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내 인생이라는 경기장의 검투사가 되자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6. 21:40

본문

[retrospective & prospective 32]

 

내 인생이라는 경기장의 
검투사가 되자

 

얼마 전 회사의 어린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선배님~ 저 밥 좀 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요.” 부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 줄 걸… 후회하며 즉시 그 주 어느 점심을 함께 했다. “저 요즘 회사를 그만둘까 아주 자주 생각해요. 계속 도태되는 느낌인데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입사 5년차인 후배는 나와 나이차는 많지만 직장의 선후배로서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다. 늘 씩씩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기특해서 내가 예뻐하는 후배이기도 했다. 한창 신나게 일해야 할 나이에 그런 고민을 하는 후배가 안타까웠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명쾌한 솔루션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슬럼프라는 걸 겪게 된다. 사람에 따라 좀 빨리 올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을 이기지 못해 그만 두는 경우도 있다. 내 후배는 특수한 직종이라 지금 회사가 그 꿈을 펼치기에 그나마 최적의 조건이기에, 현명하게 지금 상황을 잘 견디고 다른 차원의 기회가 왔을 때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면 무난하게 지금의 슬럼프를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람아! 내가 그만둬라 다녀라 말할 자격은 없지만 내 경우엔 어떤 상황이든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 그런 마음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믿음 같은 게 되더라고… 그럴 때일수록 일 안에서건 일 밖에서건 자신이 몰두할 뭔가를 찾는 것이 좋아.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믿게 도와주거든. 그리고 진짜 고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기의 칼을 갈고 있어야 해. 언제 어디서든 칼을 쓸 때가 오면 잘 들도록 말야.”

얼마 전 아카데미 수상식 이후 우리나라 문화계엔 ‘윤여정 신드롬’이 계속되고 있다. 수상과 더불어 그녀의 개인사도 회자되었는데 이혼 후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조연은 물론 단역까지 닥치는 대로 맡았다고 한다. 그렇게 쌓은 연기력과 다양한 작품 경험은 분명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수상소감에서도, 각종 인터뷰에서도 거침없고 솔직한 답변과 비슷한 또래의 어른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어필이 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해리포터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앤 캐슬링 롤링 작가도 떠오른다. 결혼 1년도 되지 않아 어린 딸을 키우는 무일푼의 이혼녀가 된 그녀는 생활고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출판사로부터 수없는 출판 거절을 겪기도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유명한 연설문이 떠올랐다. 

…중요한 사람은 비평가가 아니다. 강한 사람이 어떻게 걸려 넘어지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사람도 아니다. 경기장에서 실제로 싸우는 사람, 먼지와 땀과 피로 망가진 얼굴을 가진 바로 그 사람이 중요하다. 

루스벨트의 말처럼, 큰 꿈을 꾸고 세상에 한 획을 긋고 싶다면 당신은 삶이라는 경기장에 들어가 맞서 싸우는 검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우리나라 옛말에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까마귀 노는 곳이 백로에게 꼭 필요하다면, 그곳에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백로는 자신의 몸이 검게 물드는 것도 어느 정도 불사해야 한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금껏 통해 왔던 것들이 더는 통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국가 경제나 정치 혹은 기업 경영 같은 거대 담론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만, 짙은 안개 속을 더듬더듬 가기는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인생에도 불확실성은 자주 찾아온다. 이런 불확실성을 확실히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기, 여차하면 발을 빼려는 태세로 한 발만 담그는 게 아니라 두 발을 다 담그고 전력을 다하기. 조앤 롤링, 윤여정처럼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 인생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싶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후배에게 해준 조언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까마귀 노는 곳에서 내 몸이 검어질까 두려워 그곳을 포기하는 백로가 아닌 ‘나의 경기장’으로 들어가 내 인생의 검투사가 되어 노력하고 분투하는 중이다. 

 

서울 예술의 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