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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대가, 집 밥의 품격을 높인 요리연구가 ‘황지희’를 만나다

2021년 6월호(14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3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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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한식의 대가, 집 밥의 품격을 높인 
요리연구가 ‘황지희’를 만나다

 

바른생활 할아버지·할머니, 막무가내 말썽쟁이 손녀
6남매 맏이인 저는 7살에 친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맡겨졌어요. 아버지는 결혼 전에 사업을 하며 돈을 많이 번 경험이 있어 군대에 다녀온 후, 사업이 잘 될 줄 알고 엄마와 결혼도 했지만 연이은 실패를 하셨죠. 부모님께서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 즈음 정읍에서 과일, 야채 경매를 시작하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척 바른 생활을 하시는 분이셨고, 특히 할아버지는 이장으로 활동하시고 면의원에도 출마할 정도였지요. 반면 할머니는 무척 작은 체구였지만 완벽주의에 살림을 기가 막히게 잘하셨어요. 집안에 항상 끊이지 않았던 손님들 대접과 수많은 제사를 도맡아 혼자 다 하셨죠.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온갖 말썽을 피웠고,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교장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오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TV를 보고 싶어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종일 농사일에 바쁘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무척 심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불만을 학교에 가지 않거나 수박 서리 등의 다른 것으로 표출을 한 것이죠. 워낙 사건 사고를 많이 쳐서 끝내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할아버지 집에서 퇴출당했죠.(웃음)


엄마보다 할머니 음식을 더 맛보다
많은 제사 때마다 저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음식 준비하는 것을 구경하며 잔심부름으로 할머니를 도와드렸습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들이 제 속에 알게 모르게 많이 잠재되어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는 음식을 만들면 그중에 정말 맛있는 것은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죠. 대신 잘못 만든 못난이들이 나오면 그거부터 먹으라고 모아놓으셨는데, 세상 먹기 싫었어요. 그래서 눈치채지 못하게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을 슬그머니 빼먹곤 했는데, 할머니는 그걸 귀신같이 알아채셨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엄마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
할아버지 회갑 잔치 날이었어요. 일가족이 모여 산자도 무쇠솥에 튀기며 온갖 상차림을 하는데 엄마도 회갑이라 일찍 오셨죠. 미술을 좋아한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8절지 도화지에 풀과 파란 물감을 풀어 손가락으로 오륜기 모양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너무 재미있어했어요. 하지만 집에서 하고 싶어도 너무 청결하셨던 할머니는 저 혼자는 못하게 하셨죠.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저는 바쁜 엄마를 작은 방으로 불러 앉혀 놓고, “엄마! 이거 숙제야, 엄마랑 해야 돼”하고 엄마가 보는 가운데 그림을 그렸어요. 이게 엄마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이었죠. 이렇게 악착같았던 저는 이후로 한국무용도 배우고, 운동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이 운동선수들 군기 잡는 모습을 보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무척 싫어했기에 깨끗하게 포기하고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김앤장에 들어가다
추천을 받아 입사했는데 처음엔 재미있었어요. 한때 꿈이 변호사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익숙하고 반복되는 일들이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퇴근 후, 지하철 끊길 시간까지 호프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습니다. 저는 고인 물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항상 새로운 경험하기를 좋아했거든요. 4년 정도 김앤장에서 근무하고, 반도체 회사에서도 일을 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그만두게 되었죠.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맡겨져 컸던 저였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지는 그런 스트레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세상 어떤 스케줄이 있어도 아이들을 늘 데리고 다녔습니다.


38세, 뒤늦게 요리로 터닝
육아에 집중하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때마침 집 가까운 곳에 메이필드호텔이 있었습니다. 호텔 잔디밭이 아이들이 놀기에 좋아 보여 곧장 데리고 갔죠. 그러던 어느 날, ‘호텔조리 1기생을 뽑는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겁니다. 입학 날짜를 확인 후, 6개월간을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 둘째가 어려, 이 젖먹이를 어디에다 맡기고 공부를 하느냐가 관건이었죠. 하지만 일이 풀리려고 했는지, 3~4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구립 어린이집에 들어갈 기회가 왔고, 의외로 아이는 울지도 않고 잘 적응을 했죠. 그렇게 해서 호텔에 원서를 넣고 합격을 기다리고 있던 저는 2~3번 대기라는 말에 학교를 찾아가 열심히 할 테니 꼭 붙여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38세의 나이에 요리 인생의 길이 뒤늦게 열리게 되었죠. 1기생으로 들어가서 임원도 맡고,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수료를 했습니다.

 
바로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을 최고득점으로 합격하고, 양식조리사기능 시험에서는 자만을 했는지 떨어져, 다시 도전해 좋은 점수로 합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메이필드호텔 쉐프 면접을 보는 자리였습니다. 1기생 전원에게 면접을 보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누가 봐도 성적도 좋고 실력도 있는 제가 붙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다 합격하고 저만 떨어진 겁니다. 나이도 있고, 좀 인상이 강해 보였나 봅니다. 고분고분하고 말 없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것 같아, 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그 이후 궁중음식과 중식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두 시간이 이틀 같은, 초짜 한식강사로 첫발을 내딛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2008년 농협문화센터 한식강사로 서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하나만 땄지, 문화센터 분위기도 모르는 가운데 12주 동안 메뉴를 짜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해야 할지, 강의하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는 가운데 4명의 수강생이 덜컥 모집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완전 40~50대 베테랑 수강생들이 온 것이죠. 정말 그분들에게 미안했어요. 강의시간은 30분을 제가 시연하고, 1시간 정도 만들고, 만든 음식을 먹어보는 시간까지 두 시간인데, 저에게는 이 시간이 이틀 같았죠. 


문화센터 매니저는 경력 없는 저를 미심쩍어하며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수강생들은 가끔씩 ‘이거 아닌데’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진행하는 가운데, 어찌어찌하여 이탈자 없이 12주를 무사히 마쳤어요. 하지만,‘아! 내가 너무 부족하구나’하는 제 안에서의 큰 울림의 소리를 듣게 되었죠. EBS에서 약 10년 정도에 걸쳐 방영된 ‘최고의 요리비결’이라는 프로그램을 전부 보며, 한 자 한 자 워드 작업을 한 달 반 동안 하고 레시피를 12권 스프링 책으로 만들었어요. 또한, 틈나는 대로 요리로 유명한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음식 수업을 들었습니다.

1주일에 9개 요리클래스, 20명 모집에 80명대기
우여곡절 끝에 12주를 마친 것이 한 줄의 경력이 되어 홈플러스 문화센터 일산점에 가게 되었죠. 모집인원이 점점 늘어 24명으로 마감이 됐습니다. 일주일에 인천, 목동 등 문화센터에서 9개 요리클래스가 열린 가운데, 밤낮없이 신나게 요리 수업을 했죠. 수강생들에게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서 어떤 사람들은 단체로 등록해 3개월 동안을 다니기도 하고, 어떤 분은 만 3년을 꼬박 들은 사람도 있었죠. 한강 신도시에 있는 이마트 문화센터가 오픈했을 때는, 20명 모집에 80명이 대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문화센터의 꽃인 백화점까지 진출해 출강하게 되었죠. 하지만 문화센터를 통해 인기를 얻었지만, 그것으로 온전한 수입은 되지 않았죠.

 


집 거실에서 쿠킹클래스 열고, 초 간단 레시피와 메뉴개발  
2012년 즈음, 외부 강의를 거의 정리하고 집에서 쿠킹클래스를 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문화센터는 테마별로 강의를 해야 하는데 집에서는 4시간짜리 궁중음식도 하고, 좀 더 난이도 있는 것들을 가르칠 수가 있었기 때문이죠. 더구나 수강생들은 복잡하고 양념이 많이 들어간 것은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요. 이것을 고려해 양념을 최대한 간단하게 하되 맛은 살리도록 변형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죠. 이런 작업은 고되고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은 저를 레시피 만들기의 달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달인이라기보다 단련이 된 거네요. 그래서 지금도 요리를 가르치고, 레시피 만들고, 메뉴개발에 정말 자신이 있습니다.

‘요리는 소풍’
요리는 괴로운 게 아니라, 즐거운 ‘소풍’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남에게 등 떠밀려 하면 세상 모든 일이 다 싫지 않나요? 요리도 마찬가지이죠. 자면서 생각해도 요리가 즐거울 때 배워야지,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면 실력이 늘지 않아요. 저는 꿈에서도 레시피를 만들었어요. “넌 요리를 잘하니까, 요리 한 번 해봐”이런 말에 시작하는 것은 등 떠밀려 하는 거예요. 주체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죠. 어쩔 수 없이 와서 하는 사람은 벌써 칼질에서부터 하기 싫은 게 보이거든요.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요.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계량화 하는 것, 메모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제 수업에 오는 분들을 보면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한데, 하나같이 얼마나 진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고, 음식도 더 싸주고 싶습니다. 요리는 소풍이지 돈을 벌기 위해 요리를 한다면 투자를 많이 해야 되고, 경영은 또 다른 문제이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쉐프의 인성입니다. 맛은 1프로 떨어지더라도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자만하고 교만한 인성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맛을 잡아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쉐프는 술과 흡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나의 요리철학,  ‘집 밥이면 다 해결된다’
‘집 밥 도시락 명인 1호’로서 13년간 요리를 하며 생각한 것은 ‘집 밥이면 다 해결된다’입니다. 물론 제약회사, 건강보조식품, 녹즙 회사 등이 들으면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겠죠.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좋은 과일을 갈아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장에 머무를 시간도 없이 다 내려가 흡수될 틈이 없어요. 꼭꼭 씹어서 위에도 남기고 차츰차츰 내려가게 천천히 먹어야죠. 


충남대 이계호 명예교수도 신선한 채소와 현미 등을 먹어 소화 시키는 게 더 건강하지, 몸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을 한 주먹씩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셨죠. 통계에도 나와 있지만 조미료는 음식의 감칠맛을 돋우어 식욕을 자극해 밥 한 공기 먹을 것을, 두세 공기 먹도록 과식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제가 만든 레시피는 굉장히 쉬워 많은 양념이 필요 없어 집에서도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한식의 토대 위에 현지에 맞게 변형 
외국에 다녀보면 오지 빼고는 한인마트가 다 있더군요. 심지어 안흥찐빵도 있을 정도니 어지간한 양념은 다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식의 꽃인 김치를 예로 들어, 그 나라에 배추가 없다면 배추 대신 양배추, 양상추, 로메인, 청경채 등으로도 김치 만들기가 가능합니다. 김치 양념만 있으면 되니까요. 우리나라산 멸치액젓이 없다면 피쉬소스를 쓰면 되고요. 전통한식재료만 고집한다면 외국인들은 한식을 만들 수 없겠지요. 어딜 가든 없는 재료에 대해 1안, 2안, 3안, 4안 등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어떤 정보가 필요한 것이죠.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중FTA체결 23주년 기념으로 중국에서 열린 궁중음식 행사에 나갈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셨죠. 하지만 간혹 아쉽기는 매번 부서의 보직이 바뀔 때마다 이어지지 않고 새로 리셋이 되기도 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
2019년, ‘각국 정상 수석 쉐프 총회’(CCC, Club des chefs des chefs)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각국 정상을 모시는 25개국의 수석 쉐프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자리였습니다. 기획사에서 저에게 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며 찾아와, 한국음식을 알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기획해 달라고 했죠. 


고민한 끝에 전례없는 한식 쿠킹클래스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탄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에서 자라는 식재료로 코스 음식을 짜고, 레시피도 영문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사관 내외분들도 갈라쇼에 참석할 거라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신안 박우량 군수님도 책과 레시피 만드는 비용과 식재료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죠. 하지만 기획사의 준비 미흡으로 행사 1주일 전에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제 자비로 먼저 책을 내고 영문 레시피도 만들었는데, 책만 남고 행사는 붕 떠버린 것이죠. 무책임한 사람들과 일을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명백하게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국위선양이라고 말하면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한식을 25개국 지도자들을 모시는 수석 쉐프들에게 알릴 기회를 개인들의 욕심으로 무산시킨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고 안타까웠습니다.

새로 마련된 요리 스튜디오 
먼저 이 공간이 ‘집 밥의 산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과 새로이 생겨나는 직업도 있는데, 제가 요식업계 백만 일자리 창출프로젝트 ‘휴비즈’의 상임위원장으로서 사업이 잘 진행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명인 선정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한 곳에서 한 우물을 10년 이상 판, 인성이 반듯하고 뜻과 포부가 당찬, 제대로 된 명인을 발굴하고 추천하는 장소가 되길 바라고요. 무엇보다 한식대가 선정위원장으로서 여러 나라에 한식을 잘 알릴 수 있는 일을 기획해내는 아이디어 장소이자, 한식을 세계화함에 있어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한명회의 압구정이나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국반찬산업협회 부회장으로 이곳에서 많은 분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전 국민이 힘들고 아프지만, 소상공인들이 아사 직전입니다. 그나마 잘 되던 곳도 힘든 상황에서, 겨우 운영된 곳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지자체와 만나 일정을 조율 중인데,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메뉴개발 교육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재작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면서 작년에는 울산, 그전에는 광진구에서 메뉴개발을 도와드렸고, 또한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SNS상에 신뢰 가고, 인품 있는 쉐프의 맛집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한 경우 음식 전수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제가 하는 방법은 조미료를 절대 쓰지 않고 레시피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쉐프라면 조미료는 넣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조미료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전국에서 건강을 생각하는 수강생들이 레시피를 배우고 싶어 찾아오고 있습니다. 건강한 레시피의 집 밥은 면역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되니까요. 다양한 암환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환자들이 먹을 수 있는 정확한 레시피를 찾는 분들도 많습니다. 수술한 환자가 본인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음식 수업을 들으러 오시기도 합니다. 대학병원 암센터와 한방병원에서 환자치유식에 관한 레시피를 공동 출간 하자는 제안이 들어오고 있는데, 환자나 가족을 위하여 누군가는 나서서 레시피를 개발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먹고 건강하게 110세까지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진정되면 곧바로 해외로 나가 한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뛸 계획입니다. 

뒤늦게 요리세계에 입문한 황지희 대표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 같아 보였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넌 6개월도 못할 거야”라고 한 말을 무색하게 13년째 이어오고 있는 그는, 그동안 요리뿐 아니라, 어떤 부탁이 들어온다 해도 겁내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다 해냈다고 합니다. 또 일을 진행할때도 같이 하는 사람들, 제자들을 끝까지 독려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황지희 대표 입에서 의외로 ‘허당 황지희’라고 본인을 이야기할 때는 인간적인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무엇보다 최근 마련한 요리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사람들, 기발한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황지희(1971~) 
전북 정읍 출생

호텔조리외식경영/조리영양 전공
집밥도시락 명인1호/김치명인/한정식명인
현재 황지희레시피연구원/미각포럼 대표
현재 연세대심바이오틱연구원 객원연구원
현재 한국대한명인예술회 부회장겸 명인 선정위원장
현재 대한민국한식포럼 한식대가 선정위원장
현재 한국반찬산업협회 부회장

<저서>
황지희의 소문난 쿠킹클래스
황지희의 황금레시피

<수상>
2020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장상 대통령상 수상
2019 서울시장상 수상
2018 서울시장상 수상
2016 환경부장관상 수상
2015 인도 뉴델리 세계요리대회 개인전·단체전 금메달 수상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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