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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2021년 2월호(13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3. 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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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5]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그림만 열 장 째인데 너무 화나요.”
“그림 배우는거 그만 할까봐요.”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는 한 번도 이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쉼이 필요할 때 그림을 그리면 요동치던 감정이 고요해 지고 복잡함이 사라지는 걸 느껴, 그리는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나무와 꽃, 자연물을 그리면서 저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관찰하며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일상적인 것을 인상적으로 바꿔가는 즐거움이 굉장했습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 때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유럽여행 때 찍은 건물을 주제 삼아 그리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힐링의 도구였던 그림은 저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원근감, 소실점, 색감. 사진과 똑같이 그리고 싶고, 그려야 한다는 마음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이국적인 창문과 창틀, 그렇게나 좋아했던 유럽의 돌바닥이 점점 저에게 스트레스 요소가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그리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하기 싫은 숙제가 되었습니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 그리면서 작은 부분이라도 사진과 다르면 틀리다는 생각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았던 취미가 생각하기도 싫은 시간이 되던 찰나 함께 그림을 그리던 지인이 시각을 달리해서 그려보는 것을 권했습니다.
“여행의 감정을 그림에 담는 거라면서요. 사진과 똑같을 필요가 있나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말고 조금 다르게 그려보면 어때요?”
속으로는 분명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이다 마음먹고 다시 건물을 그렸습니다. 직선 반듯한 건물대신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형하고 일부러 똑같게 그리지 않으려고 신경썼습니다.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밑그림을 다 그리고 색을 선택하는 순간까지도 제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사진과 똑같지 않다는 불편함. 그게 자꾸 저를 괴롭혔습니다.
완성된 그림 궁금하시죠?


보고만 있어도 편안한 그림, 따뜻한 그림, 꽤 괜찮은 그림. 이게 제 마음입니다. 신기하게 그동안 집착했던 딱 떨어지는 선과 정확성이 없어도 개성 넘치고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 오히려 제 마음을 다시 쉬게 해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왜 ‘똑같음’에 병적으로 집착했는지 시간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경쟁하기 싫어 가위바위보도 안하는 성격. 스스로 소심해서 그렇다고 보기 좋게 둘러댔지만 사실은 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해져야 해, 잘해야 해, 실수하기 싫어.’ 무엇을 하던 항상 제 자신에게 요구하던 것들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취미이자 힐링을 위해 선택한 그림 그리기에도 투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직선에서 곡선으로’ 작은 변화만으로도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는데 저는 왜 그 방법을 몰랐을까요? 아니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가요? 그 당시 저는 긴장감이 높아 예민하고 강의 중 실수를 하는 날에는 잠을 자지 못해 불면증까지 있었습니다.

지금은 ‘완벽해야하는 나, 잘해야만 하는 나, 실수 하지 말아야 하는 나’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나움버그(MargaretNaumburg,1987)는 미술치료에서는 내담자의 내적인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외현적인 형상으로부터 내담자의 억압된 갈등이나 충동, 감정 등을 발견하고, 이 과정을 통해 문제에 대한 탐색이 가능해져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제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미술치료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지만 사진과 똑같이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행동과 그것이 실패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같은 그림을 수십 장 반복해서 그리는 불편한 행동에 대해 제가 알게 되었고 그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맥락에서 나움버그의 말에 동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은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서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에 어쩌면 나를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 작가의 보이지 않은 감정을 파악하고 유추할 수 있으며 전반적인 인생의 흐름이나 철학을 읽어 낼 수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그림은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리네아스토리 사무실 제일 높은 곳에 걸려있습니다. 언제든 볼 수 있는 자리에 두고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달라도 괜찮아. 그 모습 그대로 매력 있고 빛나니까”

 

리네아스토리 대표 김민정

lineastory.com

 

* LINEA STORY(리네아스토리)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컨텐츠 디자인회사입니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6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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