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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세대의 권리,의무 혹은 자유,책임 그리고 겸손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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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명)의 황혼에서 새 문화(명)의 여명 36]

 

각 세대의 권리,의무 혹은 자유,책임 그리고 겸손

 

“각 역사에 자신의 존재의미를 성취하지 않는 세대는 잊혀지고 소멸될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존재할 자격이 없다”

 

한국은 지난 100여년 동안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일본이 벌인 태평양전쟁과 북한,중공,소련이 한반도에서 벌인 한국동란으로 남은 폐허 위에 모든 것을 새로 건설해야 했습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내부도 역동적으로 변화되고 있지만, 우리 외부에서 이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시대와 지구를 벗어나 우주시대를 맞이해야 할 정도로 전 세계는 우리 내부보다 훨씬 더 격동적으로 출렁댑니다. 이전에는 환갑 지나면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중년 이후는 100세까지, 코로나세대는 120-140세까지 살 것이 예상되는 시점에 왔습니다. 이런 중에 지금의 한국을 구성하는 다섯 세대들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망하면서, 각 세대가 가지는 권리,의무 또는 자유,책임, 그리고 이에 반드시 따라야 할 역사 앞에서 취해야 할 겸손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오던 역사와 함께 동양적인 것과 모조리 단절됨과 동시에 서양적인 것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각 세대가 각 시기를 잘못 보내면 잊혀지고 존재할 가치 자체가 없을 것입니다.
각 세대가 보내는 청·중·장년기는 권리와 함께 의무, 그리고 자유와 함께 책임을 명확하게 가집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이루었던 삶을 현재적으로 돌아볼 때 꼭 필요한 태도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겸손입니다. 청·중·장년기라는 ‘준비기-활동기-결실기’는 일생에 딱 한 번 주어지고 지나가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때가 되면 다음 세대에 역사를 주도할 바톤을 반드시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겸손이 없이 단지 자신이 이루었던 보잘것 없는 삶에 대한 정당성만 변명처럼 늘어놓는다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소멸되어 존경 대신에 버림받는 쓸쓸한 노년기를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대절대주의’ ‘시대절대주의’
자신의 세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이 두 개념을 먼저 다루어봅시다.
‘세대절대주의’란 국가,민족의 범위에서 각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들이 지녔던 가치와 겪었던 경험만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경향을 말합니다. 특히 한반도 한민족은 20세기 내내 매우 다양한 외부적 압박과 내부적 분열로 격렬한 시기를 보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세대는 매우 강렬한 경험을 쌓으면서 가치를 형성해왔고, 그것을 거의 우상시하여 ‘세대절대주의’에 빠지기 매우 쉽습니다. ‘시대절대주의’는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 자신들 시대가 경험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겨, 소위 ‘시대정신’ Zeitgeit를 가지는 경우입니다. 교통,통신의 급격한 발달로 세계가 점차로 하나로 되어가는 지금, 이 두 절대주의는 점차로 하나의 현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두 절대주의는 자신들이 팽팽하던 시절인 청·중·장년기에 자신들보다 앞선 세대를 함부로 평가하고, 다음 세대의 미래를 함부로 결정지으려 드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세대간의 존경과 연결보다는, 판단과 증오와 단절을 유도하면서, 자신들이 꼰대로 비아냥거렸던 앞선 세대보다 훨씬 더 꼰대기질을 발휘하려고 드는 경우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위험을 기억하면서 각 세대를 돌아봄에 있어  청·중·장년기, 특히 청년기(20~30대)를 어떤 환경 가운데 지냈으며, 어떻게 실력을 쌓아 극복하며 노력하고 성취했느냐에 따라 궁극적 평가가 좌우됩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신의 청년기에 겪었던 경험,가치관을 가지고 삶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항상 매우 어렵고 혼란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한반도,한민족이 받은 내,외부의 도전은 지구상에서 비교할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네델란드나 이스라엘 정도에 비길 수 있겠지만, 우리가 받는 도전은 이들보다 훨씬 큽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는 외적 도전인 네 초강대국들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 1) 지구상의 최대 영토를 가진 러시아, 2) 지구상에서 인구 최대 국가인 중국, 3) 현재 세계 유일의 패권국인 미국, 4) 언제 또 살벌한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강력한 국가 일본. 그런데 이런 외적 도전을 우리가 오히려 더 풍성해지고 다양하게 될 기회로 삼으려면, 먼저 내적으로 세대간에 총체성,일체성을 일구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항구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층간의 갈등’과 ‘세대간의 갈등’중에서 어느 것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후자, ‘세대간의 갈등’입니다. 즉 모든 살아있는 다양한 세대들이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발전하는 일입니다.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다섯 세대(90~80 / 70~60 / 50~40 / 30~20 / 10~0 코로나세대)가 각 세대의 역사에서 성취해야 할 존재 목적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그 성공에 대해 감사할 뿐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것을 정직하게 반성하고, 역사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세대간에 총체성,일체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제1세대(90~80대) : 일제 말기와 한국동란중에 청년기를 보낸 분들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경험을 섬뜩하지만 탁월하게 묘사한 두 책《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아우슈비츠의 문신가》은 우리의 제1세대 분들의 경험을 잘 대변합니다. 이분들의 최종 목적은 그야말로 짐승같이 여겨질지라도 현재 생존하는 것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거리에서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한 몸으로 걷고 계신 우리의 제1세대 분들이 대단하고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분들은 20세기에 지구와 한반도에 벌어진 두 가지 최악의 전쟁을 경험하고도, 본인,가족, 그리고 대한민국을 살아남게 만드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쟁광란으로 징병,징용,성노예로 끌려갔지만 살아남았던 태평양전쟁, 그리고 북한,남한뿐 아니라 중공,소련,미국까지 참여한 강대국들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결국 자신,가족,국가를 지켜낸 한국전쟁이 그것입니다. 또 이 두 전쟁 사이에 청년기를 보내다 결혼하여 38선을 넘어 남한에 올 때 우는 영아의 입을 막아서 죽인 경험도 이들은 가졌습니다. 이들이 남한에 가면 다시 아이를 낳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변명했다고 한들 어찌 후세대가 감히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김종삼의 시‘민간인’참조) 이 분들에게는 심지어 권리,자유로서의 결혼과 공부는 일종의 사치였으며, 단지 개인,가족,국가의 생존이라는 의무 하나를 이룬 것도 엄청난 성취임을 후세대인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설령 전쟁이 종료되고 겨우 살아남아 대학에 돌아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 겨우 얻은 경성제대 학사졸업장 한 장으로 바로 대학교수가 되어 재빨리 영어,일어 원서를 번역,등사하여, 후세대의 교육을 위한 가장 낮은 단계의 기초를 쌓았던 분들입니다. 설령 외국에서 유학을 한다 하더라도, 고국에 봉사하기 위해 빨리 돌아오려고 박사학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석사로서 만족하였으며, 나중에 돌아와서 동료 교수가 된 제자에 의해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마주치면 존경의 눈길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제2세대(70~60대) : 박정희의 산업주도하의 독재시대 청년기를 보낸 분들
제2세대를 둘로 나누면 이 분들을 더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현 70대의 치명적 약점은 한국동란 전후 태어난 분들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숫자가 워낙 적다는 겁니다. 또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유아기 때에 기근이나 천재지변을 겪은 세대들이 가진 지도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20~10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최고지도자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눈에 띄게 모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좋은 대학을 나오고 공적 시험을 통과해서 외적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생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제1세대가 그 이후 세대의 삶을 준비시킬 수도 없었으며, 제2세대 자신들 스스로도 지도력을 제대로 배양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 계파에 상관없이, 편견없이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5년동안 한국이 배출한 최고지도력인 대통령 네 명 모두 비정상적 결과를 보인 것<노무현(자살),이명박(감옥),박근혜(감옥),문재인(?)>도, 바로 어려운 영유아기를 보내며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매우 좁은 인력풀 중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우리는 솔직히 시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세대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역사의 뒤안길로 방금 들어선 이 세대를 향해 후세대가 자신들에게 매우 익숙한 잣대(정의,민주주의 등)를 절대적으로 또는 과도하게 들이대어 재단해 버리는 만용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이들이 잘 준비되지도 않았다 할지라도, 앞장서서 지도자 역할을 하려고 한 것만 해도 장한 일이 아닐까요?  
두번째로 자기들의 특수성을 ‘58년 개띠’(1958년생)로 표현하기를 즐기는 현 60대는, 2차대전후 미국(1945)에서와 동일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조금 늦게 마무리된 한국동란(1953) 이후에 태어난 소위 ‘베이비붐세대’입니다. 이 분들은 그야말로 네 가지 엄청난 고통스러운 국내외적 도전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극복하고 이 나라가 부강할 기초를 쌓으신 위대한 분들입니다. 두 가지(4.19과 5.16)가 국내적 도전이었다면, 다른 두 가지(베트남 파병과 중동건설)는 국외를 향하여 과감하게 도전한 역사입니다. 이 분들은 사 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를 잘 알았습니다. 이들은 그 활동 반경을 국내적으로 위축시키지 않았고, 전 세대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과감하게 국외로 개척하는 일에 젊은 청·중년기를 보낸 정말 위대한 세대입니다. 두 가지 국내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민주화’라는 조금은 고급스러운 목표보다는, ‘생존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는 경제건설’이라는 약간 낮지만 매우 실용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목숨걸고 베트남,중동에서 싸웠으며 가정의 풍요와 나라의 부강을 위한 기초를 확실하게 쌓았습니다. 
이 제2세대(70~60대)는, 과거 일본,중국이 피상적으로 서양을 받아들인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 서양문화(명)를 철저하게 배우고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 위험도 알며, 한편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문화(명)도 제대로 반성하려는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쓰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서구의 최고대학에 과감하게 유학하여 최고학위를 받아왔으며, 대륙적 서양(독일,프랑스)과 해양적 서양(영국,미국)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흡수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 세대인 제3세대 이후가, 세계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움직일 때에 활동할 기초를 확실하게 쌓은 겁니다. 즉 우리를 도운 미국에 고마움을 가지지만 그 정신적,윤리적,정치적 변동을 예민하게 추적하며,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초강대국들(일본,중국,러시아) 한가운데 다시는 이전의 수치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을 기초를 확실하게 이루었습니다.  

제3세대(50~40대) : 독재를 극복하는 민주혁명의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분들
이전 세대들은 이제 지나갔으며, 그 이루었던 과거의 자취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3세대(50~40대)도 조만간 내려오겠지만 아직 현역에 있으면서 역사를 현재 조성하고 있으며, 또 설계한 미래가 조금 있으면 바로 다음 세대에 나타날 분들이기 때문에 매우 냉정하게 평가해야 건설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청·중년기에 가져야 할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학위나 최고의 점수를 받아오거나, 또 거기서 교수직을 얻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은 지난 선배 세대들의 목표였을 뿐입니다. 오히려 이 현세대들은, 이전에 미국이 그러했듯이, 자기가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공분야 때문에 오직 한국에만 유학하기 위해 온 세계에서 몰려드는 목표를 이루어야 했던 겁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들이 청·중·장년기에 성취해야 할 것은 서양문화(명)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하며, 동양문화(명)의 한계를 선명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서양문화(명)도 동양문화(명)도 아닌 제3의 문화(명), 근본적 문화(명)의 실체를 세계 앞에 선보임으로 미래를 준비 완료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 제3세대는 이러한 것을 마련했으며 그것을 행할 능력을 그 다음 세대가 이룩하도록 기초를 마련하였을까요? 이들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이들이 보낸 청·중년기는 그야말로 정치과잉의 시대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종말로 하나의 독재(박정희)가 물러난 후, 또 다른 독재(전두환)의 등장, 그리고 이어진 민주화 타협(노태우)과, 문민정부(김영삼)로 이어지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를 보낸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다음 정권(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질 당시 이 세대들은 이미 중년기를 넘길 때였습니다. 젊은 시절 20년을 수많은 정치적 변혁으로 날과 밤을 지샜기 때문에, 정치 외에 일구어야 하는 문화(명)전반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은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이들은 정치과잉 정도가 아니라, 삶의 총체로서의 문화가 모두 정치로 매몰되는 현상을 지금껏 보였습니다. 가령 이들의 중장년기인 지금, 이들이 국내 정치를 잘했다고 친다 하더라도, 국내를 벗어나 외부로 나가 그동안 길렀던 총체적 실력으로 막강한 국제정치적 힘의 도전을 넉넉하게 이겨본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나 되나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마치 종교적 회심하듯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던 젊은 시절의 열정으로 정치를 바로 잡았다고 확신한다면, 수많은 정치적 법조인들이 그 다음에 가야할 정상적 행보는 좁디좁은 한국 내에서의 항구적 정권확보가 아니라, 뉴욕의 70% 이상을 장악한 유대인 변호사들을 능가하는 전문성을 확보하는 길이 아니던가요? 그 당시에 독재에 불만을 품지 않았고 음양으로 항거하지 않았던 이가 어디 있던가요? 반면에 정치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자 자신이 정말 하고 싶고 잘하는 일로 돌아가 전적으로 몰입하여 세계에서 최고의 일가를 이룬 존경할만한 50~40대가 소수지만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사하고 크게 기뻐합니다. 정반대로 정치판에 계속 머물며 완장차고 과거의 경력을 자신만 이룬 것으로 화려하게 포장해서 기득권화하며, 심지어 그것을 자식들에게도 물려주려고 거들먹거리는 행태를 이전 세대와 이후세대는 모두 고통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공산주의/사회주의에 한 번 물들어 보지 않으면 타락한 자들이며, 나이가 들어서도 거기에 머물러있으면 어리석은 자들이다는 교훈은 정말 맞는 말 아닐까요? 심지어 1989년에 일어난 서구 공산주의의 파멸, 같은 해에 일어난 천안문사태 이후, 좌파적 정치과잉에 물든 이들 중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쉬쉬하며 레닌을 여전히 숭상하는 경희대의 슬라보에 지젝이나 아감밴 같은 현역 좌파 이론가를 여전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로 이웃에서 불었던 민주화열풍인 천안문사태에 대한 중공의 책임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고, 이들이 공산당의 전형적인 속임수 전략이나 히틀러가 동원했던 수권법(1933)을 흉내내어 중공에 나라를 바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제1,2세대가 의혹을 품는 것은 어떤 면에서 정당합니다.

제4세대(30~20대) : 혼란한 동아시아와 세계 속에서 분투하며 청년기를 보내는 분들
조만간에 한반도,한민족의 역사적 방향키를 이어받으실 제4세대는 전 지구의 80억 인구가 하나의 국가처럼 되어 살아가는 미래를 미리 내다보며, 평화로운 지구상을 끈질기게 성취해야 할 세대인 겁니다. 첫째,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역사가 회전하는 시대가 열릴 것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시아의 엄청난 인구, 다양한 민족, 유구한 역사,전통을 슬기롭게 정리하며, 20세기까지 세계를 석권하던 물질육체문화 위주의 유럽문화(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명)를 창조할 기초를 놓을 분들입니다. 둘째, 이어올 우주시대를 대비해 다음 세대인 제5세대가 신혼여행지는 적어도 달나라, 화성 이상을 선택하는 발판을 놓은는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이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현재에도 문화(명)의 전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천오백만 명의 유대인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가게 돕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제4세대가 개들이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만 마리나 되는 애완견을 키우는 소.확.행.에 집착하는 소시민적 문화를 추구한다면, 반드시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한반도가 처한 항구적 정치환경이 그런 안일한 삶 자체를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외부의 힘에 의해 이후 세대를 징병,징용,위안부로 노예처럼 끌고 가버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살벌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이민가야 할 ‘아무도 살지 않는 땅’ neverland으로 환상여행을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5세대(10~01대) : 그 이후 코로나-19세대
자의식이 잘 발달하지 않은 이 마지막 세대가 역사의 키를 잡을 30~40년 후의 일은 우리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적 변혁과 문화적 전환들이 급격히 일어날 것이며, 지구중심적인 인간의 삶은 총체적으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지구는 단지 전진(훈련)기지가 되기 시작할 것이며, 태양계 전체를 개척하는 데에 온 인류가 나서야 할 시대가 될 겁니다. 그렇게 지구를 떠나기 전에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과거에 대한 총체적 정리입니다. 그 이후에 이전 세대의 잘못된 버릇인 소.확.행. 대신, 달을 전진기기 삼아 소행성대의 자원을 활용하며, 명왕성이 있는 카이퍼벨트까지 도달한 후에 태양계 끝자락인 오르트 구름까지 전개할 우주개척의 기반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이 세대는 겸손하게 이전의 다섯 세대가 쌓아놓은 역사와 유산을 귀중히 여기며 이들을 존경하는 가운데 자신의 세대의 목적을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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