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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되고 싶은 누에고치 진율이…

2021년 4월호(13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4. 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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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32]

나비가 되고 싶은 누에고치 진율이…

 

때때로 인생의 방향을 잃고 나에 대한 자존감이 희미해질 때 ‘내가 태어난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약해지는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내 장점을 열거해 봅니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주셨고, 긍정적인 성격도 주셨고, 남들이 칭찬하는 좋은 목소리도 주셨지…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남들에게 쉽게 설명해 주는 능력도 있는 것 같아.’ 내가 가진 이런 능력들을 나만을 위해 쓰는 것 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훨씬 의미 있는 삶이 될 거라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자원 봉사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찾은 첫 번째 봉사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낭독 봉사’였습니다. 도서관 장애인센터에서 매주 일요일 4시간씩 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곳에서 시각, 청각, 지적, 지체장애인 등 수많은 장애인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내가 그들을 돕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던 것이 한 가지 이상의 핸디캡을 안고 당당한 인간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로부터 오히려 용기를 얻었습니다.

진율이는 스물세 살 부산 청년이었습니다. 돌이 갓 지났을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2급 지체장애아였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진율이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장애 문제아였지요. 부모님이 하라는 말은 반항심에 듣지 않았고 음주와 흡연, 한밤중에 도심을 질주하는 폭주족이었습니다. 정상인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이기 위해 축구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 괴리감을 쉽게 떨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진율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했습니다. 진율이의 아버지는 하동에서 녹차를 키우는 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부산에서 진율이와 함께 생활하셨는데 부모님은 늘 진율이 때문에 속을 태웠습니다.

자퇴 후, 진율이는 좋아하는 오토바이도 타고 돈도 벌 수 있는 중국집 배달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유일한 낙인 축구는 계속 열심히 했습니다. 일요일엔 조기축구회에 나가 아저씨들과 운동장을 질주했습니다. 그렇게 10대를 마감함 진율이는 20살이 되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자기 자신이 한없이 창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서히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진율이는 22살에 검정고시를 보았습니다. 고졸 대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며 자립하게 된 진율이는 부족한 자신을 채우고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모 대학 수시면접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진율이는 낭독 봉사 때 만난 저에게 수시면접을 부탁했고 저는 기꺼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진율이와 저는 입 모양을 보고 서로 이해하거나 컴퓨터 자판을 통해 모니터에 나타난 문자로 대화를 했습니다. 우리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사회적 약자 장애인 특별전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율이만의 이야기로 수시 면접을 면밀히 준비했습니다. 저는 비록 진율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 수험생들과 똑같이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의 꿈을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패기와 용기를 가져야 입시라는 관문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진율이만의 이야기를 녹여 낸 면접 답변을 함께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저는 진율이에게 축구를 좋아하니 광고홍보학을 전공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축구팀을 홍보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스포츠매니지먼트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공부하러 유학을 가거나 장애인 올림픽 홍보담당자가 될 수도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꿈’이라는 것을 갖게 된 진율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자신의 대입원서를 준비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꼭 합격하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서!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어려움 앞에 당당히 맞서기로 했습니다. 다시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며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시 합격자 발표 날 진율이는 울면서 합격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진율이 어머니도 감사하다는 전화를 하시며 펑펑 우셨습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저의 눈에도 눈물이 줄줄 흘렀지요. 

매년 입시철이 되면 누에고치의 모습으로 나와 처음 만났던 진율이가 생각납니다. 머지않아 나비가 되어 훨훨 창공을 날아다닐 진율이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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