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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라면 하나 주세요!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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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라면 하나 주세요!

어릴 적부터 성격이 워낙 활달해서 친구들이 반장으로 뽑아주고,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 활동도 하면서 리더 역할을 많이 했었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는 제지회사 영업부에서 수출입 업무도 하고, 호텔 구매부에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서비스 마인드도 배웠고요. 결혼 후에는 가정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부모 대표, 후원회장을 맡으며 적극적인 활동을 했었죠. 그러던 중 IMF때 남편의 사업부도로 갑작스런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가정을 살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돌 지난 늦둥이를 떼어 놓고, 무작정 식당하는 친구에게 찾아가 음식하는 비법을 전수 받은 후, 뭣 모르고 소머리국밥집을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어서 빚도 갚고 승승장구 할 것 같았는데 광우병 파동이 터지면서 손님들이 줄더니 곧 매출하락으로 이어지더라고요. 8년 만에 식당을 접었습니다. 또 한 번 인생의 고비와 좌절을 맞이해야 했었죠. 하지만 저는 다시 일어나 주방보조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소머리국밥 사장이었는데’라는 자존심이 남아 있어서 주방 보조를 하면서 “아줌마 이것 좀 해!”라는 소리를 들으면 빈정이 상해 싸우고 나와 버린 적도 있었죠. 하지만, 내가 여기서 질 수 없다 생각하여 저를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소머리국밥의 빈 열쇠를 내 던질 수 있었지요. 이후론 주방장이든, 홀서빙이든, 한식, 중식, 양식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구내식당에서 8년 정도 일을 하고, 사업장에서 직원들 식사를 책임지는 조리사가 되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 들어갔었죠. 그러던 중 작더라도 나만의 사업장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예전부터 오가다 마주치는 노란색 벽이 눈에 띄는 동네 김밥집의 주인장이 자꾸 바뀌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하면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남산김밥’ 새 주인장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계약을 하고, 열흘 만에 가게를 오픈했지요. 가게를 오픈하고 나의 힐링 쉼터이자, 일터 공간이 생겼다는 게 설레었습니다. 
저는 어떠한 큰 변화보다 제가 살아온 도전 정신과 22년 요식업계에서의 노하우를 가지고 이전에 있던 메뉴에 제 스타일의 맛 업그레이드와 친절, 그리고 청결함으로 승부를 걸기로 하였습니다. 우선은 메뉴에 충실했고, 라면을 하나 끊여도 저만의 스타일의 라면을 끓였습니다. 타이머를 5분으로 맞춘 후 계량컵에 물을 넣고, 면과 홍합을 넣은후, 1분 40초 전에 숙주와 길게 썬 대파를 듬푹 넣는 것이죠. 한번은 “침대만 과학이 아니라 라면도 과학이에요”라고 한 손님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다음에 손님이 또 오셔서 “과학라면 하나 주세요”라는 말을 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저희 가게가 남산한옥마을 근처이다 보니 코로나19 이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어요. 한번은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손님이 음식을 드시고, 너무 맛있다며 본국에 돌아가 SNS에 저희 가게를 소개해줬는데, 이것을 보고 찾아오신 분들이 있었고요. 또, 노란벽에 아기자기한 화살표 메뉴판이 예뻐서 오시는 분들도 계신데, 가게도 예쁘지만 주인장 아주머니의 친절함에 힘을 얻고 간다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남산김밥을 시작한 지 2년의 시간이 넘어가는데 이렇게 제가 가진 긍정의 에너지를 손님들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야채김밥, 단무지 뺀 김밥, 한 줄 김밥 등, 한 분 한 분 단골손님의 주문형태로 저장한 전화번호가 제 스마트폰 속에 쌓여가는 것도 든든하고요. 매일 아침 신선한 야채를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오후 8시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하며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 가게에 오셔서 따뜻하게 식사를 하고 가실 손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70세가 넘어도 남산김밥의 주인장으로 손님들이 집에서처럼 편안히 음식을 드시고 가실 수 있도록 가게를 잘 꾸려가는 것입니다. 원래 취미가 그림 그리기였는데 막상 가게를 하다 보니 여력이 안돼어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그림도 그리려고요. 제가 직접 그린 그림을 벽에 장식하고 손님들에게 저의 에너지를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지금도 시간이 나면 영어책 놓고 혼자 공부를 하곤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어회화 학원에 다닐 계획이랍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저희 가게에 외국인 손님들이 오시면 소통할 날을 기대하면서요. 

 

남산김밥 대표 김명옥
서울시 중구 퇴계로길 188 / 02-2285-1880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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