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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내 고향은 춘천과 서울이 아닌 ‘한반도’

2021년 4월호(13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4. 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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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법, 요트이야기 15]

 

이제부터 내 고향은 춘천과 서울이 아닌 ‘한반도’

 

지난 5년간 세일링에 푹 빠져 바람을 맞으며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녔다. 통영에서 서울, 여수에서 제주, 완도에서 제주까지 남서해 섬들을 유람하고 오키나와에서 필리핀까지 서태평양을 바람을 타고 이동했다. 동해 쪽은 강릉, 사천 앞바다를 여러 번 다니긴 했지만 12시간 이상의 긴 항해는 해보지 못해 늘 궁금했다. 그러다 강릉의 김 선장님이 새 요트를 구해 부산에서부터 딜리버리를 한다는 소식에 포항에서 강릉까지 약 120해리(약 230킬로미터) 가량의 동해 여정을 함께했다. 세일링을 하며 새롭게 관점이 바뀌게 된 것은 지구 위의 여러 장소들에 대한 판단을 할 때 일반적인 국가 단위의 영토, 인종, 정치, 역사, 행정적 관점만이 아닌 지리, 기후적 관점에서의 지형과 바다가 추가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영토로 바라보지 않고 지구 행성 북위 30~40도의 대륙 동쪽에 놓인 반도 기후의 땅이라 한반도를 객관적으로 정의했을 때, 느껴지는 한반도는 조금은 다른 의미이다. 세일링 요트를 타고 20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평속 4~5노트의 잔잔한 속도로 꼼꼼히 들여다 본 한반도 섬과 바다의 외형은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무척 아름다웠다.


진흙뻘이 많고 완만한 바다 지형의 서해는 9미터나 되는 높은 조수간만의 차, 다른 바다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수심을 가지고 있다. 겨울에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불어오는 강한 북서풍의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아 바다가 얼어붙는 일도 종종 있지만 해넘이의 장관이 있는 아름다운 바다다. 뻘이 섞인 서해 쪽 해수욕장을 가본 사람들은 흔히 서해에서는 푸른 바다를 볼 수 없다고 오해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7~8킬로미터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 위에서 바라보면 서해 역시 상당히 맑고 깨끗한 바다다. 자연환경도 아름다워 얼마 전에는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선갑도에서 국제적 보호종인 무쓰뿌리돌산호, 부채뿔산호 군락이 새롭게 발견되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천사의 섬(1,000여개의 섬)이라 불리는 신안의 섬 군락, 고군산군도의 멋진 위용, 아픈 세월호의 흔적이 남아있는 진도 앞의 거친 파도, 유속이 세기로 유명한 울돌목 앞에 들물 날물이 몸을 섞으며 회오리치던 물살과 물이 부딪히며 우는 듯한 소리들은 섬과 바다가 빚어낸 제주 설문대 할망 이야기, 세이렌, 포세이돈 등의 신화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남해는 전 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바다다. 조수간만의 차도 그리 심하지 않고 잔잔한 옥빛 바다와 수백 개의 기암괴석, 섬들이 즐비해 장거리 세일링을 할 때도 섬들이 좋은 지표가 되어 쉽게 방향을 잃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수와 진도 사이의 섬들은 아무데나 들어가 정박해도 전라남도 특유의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맛볼 수 있어 추위와 더위, 배고픔에 시달리는 세일러들이 무시할 수 없는 큰 매력이 있는 곳이다.


이번에 포항, 울진을 거쳐 강릉까지 230km가량 종단을 한 동해는 서해, 남해와는 전혀 다른 바다였다. 동해의 대륙붕 옆으로 펼쳐진 대양의 파도가 그대로 밀려오는 곳인지 몰라도 커다란 너울성 파도 때문에 또 추운 겨울 세일링에 떨어진 체력과 멀미로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항해 중 보기 힘든 참돌고래 떼를 만나 수 십 분간 선장, 크루들 모두 소년이 되어 함께 바다에서 뛰어노는 큰 행운이 있었다. 동해의 아름다움은 한반도의 척추라 불리는 백두대간 위로 해가 저물면서 시작되었다. 강릉으로 반도의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길, 세일링 내내 왼쪽으로 따라붙으며 겹겹이 이어진 산맥들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빛의 굴절각에 따라 먹의 농담과 가뭇한 경계의 흐붓한 선으로만 산을 겹쳐 그린 커다란 수묵 산수화를 하루 종일 직관하는 느낌이었다. 산을 그린 옛 조상들의 수묵 산수화는 오히려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강릉을 바로 앞에 두고 일출로 유명한 정동진에서 해넘이의 아름다움을 지켜보고 있는데 때마침 스피커에선 ‘Husabik’(My Hometown)이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서해와 남해에서 내가 보았던 바다, 섬들의 아름다움이 머릿 속에 겹쳐지면서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작은 반도에 불과한, 이 땅의 삼면에는 이렇게 각기 다른 아름다움들이 존재하고 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괜시리 코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김 선장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 고향은 춘천과 서울이 아닌 한반도라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각기 다른 아름다움과 많은 산과 호수, 강과 바다와 아름다움을 가진 대한민국 전체를 내 고향이라 여기며 이를 아끼고 또 보호할 것이라고.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성정을 지닌 나에게 애국이라는 의미는 이렇게 반도의 바다 여행을 통해 조금은 다른 결들로 새롭게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확장은 내가 보았던 적도의 바다, 태평양으로 확장되며 아름다운 지구 전체로 이어지려 꿈틀거리고 있다. 


해돋이와 해넘이, 바다와 산과 섬들, 파도와 바람, 하느님이 만드신 이 자연을 늘 날 것으로 접하고 이에 순응하며 모험을 꿈꾸는 모든 요티들의 운명은 결국 이 아름다운 지구를 보존하는 환경주의자로 귀결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임대균 (세일링서울요트클럽모아나호 선장)

keaton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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