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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시엔에 최초로 진출한재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를 방문하다

2021년 6월호(14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6. 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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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국제고 탐방기]

일본 고시엔에 최초로 진출한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를 방문하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일본의 옛 이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얼마 전, TV 방송을 타고 한국어로 된 재일 민족학교 교토국제고 교가가 일본 전역에 중계되었습니다. 재일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부 선수들이 일본에서 꿈의 무대로 불리는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고시엔)에서 90여년 역사상 첫 외국계 학교 진출이라는 신기록을 써냈습니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머쥔 후, 교가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말 당당해 보였습니다. 도쿄에 있는 저는 이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고자 박경수 교장, 김영지 교감을 만나기 위해 한걸음에 교토로 내려갔습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일본에서 고시엔(甲子園)이 유명하고 출전이 꽤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도 화제가 되고 있는 건가요?
미국의 스포츠전문 방송 ESPN에서도 인간이 죽기 전에 봐야 할 지구상의 스포츠 이벤트 중, 아시아권 대회로 유일하게 50위 안에 선정했을 정도로 고시엔이 유명합니다. 고교야구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마치 종교와도 같습니다. 특히 고시엔은 학생들에게 있어 예루살렘 같은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고시엔으로 일컬어지는 전국대회는 마이니치신문사가 전국 4,000여 개의 고교에서 32개의 학교를 선발하여 3월에 개최하는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일명 봄 고시엔)과 아사히신문 주최로 개최하는 도도부현 대표 49개교(동경, 홋카이도는 2개교)가 출전하여 갖는 전국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여름고시엔)가 있습니다. 양 시합 모두 경쟁이 정말 치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도도부현별로 지역 예선 토너먼트의 우승자들이 모여 겨루는 대회이다 보니, 국민적 관심이 대단해 큰 축제처럼 되어있습니다. 매 경기 47,000석에 달하는 거대한 고시엔구장이 가득 차는 것은 물론이고, 대회의 TV시청률은 무려 20%에 육박할 정도니까요. 


한 통계에 의하면 연간 80만 명이 고시엔 대회를 찾고, 경제효과는 약 3천50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고교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수업의 연장으로서 사람과의 예의와 그리고 상대팀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야유나 비난을 하지 않으며, 상대팀이 응원을 할 때는 응원도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창시절 야구부 활동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팀웍, 예의, 선후배에 대한 예절 등 전인격이 골고루 훈련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취업 시에도 가산점이 될 정도입니다. 고시엔에 출전한 사람은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인생에서 최고의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고시엔구장의 흙을 담아 퍼오는 전통이 있으며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여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고시엔 야구가 일본 정신의 산물이며 일본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집단주의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1999년도 학생 수가 줄어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학교로 한국인 국적자만 입학을 할 수 있었는데, 재일 한국인 2세들의 출산율이 심각하게 저하되면서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이로 인한 재정적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한국인 학생만으로 학교운영이 어려워져 학생모집의 방안으로 야구부를 만들었고, 2004년부터 일본학교 기본법 제1조가 정한 정규학교 인가를 받아 운영하게 되어 일본 학생들도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토국제고는 언제 세워졌나요? 
재일동포사회 중심인 교토민단 단장이 중심이 되어 학교 설립 취지로 ‘조선교육연구회’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학교 설립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인가를 얻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요. 그럼에도 재일 한국인의 미래와 자녀를 위해 교포들이 힘을 합쳐, 1947년 5월에 드디어 ‘일본교토조선중학’으로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후, 1963년 교토한국고등학교를 개교했지요.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4년 일본학교 교육법 제1조가 정한 학교로 인가받으면서 한일 양국에서 학력을 인정하는 정규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교토국제중·고등학교가 된 것입니다. 현지에서 태어난 2세, 3세, 4세, 5세 아이들과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그리고 일본인 자녀들로 구성되어 현재 중학생이 20명, 고등학생이 135명(2021년 기준)으로 총155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토국제고의 교육철학은 무엇인가요?
크게는 학교의 정신 세 가지와 민족학교로서의 정체성 두 가지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교육의 목표로 하겠다는 동포들의 의지를 담아 교육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일본에서 살아갈 때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자기의 존재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자존’이고 두 번째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이루기 위한 ‘연마’, 세 번째는 국제인의 삶을 추구하는 ‘공생’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한국에 돌아가면 친인척들과도 한국말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님이 “나라를 잃었어도 말을 잃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라를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말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과 우리의 예절을 가르치는 것, 이 두 가지를 민족교육의 축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국 정부를 통해 한국어와 윤리(도덕)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직접 와서 우리나라의 전통, 노래, 춤, 명절 등에 대해 교육했습니다. 현재 한국어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수업시간이 배정되어있고, 한국무용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일 학생들이 섞여 있는데 중요한 역사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요?
교재 이외에 중앙 민단이 만든 ‘재일코리안 역사’와 부교재로 자체 발간한 ‘간사이에 남겨진 조선통신사의 발자취’ 등을 사용해 일본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사는 일본인 선생님이, 한국사는 한국정부 파견 선생님과 재일한국인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합니다. 물론 일본 역사 교과서에 근현대사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양국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교육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립적으로 가르치되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지요.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문화적 충돌이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형제간의 싸움처럼 소소한 것들은 있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수업만이 아닌 방과 후 활동 속에서 서로 친하게 지낼 기회가 많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 학교에 오는 많은 일본인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에 관심이 있거나 야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고 특히 한국인, 한국음식, 한국문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일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 부모, 학생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한·일 학생들이 섞여 있다 보니 섬세한 지도가 필요하기에 교사들이 수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26명의 교사와 강사까지 포함하면 총 34명으로 학생들 5명당 1명의 교사가 지도하고 있는 셈이지요. 선생님들이 지각하거나 결석한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하며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선생님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떠나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일본 야구 훈련이 생각보다 힘들어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간 한국 학생들이 더러 있습니다. 중요한 교사, 학부모와의 소통을 위해 PTA(Parent-Teacher Association)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학부모와 교사가 모임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장학금 마련이나 부모들을 대표하는 임원들과 함께 학생들 교육지도에 대한 상의, 각종 대회 활동의 보조 등을 함께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경직된 일본교육 속에서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를 만들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라는 장점을 살려 학생들이 언제라도 즐겁게 올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방과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요. 토요일에는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일본인 학부모들과 지역사회주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70여 년 동안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숨은 노고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고시엔에서 한국어로 된 교가가 울려 퍼졌을 때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 학부모, 재일교포들도 감개무량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방송에 방영되기도 했는데 현지 일본 분위기는 어땠나요? 


현지에서 많은 축하 메시지와 후원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시엔에 출전이 확정되자, 학교에 일본인들의 비난 전화와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왜, 너희들이 전통 일본인 대회에 출전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학교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야구부가 있기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구부 전체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언젠가는 아침 식사를 해 줄 식당 아줌마를 구하기 어려워 선생님들이 새벽 5시에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 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야구부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은 유명한 감독이나 코치가 아닙니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보건체육 선생님이 주말까지 반납하며 함께 뛰고, 먹고, 자면서 훈련한 것입니다. 이곳 야구부들은 한국 운동선수처럼 종일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정규수업인 8시30부터 오후 3시까지 공부를 모두 마친 후에야, 방과 후 활동인 야구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운동시간이 부족해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도 하고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밖에 나가 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출나게 야구를 잘하는 학생들로 모인 야구팀은 아니지만, 반복 훈련과 자주적인 연습, 그리고 선생님, 학생, 학부모 모두의 응원과 노고의 결실로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교토국제고의 한·일이 함께하는 교육환경에서 졸업한 학생들이 일본, 한국, 더 나아가 국제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으면 하는지요?
교토 출신 김성근 야구 감독처럼 한·일간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70여 년의 학교 역사 속에서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있을텐데 이들이 한국에 가서도 잘 적응할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한국, 일본이 지구의 한 동네가 되어갈 정도로 세계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데, 국제사회에서 균형 있는 감각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이 되길 무엇보다 원하고 있습니다.

 

교토국제고 박경수 교장

 

일본 도교 김지혜 편집기자

kim.jihye@funlead.co.jp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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