내려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한강 둔치에는 상류에서 밀려온 토사들이 쌓여, 없던 땅(?)도 새로 만들어졌다. 4대강 사업으로 쌓여있던 녹조와 물때들을 큰물이 한 번 쓸어가며 새하얀 모래톱으로 바꾸었다는 다른 강들의 상황을 들었었는데, 한강 역시 자연의 힘, 홍수의 힘으로 하류의 6미터 수심이라는 변화가 생겼다. 준설이 마무리 되면 모아나호를 끌고 나가 이 깊이의 극적인 변화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서울 마리나 선상카페에 배를 대고 차 마시던 풍경


이렇게 작은 배로 뻘을 밀고 헤치며, 바람 좋은 가을과 겨울에는 김포에서부터 세일링을 하며 마음껏 한강 다리들을 넘어 다니고 있다. 그러다 여의도 근처에 정박할 수 있는 폰툰들을 발견하곤 배를 대고 둔치 근처의 맛집들을 찾아다닌다. 돌아오는 길엔 한강 야경을 바라보다 서울마리나 선상 카페에 배를 대고 2층에 올라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작은 세일 요트가 훌륭한 교통수단이 되어 바람을 타고 한강을 드나들며 마리나 곳곳의 식당, 카페들을 이용하는 모습을 ‘부러’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 우리도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어 여기저기 더 찾아다니고 기록해 SNS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세일 보트를 안전하게 정박할만한 곳들이 한강에도 기실 그리 많지는 않다. 넓디 넓은 한강을 오가며 폰툰으로 쓸 만한 곳들을 찾아 수심을 재고 주변을 돌며 물살을 측정하는 일은 언제나 큰 모험이다. 지금은 사업성이 낮아 운항이 없이 폐허가 된 수상택시 계류장을 잠깐 잠깐 쓰고 있지만, 한강에 이런 폰톤을 몇 군데만 더 설치해 주어도 더 많은 배와 사람들이 선상 카페와 주변 식당을 이용하며 세일링 라이프를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우리 요트클럽은 외롭다. 주말에 한강에 나가도 눈에 보이는 세일 보트는 거의 우리 뿐. 한강을 전세내고 쓴다고 농담하지만 그런 상태가 2년쯤 되니 외로움이 더 커진다. 난지 지구나 여의도까지 올라가 보트들과 주변의 1~2인용 딩기들을 보며 위안을 삼곤 하지만, 먼 후일을 바라보며 세일 요트들이 잠깐씩이라도 정박해 주변의 맛집들을 이용할 수 있는 클럽의 세일 요트용 한강 지도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이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쌓이게 되면 언젠가 한강도 바르셀로나처럼, 파리,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항구들처럼 하얀 돛배들로 채워질 아름다운 날들이 오겠지. 모든 숲들이 작은 풀 한 포기에서 시작된 것처럼 지금은 나와 우리 클럽이 고고한 그 풀 한 포기가 되어 열심히 한강의 바람을 타고 즐기며 그 숲을 일궈볼 생각이다.

 

임대균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keaton7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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