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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장의 공부 이야기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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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장의 공부 이야기

 

다니던 독서실에 공부 좀 한다고 소문이 퍼져 고등학생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여전히 ‘대입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진로 설정을 돕고, 공부 욕구에 대해 고민하고, 또 이런 일들로 먹고 살고 있으니 이젠 스스로를 어느 정도 이 분야의 ‘전문가’라 불러도 될 것 같다. 내 직업의 본질은 이야기와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 좋은 인터뷰어, 혹은 리스너이다. 지난 20년간 수 천 명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학교 안팎에서 만나 어려서부터 학생들이 자라온 이야기, 공부해온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와 집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누구나 선망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어떻게,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는지 그 특징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렇게 경험칙으로 쌓인 학생들에 대한 관찰기와 학습 사례들을 지면을 빌어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한다.

지난주에는 딸아이와 구구단을 공부했다. 요즘 시대에 아홉 살에 겨우 구구단을 공부하나 하겠지만, 아이가 알고 싶다 할 때까지, 먼저 질문할 때까지 지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제껏 지키고 있다. 선행한 친구들 몇이 구구단을 외고 있어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먼저 재미로 외운 2단을 넘어 3단을 가르쳐 달라 한다. 원리를 알려주었더니 재밌다고 하나하나 진행하다가 9단까지 단숨에 갔다. 내친김에 가르쳐 준 9단 숫자 패턴들의 신비에 아이는 감탄하고 낄낄대며 매료되었고, 공부에 가장 중요한 흥미를 잃지 않고 곱하기의 원리를 깨쳤다. “엄마, 난 이제 수학과 미술을 할꺼야…” 아이가 ‘하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건 스스로 성취감을 느낀 일들 뿐이었다. 딸아이를 보며 동갑내기 동네 친구가 자기 엄마에게 공부 좀 그만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오버랩 된다. 학습지와 서너 개 학원들을 돌고 돌며 자라고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절반 이상이라,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한 댄스 학원 외에 다른 학원을 보내고 있지 않는 모습에 아내는 불안해하고 함께 놀 친구들이 다 학원에 가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아이는 언제든 스스로 크고 스스로 자라난다. 어려서부터 자기 욕구가 아닌 엄마의 욕구로 학원들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공부에 대해 스트레스와 거부감부터 자라나 공부에 대해 가장 중요한 Grit(깡,끼)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내신 2등급 이상으로 올라가기 쉽지 않다는 숱하게 봐온 직업적 경험칙이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부모로서 여전히 어려운 숙제는 아이의 질문에 잘 대답해 주되, 아이의 흥미 이상 나가지 않는 일이다. 잘하건 못하건 크게 반응하지 않고 그 과정을 칭찬해 주는 것이다. “아빠, 틀린 건 좋은 거야?” “응, 틀리는 건 내가 모르는 게 뭔지 알려주는 거니까 틀려도 좋은 거야. 맞는 문제들은 확실히 아는 거니까 또 좋은 것이고”

이제껏 3천 명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친구들을 만나 자라온 성장 스토리들을 듣고 대학에 보내며 깨닫게 된 몇 가지 공부에 있어서의 원칙은 잘하는 것, 흥미 있어 하는 것들을 잘 찾아주고 학습을 강요하지 않으며 스스로 얻는 깨달음과 앎에 대한 욕구와 흥미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 관리는 부모 교육에서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마음에 언어, 비언어적으로 공부에 대해 강요한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태도와 뉘앙스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나고, 부모의 가장 많은 것을 닮고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 그걸 느끼지 못할 리 없다. 그 순간부터 지식은 내가 욕구와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도전하고 쌓아가는 재밌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눈치를 보며 암기해야 할 부담스럽고 재미없는 무언가가 된다. 사람의 심리가 참 이상한 점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필요한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듯 들으면 그에 대한 반감이 생겨 그 의욕이 오히려 꺾여 버리고 마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는 부모의 말을 이성적 의미가 아니라 감정적 의미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부모가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자식에게는 곧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자녀들은 공부하는 부모, 무언가 집중해 노력하는 부모, 자신의 학업과 성장을 위해 고생하고 희생하는 부모의 옆 모습을 보며 스스로의 자각 속에서 공부의 필요성을 자각하곤 할 뿐, 절대 말로 변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잔소리와 말로 변할 거였으면, 다들 서울대 갔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에게 이야기하는 첫 번째는 말이건 비언어적 표현이건 공부에 대해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공부가 왜 재밌는지, 그것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혜택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효과가 더 좋았다. 다음 지면을 빌어 이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해보자. 

 

바리에테 창의교육 연구소장
대학인 입시연구소 대표 임대균 소장

keaton7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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