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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파스테르나크)가 ‘강철’(스탈린)을 이기는 것을 보셨나요?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1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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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화(명) 3]

 

   ‘미나리’(파스테르나크)‘강철’(스탈린)을 
이기는 것을 보셨나요?

 

여러분, 미나리와 강철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요? 윤여정의 영화 [미나리]가 아니라 ‘미나리’라는 뜻을 가진 사람과 ‘강철’이라는 뜻을 가진 사람과 싸운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이자 영화화되었던《닥터 지바고》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스테르나크’(1890~1960)라는 인물의 성(姓)의 원래 러시아어 의미는 ‘미나리’라고 합니다. 반면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으며, 역사상 세계 최고의 악당이었던 구소련의 ‘스탈린’(1878~1953)의 뜻은 ‘강철’이라고 합니다. 즉 이 미나리와 강철, 둘이 만나서 대결을 벌이면 누가 이기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아마 당연한 답이 나오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이 둘이 역사상에서 실제로 만나 대결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대결을 가지고 우리는 보다 일반적 질문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즉, ‘악당’을 ‘선당’이 이길 방법은 없는가?  


A. 두 번의 만남의 전말을 살펴봅시다


첫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파스테르나크의 문학가 친구 중에 만들슈탐Mandelstam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시베리아 굴락(Gulag 수용소)으로 보내어버리는 스탈린의 폭악정치가 서슬 푸른 시절(1934년 4월)에 매우 경솔하게도 ‘스탈린풍자’Stalin Epigram라는 글을 몰래 썼고, 그것을 파스테르나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때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하지만 2천년 역사상 생존하는데 매우 탁월한 유대인 인자를 가져서 그런지 파스테르나크는  매우 신중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 : “나는 그것을 듣지 않았고, 너는 그것을 내게 들려주지 않았어. 왜냐하면 지금은 너무나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때이기 때문이지. 그들이 사람들을 마구 잡아간다구. 내 주위의 벽이 듣고 있고 이 거리의 벤치가 듣고 있어서 그것을 말해버릴 거라구. 그래서 내가 너에게서 아무 것도 듣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해 두자!”


그 이후 스탈린은 즉각 비밀경찰을 통해 만들슈탐을 잡아들였지요(1934년 5월). 그러자 우리의 선당인 파스테르나크는 동료를 위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동료가 매우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고 탄식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손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즉각 관련기관에 찾아가서 그를 위해 탄원했지요.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우리의 악당 스탈린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예상하지 못할 때 갑자기 공격하는 것이 악당들의 대표적 속성이 아닌가요? 파스테르나크가 집에 돌아오자 이상한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탈린 동지께서 당신과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즉각 머리가 백지처럼 하얘졌을 겁니다. 이 끔찍한 악당이 직접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그가 아주 잘 쓰는 점잖은 호칭으로 ‘그대’thou라고 부르며 그를 조금 높인 후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 “당신네 문학클럽에서 만들슈탐을 잡아들인 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 지를 말해 보시오.”
이 때 파스테르나크는 매우 혼동스러웠지만 차분하게 핵심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그 사안에 대해 어떤 대화도 없었으며, 또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문학 클럽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일단 대화는 이루어졌던 것이기에 틀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하자라고 했기 때문에 맞는 말입니다. 정말 지혜롭게 빠져나가는 말을 선택할 줄 알았지요. 그러자 스탈린의 송곳 같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습니다 : “당신은 만들슈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파스테르나크는 떠듬거리는 어투였지만 간결하면서도 명백하고 원론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 “저와 만들슈탐은 철학과 문학에 있어서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그는 원칙적으로 스탈린에 대해서는 만들슈탐보다 더 심하게 비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적으로 악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심하게 내리누르는 때이기에, 최소한의 양심의 자유와 윤리만을 남기고는 생존모드로 들어가는 것이 옳기에, 이런 거대담론과 같은 원리적 대답을 지혜롭게 제시한 겁니다. 스탈린은 빈정거리는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대화는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이 동료를 변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겠소.”  결국 1차 관문을 통과해 파스테르나크는 살아남았습니다. 


악당과 선당의 둘째 만남은 선당에게 훨씬 더 어려워진 상황 가운데서 진행되었습니다. 몇년 후에(1937년) 더 본격적이고 총체적 숙청인 소위 ‘대숙청’Great Purge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기 문학가들 사이에 소련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찬양하여 결성된 작가동맹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사상을 가진 문학가들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스탈린에게 아부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부에 파스테르나크가 동참하여 서명하도록 집에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파스테르나크는 이렇게 점점 자기에게 좁혀오는 죽음의 위협을 운명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어떻게요? 바로 스탈린에게 직접 호소하는 편지를 쓴 겁니다. 첫 만남은 악당인 스탈린이 갑자기 쳐들어왔다면, 이 둘째 만남은 선당인 파스테르나크가 선제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세가지입니다 :


1) 자기 가정은 톨스토이의 확신을 아주 강하게 이어가는 전통을 가진 집안이며,
2) 자기 생명을 스탈린의 처분에 맡긴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으며,
3) 작가동맹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대로 할 수 없다. 즉 자신은 다른 사람의 생사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심판자의 위치에 오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썼습니다. 


탁월하게도 파스테르나크는 역사성을 언급하는 가운데 매우 겸손하고 솔직하며 또한 지혜로운 표현을 한 겁니다. 먼저 한때 신학생이기도 했었던 악당 스탈린은 톨스토이가 비록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농민의 편에 섰으며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에 봉사하려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자신이 확실히 생명을 주관하는 자라는 사실을 파스테르나크가 인정한 사실에 만족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대단히 지혜롭게 자신은 타인의 생명을 끝장낼 언도를 내릴 심판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그러한 이유로 작가동맹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겁니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스탈린이 아마 이 편지에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스탈린의 부하들이 올린 숙청 리스트에 파스테르나크도 있었는데, 이 명단을 본 스탈린의 반응이 아주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리스트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이름에 줄을 그어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이 구름 위에 사는 자cloud dweller를 건드리지 마!” 혹은 다른 버전에는 “이 거룩한 바보holy fool는 그냥 내버려둬”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러시아적’입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워낙 자연환경이 열악하여 이에 따른 교회와 정치가 극단적인 악에 치우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고 미친, 혹은 미친척하는 예언자, 즉 ‘거룩한 바보’holy fool(조선시대의 김병연,김삿갓 같은)들이 었으며, 민중들은 오히려 이들을 존중하곤 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하의 악당인 ‘강철’은 이 연약한 ‘미나리’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죽고 난 뒤까지 살아남은 파스테르나크는《닥터 지바고》를 통해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쓴 이 작품은 러시아 밖으로의 반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러시아를 방문한 이태리 공산주의자가 이 책을 밀수해 서유럽어로 급작스럽게 번역하여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소련당국의 강압으로 파스테르나크는 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지만, 소련이 해체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정식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파스테르나크와 스탈린 사이에 오간 살벌한 대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파스테르나크 옆에서 여생을 보낸 연인인 이빈스카야Ivinskaya는 다음의 말로 이 관계를 아주 잘 요약했습니다. “나는 스탈린과 파스테르나크 사이에 엄청난 침묵대결incredible, silent duel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대결의 결과를 어떻게 판정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이름답게 연약한 약자인 파스테르나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최고의 악당인 강철의 사나이 스탈린의 칼부림에도 살아남았습니다. 무승부일까요? 그 정도를 넘어,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을 사랑하는 모든 세상과 역사는 연약한‘미나리’(파스테르나크)가 막강한‘강철’(스탈린)을 이겼다고 판정할 것입니다.    


B. 어떤 방법으로 선당은 악당을 이길 수 있을까요?


역사 속에서 선당은 항상 미나리 같이 약하고 악당은 강철같이 강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현실에서는 악당이 늘 이기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지난 세기에 러시아가 낳은 유명한 두 인물의 대화 대결 속에서 결국 선당이 이긴 것에 용기를 얻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어떻게 연약한 선당이 막강한 힘을 지닌 악당을 이길 것인가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선당은 악당이 예상 밖의 직접 공격을 하는 것을 지혜롭게 대비할 뿐 아니라, 
악당을 향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과 방식으로 공격할 줄 알아야 한다.


악당의 예상 외의 공격에 대한 선당의 현명한 대비와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파스테르나크는 친구인 만들슈탐이 매우 경솔하게 행동한다고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그 만남과 대화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하는, 매우 현명한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가 잡혀 들어가자마자, 침묵하거나 단순히 나 혼자 살기 위해 애쓰는 모드로 들어가지 않고, 그를 위해 탄원하는 성의와 동료애를 실제로 보였습니다. 

 

(2) 그런데 이렇게 성의를 보인 것이 오히려 악당의 공격을 초래하는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악화를 지레 두려워하여 움츠려드는 삶을 산다면, 오히려 인간이 아닌 동물적,감각적 회피만을 일삼는 비겁한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누가 감히 이런 놈을 변호하는가 하며 괘씸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스탈린이 직접 전화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파스테르나크는 자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최고의 권력을 쥔 악당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엉뚱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들슈탐을 잡아들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시의 문학계의 현실적 상황을 일반적으로 소개함으로 질문에 담긴 함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피해갔습니다.

 

(3) “당신은 만들슈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송곳 같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과 만들슈탐 사이에 문학관과 철학관에서 차이가 있다는, 매우 일반적이지만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답변을 내어놓았습니다. 결국 공산주의 사회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4) 스탈린이 남겼던 마지막 말도 독뱀에게 물린 것 같이 오래도록 파스테르나크의 양심에 남아 괴롭히는 것이었을 겁니다 : “당신은 동료에 대해서 변호할 수 없는 존재군요.” 즉 자신은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만, 친구는 영영히 버려두는 비겁한 존재로 빈정거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파스테르나크는 이 빈정거림도 참아내었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속시원하게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 상황 속에서는 매우 정제된 단어와 문장으로 지혜롭게 방어해야 하며, 아주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악당이 예상치 못한 가운데 있을 때에 선당이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파스테르나크는 첫째 만남을 통해서 자신과 스탈린 사이를 잇는 직접적인 관계의 끈이 존재하게 된 것을 선명하게 자각하고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보통은 너무 무서워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관계의 끈’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에게 매우 유리했던 사실은, 이 끈은 자신이 놓은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먼저 놓았던 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알고, 먼저 이 관계의 끈을 이용하여 세 가지 포인트를 지적하며 악당을 무너뜨리기로 작정하였고, 결국에는 성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소련 사회에서 이제 막 시작된‘대숙청’의 시기에 훨씬 생존에 각박해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희생물을 찾는 가운데, 자신이 그 표적이 된 것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직감이 맞았고, 그는 이미 숙청 목록에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2) 첫째, 그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이 가진 하나의 전통’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톨스토이를 좋아한다는 전통말입니다. 소련의 공산당혁명(1917) 이전의 사람인 톨스토이는 러시아인이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즉 자신은 여전히 공산주의/사회주의 이전의 소박한 전통에 머물러 있음을 알린 겁니다. 사실《닥터 지바고》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러시아 사회에서 소박한 인간성에 근거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이런 소박성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활동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가족적 전통을 통하여 피를 부르는 숙청의 칼끝을 피해가는 방법을 찾은 겁니다.   

 

(3) 둘째, 생사를 주관하는 절대권력을 가진 스탈린의 현재 위상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굴한 아부라기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지혜로운 유대인이자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에게 모든 생명의 주관자는 절대하신 하나님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절대자 하나님이 현재적으로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러시아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스탈린을 세운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가 기초했던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근거에서 벗어나서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표현은 아닌 것입니다.

 

(4) 서론 혹은 도입으로서 이렇게 두 가지 점을 말한 후에, 그는 드디어 본론이자 가장 중요한 관건인 셋째 포인트를 제시했습니다. 작가동맹에서 어떤 사람들을 죽여야한다고 주장하는 연판장에 서명하는 일은, 일개의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한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세 가지 효과를 지닙니다 :

 

a) 먼저는 이 말로 자신을 낮추면서 그 연판장에 서명할 수 없는 이유를 확실하게 제시한 것입니다.

 

b) 그는 이어 스탈린에게 아부하면서 어떤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사여탈을 주관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셈이 됩니다. 즉 이들 작가동맹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인간을 심판하는 매우 교만한 사람이 된 것을 선언하는 말인 겁니다.

 

c) 그런데 파스테르나크의 이 말은 또 나중에 스탈린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무서운 말이 됩니다. 즉 스탈린은 정치적 권력으로는 러시아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에 있지만, 그도 일개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의 생명을 결정할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파스테르나크가 했던 스탈린의 막강한 권한을 인정했던 둘째 말과 배치되기도 합니다. 
아주 폭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우 생각이 깊었던 스탈린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스탈린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전체적으로 이 편지를 좋게 여겨 그를 숙청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즉 이 셋째 말을 좁게 적용하면, 파스테르나크 자신에게만 적용한 말로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넓게 적용하면, 작가동맹의 사람들이나 심지어 스탈린에게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런 상황이 다 종료되고 두 사람 모두 역사적 인물이 된 지금 21세기에 와서 이 말을 확대 적용해 보면 스탈린의 심장을 도로 겨누는 화살과 같은 말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파스테르나크는 이 말로 자신만 위기에서 빠져나갈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스탈린까지 겨냥한 매우 깊고 지혜로운 말을 남긴 셈입니다.

20세기 포악했던 소련에서 행해졌던 이 위험한 대화와 가상적 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극단적인 ‘강철’악당을 야리야리한 선당 ‘미나리’가 이기는 방식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 놀라운 대화 대결과 파스테르나크가 거둔 궁극적 승리는 우리‘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에서 러시아를 계속 연구해 가는 가운데 발견하는 작은 기쁨이기도 합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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