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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의 정면충돌 상황에서 중간에 끼인 우리, 무엇을 해야 하나?- Henry Kissinger(《World Order》2014)의 외교정책 비판을 근거로 -

2021년 4월호(13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4. 1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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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전쟁의 위험 사이에 끼인 한반도를 위한 국제정세 이해]

 

미·중의 정면충돌 상황에서 중간에 끼인 우리, 무엇을 해야 하나?
- Henry Kissinger(《World Order》2014)의 외교정책 비판을 근거로 -

 

Kissinger, shown here with Zhou Enlai and Mao Zedong, negotiated rapprochement with China.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프랑스의 브로덜이 주도하는 아날학파는 미시사를 치밀하게 연구한 후 종합한 거시역사의 진행을 이해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세계의 패권이 베네치아→네덜란드→영국→미국을 거쳐서 21세기에는 동아시아로 옮아올 것이며, 그 패권은 중국이 가질 것으로 예상합니다.1) 그렇지만 이런 예상은 두 가지 약점을 가집니다: 1) 아날학파가 물질문명 위주로 분석한다, 2) 어디까지나 중국이 완전히 서구화되어 서구문명/문화가 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동양의 중국은 서양의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문화/문명을 가진 나라입니다. 즉 비록 서구적 물질문화가 중국에 깊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중국인의 내면과 행동방식은 여전히 동양적,중국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권력이 설령 동쪽(서구,미국)에서 서쪽(아시아,중국)으로 이동한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크게 우려합니다. 관건은 단순히 외적,물리적 패권이 이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패권국이 바탕으로 하는 문화/문명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재의 패권국인 미국이, 장래의 패권국이 될 수 있는 동양의 큰 나라인 중공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 왔을까 하는 질문은, 그 중간에 끼어있으며 역시 동양의 작은 나라인 한국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970년대 초에 미·중이 결합하는 소위 해빙무드detente의 길을 핑퐁외교를 통해 최초로 개척하였던 장본인인 헨리 키신저는 어떻게 사고했는지, 그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최근에 썼던, NYT의 bestseller였던《World Order》(2014)를 통해 다루려고 합니다. 그는 물론 퇴임 이후의 모든 미국 외교를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특히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으로 명확하게 가진 인물입니다. 유대인들은 미국에서 단 2%의 인구이지만, 미국사회 거의 대부분 영역에서 최상층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미국사회와 미래에 매우 중요한 결정권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판단을 깊이 이해하는 일은, 동,서로 초강대국들에 싸인 지정학적 위치를 결코 피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미국은 고마운 나라였지만, 중공은 지금껏 고통을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매우 상반됩니다. 또 우리들 중에 중공의 시민권을 얻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미국에 유학하거나 시민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제와 역사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일은 중공과 중국인을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는 8회에 걸쳐서 19세기 중엽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리더쉽을 탐구하였습니다. 이 주제와 연관하여 링컨의 리더쉽을 이어가는 20~21세기 미국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세계를 이끌고 있는지, 20세기 후반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미국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키신저를 통해 살피려고 합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에 있어서 그가 실패한 네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1. 과거(17,19세기)의 역사와 정책으로, 현재/미래(20,21세기)를 결정한 과오를 범했습니다.
그의 박사학위논문2)은 서구 외교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즉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배한 이후 모여서 형성한 비엔나체제(1815)와, 그 근거가 되며 그보다 150여년 전에 30년간의 종교전쟁을 마무리하고 맺었던 Westphalia조약(1648)입니다. 그는 이 두 체제와 조약이 서구 정치사에서 다원주의pluralism의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이해합니다(p.11). 자세히 말해서,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수상인 메테르니히가 주도하여 이끌었던 비엔나체제의 근간을, 힘의 균형 전략balance-of-power strategy과 동반자관계외교partnership diplomacy(p.233) 혹은 유연성fluidity과 실용성pragmatism(p.78)으로 보았고, 이렇게 해서 그 이후의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키신저가 외교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공산당의 최고위직인물(Qi Jianguo)도 마치 키신저에게 아부하듯이 동의하는 점도 소개합니다(p.178). 또 키신저에게는, 조약 혹은 관계 당사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사실,규범이란 힘을 구사하는 모든 파트너들이 동의하는 데서 발생하는 합법성legitimacy에 근거할 뿐입니다.3) 다시 말하면 진리, 선과 악, 윤리는 자리할 곳이 없고 오직 힘과 그 힘이 주는 합법성만 남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근본적으로 ‘공간적,문화적’으로 ‘유럽’이라는 좁은 범위를, 그리고 ‘시간적’으로 지금으로는 한참 지나간 ‘과거’를 터전으로 삼은 과오를 범했습니다. ‘공간적’으로 엄청나게 넓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오랜 문화/문명을 지닌 아시아가, 앞으로 어떤 정치적 지형을 형성할 것인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또 ‘시간적/역사적’으로 비엔나 체제 이후에 ‘서구’에는 온건한 사회주의/공산주의로,‘동아시아’에서 네 개의 연속된 띠처럼 형성된, 극도로 변형되고 뒤틀린 공산주의/사회주의(베트남 공산주의, 중공의 황제공산주의, 북한의 왕조식 공산주의, 남한의 좌파)가 등장하여 21세기까지 존재하는 현상을 깊이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비엔나체제 아래서의 제국이나 그 이후에 발생할 민족국가와는 전혀 다른 정치체제입니다. 즉 그는 동아시아에까지 강력히 영향을 미친 공산주의/사회주의를 비엔나체제의 힘의 균형이라는 1차원적 관점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에 무지했거나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진 동양의 문화/문명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잘못을 범한 겁니다.

2. 공산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는 ‘힘’이지만, 동시에 ‘체제/시스템’이며 ‘철학/종교/윤리’다)
키신저의 최대 실패는 모든 정치현상을 ‘1차원적’인 힘(의 균형)으로만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힘은 그 힘의 원천에서 솟아나며, 또 그 힘이 형성되는 제대로 된 과정이 있어야 작동합니다. 여기서 그 힘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2차원적’으로 체제/시스템이며, 그 ‘원천’이란 ‘3차원적’으로 바로 문화/문명 자체입니다. 

 
키신저가 근거를 두었던 Westphalia-Vienna체제의 핵심은 1) ‘서구적’이며 2) ‘제국적’체제/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마르크스가 선언한 공산당 선언(1848) 후에 만들어진 정치체제에서 발생한 힘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체제/시스템과 원천을 지녔습니다. 그것은 19세기~20초까지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더니, 20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두 가지 형태의 체제/시스템과 원천이 되었습니다: 1) 국가사회주의(나치즘), 2) 계급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의 경우 서구에서 독일뿐 아니라 동양에서 일본까지 포함시킨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민족(국가)주의의 확장판’입니다. 독일과 일본이, 오랫동안 세계를 제패하던 영국의 제국주의를 시기,질투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승화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독일과 일본이 2차대전에서 무너진 후에도, 심지어 소련이 무너진 뒤인 21세기까지도 여전히 펄펄 살아있는 정치체제는 동아시아 4국이 가진 공산주의/사회주의입니다. 


공산주의/사회주의는 ‘1차원적’으로는 하나의 힘이지만, ‘2차원적’으로 체제/시스템이며, 근원적으로 ‘3차원적’으로 일종의 철학이자 종교입니다. 동유럽과 소련에서 그 힘과 체제/시스템은 1989년 이후 무너졌으며, 종교로 변질된 그 철학은 쓰레기통에 던져졌습니다. 소련에서 초기에 공산주의가 만들어졌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놀라워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2차원적’인 랍비 지배체제가 그대로 정치국원/당이 군대/정치를 장악하는 체제로 변형된 것으로, 유대인들은 적응하기에 매우 익숙했다는 겁니다. 이런 체제,시스템은 지금의 중공이나 북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힘의 근원은 ‘3차원적’인 종교에 있습니다. 이 체제는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스탈린,모택동,호지민,김일성…)이 차지하는 인간우상숭배 종교에 근거하고 있으며, ‘모세’와 ‘랍비’의 자리를 정치국원들/당이차지하였습니다. 게다가 유대인의 행동방식을 규율하는 ‘십계명’대신, 이들 우상들이 말한 내용을 정리하여 암송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어록/윤리강령을 만들었습니다(스탈린어록, 모택동어록, 김일성어록). 더 근본적으로는 정신에서 물질이 나오는 체계를 완성한 헤겔을 완전히 뒤집어, 물질에서 정신이 나오고, 무에서 유가 자동적으로 나오며, 무기물에서 생물체가, 생물체에서 인간이, 다시 그런 인간이 신을 만들어낸다는 유물론이라는 종교화된 철학체계를 만든 것입니다. 즉 안달복달하며, 기존 전통을 뒤집고, 스스로를 놀랍게 보이는 일에 탁월한 유대인의 본성을 따라, ‘마르크스’는 자신에게 익숙한 성경적 종교를 완전히 뒤집어 새로운 종교를 창안하였고, 한때 신학도였던 ‘스탈린’은 ‘랍비체제’대신 ‘정치국원/당의 지배라는 체제’를 만든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는 거짓을 진리로 만들며, 진리를 거짓으로 만드는 거짓의 총집합체로서, 구약성경의 종교/유대교/기독교의 이단인 셈입니다. 그 백성들에게 거짓철학/종교를 강요하며, 그런 체제/시스템 밑에 묶어두어, 무한정한 힘을 행사하는 전능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는 ‘종교적 진리’뿐 아니라 ‘역사의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며, ‘윤리’마저 설 수 없습니다. 그런 힘,시스템,철학은 하나의 종교이며 악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냉전의 해결사로 각광을 받은 키신저는 공산주의가 다차원적으로 거짓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미국의 정치,외교에 매우 어려운 과제를 남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공을 키워서 현재의 미·중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낸 책임자는 바로 키신저인 겁니다. 1970년 당시 ‘죽의 장막’bamboo curtain에 가리워져 있고 붕괴 위기에 처하였던 중국을 세계질서로 끌어들이고 부활시킨 인물은 바로 국무장관 키신저와 대통령 닉슨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소련과 대립시키고, 소련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가졌다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전략 자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가졌던 1차원적 ‘힘의 균형이론’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련이 붕괴(1991)된 이유는 이런 미국의 외교전략이 아니라, 소련 체제 자체가 유지와 교정이 불가능한 근본적 문제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간주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신저는 이후 일어난 공산주의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1989~)에 미국이 혹은 자신의 이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합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중공을 끌어내어 세계와 연결시켜 부강하게 만들어 종국적으로 자신의 잠재적 적국으로 만든 것은, 역사가 일천하고 정체성에 늘 혼돈을 겪는 미성숙한 제국 미국이었고, 이 계획의 거대한 건설자는 키신저 자신이었습니다. 1970년 초 아직 미·중이 살벌한 대치상태였을 때, 중국까지 날아가서 주은래와 비밀스럽게 만남을 가졌으며, 그 후 모택동과 닉슨의 만남을 주선하여 해빙무드를 만든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키신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미·중이 연결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공 측에서 소련과의 불화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능동적,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합니다(p.224). 그는 공산주의를 단지 하나의 힘으로만 생각했지, 그 힘이 산출되는 체제/시스템이 얼마나 미국과 전통적 유럽의 그것과 다르며, 무엇보다도 그 힘의 근원이 거짓철학/종교인 점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3. 중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그 정치문화에 무지/무관심하였다. 
인류는 세상의 배꼽에서 점점 동쪽으로 떨어져나가면서, 메소포타미아(다신교)→인도서부(만신교)→인도동부(인간이 신이 되는 불교)→중국(신이 불필요한 도교,유교)→일본(모든 인간이 부처)→아메리카(하늘신 숭배)에 이르면서, 어떻게 하든지 절대신에서 멀리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동양에서는, 없애버린 절대종교 대신 인간을 절대자의 지위에 올리는 정치의 종교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삼국은 모두 이렇게 인간을 절대시하는 정치전통이 근본을 이루는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청나라의 건륭제는 자신을 지상을 다스리는 ‘문수보살’로 여겨 섬기도록 연암 박지원이 방문했던 열하(승덕,청더)에 ‘티벳불교’사원을 지었습니다. 또 ‘일본의 유교’는 철저히 쇼군에게 복종을 가르치는 도구로만 작동하였고, 일본인 특유의 종교인 ‘신도’는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국가신도로 발전할 기초를, 일본 불교가 약화되기 시작한 10세기부터 마련했습니다. 일본이 세계, 특히 동아시아에 부린 정치적 광란인 태평양전쟁은 바로 이런 종교,문화적 정치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런데 중국과 북한에서는 이런 동양적,종교적 전통 위에 서양에서 연원하는 또 다른 사이비 종교적 정치체제인 공산주의가 결합하여 황제공산주의(중공), 왕조식공산주의(북한), 지도자 절대주의적 남한좌파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키신저는 간과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1989)에라도 우리가 기대하던 대로 동아시아 4개국의 공산주의는 붕괴되지 않았으며, 중공에서 천안문사태(1989.6.4.)를 통한 민주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입니다. 즉 윤리가 불가능한 물질주의 철학,종교인 공산주의라는 서구적 악과, 황제/왕이 절대자가 되는 아시아적 정치전통이라는 악이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키신저가 가진 이런 단순한 정치철학적 전통이 미국정치계 속에 아주 뿌리가 깊다는 사실이 우리로서는 매우 큰 불행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1차원적 ‘힘’만 생각한 키신저는, 한국,중국,일본 사이에도 문화/문명에 있어서 섬세한 차이가 존재함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군사적,외교적,국방적,경제적 하드파워뿐 아니라, 문화적,종교적,심리적 소프트파워에서 이 세 나라는 얼마나 섬세한 차이가 나고, 또 그 차이가 얼마나 큰 정치체제의 차이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일본이 역사왜곡을 왜 그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하는지 미국이 제대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절대신과 절대법을 경험한 역사가 한 번도 없고, 특히 중국,일본에서는 오직 한 때 살다가 죽을 뿐인 황제.왕만이 종교적 숭배대상이 되거나 그들의 말만이 유일한 법이 되는 전통을 가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도 객관적,절대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조작하고 왜곡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매우 저차원적인 역사의식이 이 두 나라에 상존하는 것입니다.   

4. 키신저는 유대인이라는 한계에 머물렀습니다 
키신저는 은퇴한 후 자신의 정책결정에 있어서 유대인에게 편향된 경향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그렇다고 시인했습니다. 앞으로 미국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유대인의,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을 위한 나라’가 되어갈 것입니다. 또 유대인들이 미국의 최상층부 혹은 상층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 많아져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눈에 뜨이는 이런 유대인적 현상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만,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유대인의 심리,경향,철학,역사,유대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즉 유대인이 누구인가를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키신저와 같이 세속유대인들은 저 세상은 없고 오직 이 세상이 전부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에 대해 아주 본능적 감각을 가졌습니다. 키신저는 닉슨이 공화당 후보경선에 나왔을 때 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공화당 후보가 되자마자 태도를 바꾸어 찾아가서 도와줄 것을 제의하였고, 그 결과 이 둘의 결합은 닉슨의 마지막 행보까지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할 때에 키신저도 같이 실각할 것으로 모두 예상했지만, 용하게 살아남아서 이어진 포드 행정부에서도 정치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이런 유대인이 가지기 쉬운 ‘철학적 경향’은 절대적 이데올로기를 정치체제화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두 개의 전체주의적 정치체제인 국가사회주의(나치즘)와 계급사회주의(공산주의)아래서 매우 큰 고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총체적 이론,체계,시스템 자체를 세우는 것을 매우 혐오스러워하며, 특히 키신저와 같이 세속화된 유대인의 경우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정치적)선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를 아예 불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키신저가 생애의 마지막인 지금까지, 선악개념 자체를 정치계에 가져오는 것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Realpolitik(현실정치)의 대명사인 이유입니다. 그는 선과 악의 대립이 명확한 상황에서조차 모든 정치를 단지 ‘힘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잣대로만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키신저는 세계 정치사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인 판단이 분명해야 할 세 가지 상황에서도 중립을 취하며 방관자 자세를 취했습니다 : 1) 한국동란, 2) 자신이 주도하였던 데탕트와 중공과 관계개선으로 중공의 경제를 키워주었던 사실, 3) 소련의 붕괴와 그 이후의 동아시아 정치판도의 변화. 특히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중공을 키워주었으며, 그 결과 중공이 가장 악한 정권인 북한의 생존을 도와주었고, 2021년 현재 진행되는 미국과 중공 사이에 경제적,정치적,군사적 대치의 판을 그가 깔아놓은 셈입니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투키디데스의 함정(기존강국과 신흥강국이 대치할 경우 전쟁으로 비화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사실)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한반도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날 미국의 정치역사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성향,역사,민족,철학에 대해 더욱 예민하고 섬세한 분석을 해야 할 때입니다.

 


1) F.Braudel,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3vols. 1992 [문명과 자본주의]; G.Arrighi, Chaos and Governance in the Modern World System, 1999 [체계론으로서의 세계사]; Adam Smith in Beijing, Lineages of the 21st Century, 2009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

 

2) Peace, legitimacy, and the equilibrium(a study of the statemenship of Castlereagh and Metternich, 1954.


3) Kurt M. Campell, Rush Doshi; "How America can shore up Asian Order a Strategy for Restoring Balance and Legitimacy", Foreign Affairs(Jan. 12, 2021) wikipedia "H.Kissinger" 재인용.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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