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판소리의 BTS를 꿈꾸는프랑스인 소리꾼 ‘로르 마포(Laure MAFO)'

2021년 8월호(14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8. 2. 09:52

본문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판소리의 BTS를 꿈꾸는
프랑스인 소리꾼 ‘로르 마포(Laure MAFO)'

 

 

판소리에 매료되다
프랑스에 있을 때 회계감사 석사까지 전공하고 삼성전자 재정관리부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에 한국에 가고 싶었던 저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고, 발라드풍의 한국 가요를 좋아해 양희은의 노래도 곧잘 따라 부르곤 했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선생님의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되었어요. 가사도 모르고 이해도 못하면서 제가 계속 웃고 있는 거예요. 마음에서 왠지 모를 기쁨이 솟아나고, 묘한 감동이 퍼지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죠. 때마침 한국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판소리 워크숍에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당장 친구와 함께 참여했지요. 워크숍에서 민혜성 선생님께 판소리를 배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니, “오페라를 배우고 싶으면 이탈리아로 가야 하듯, 판소리를 배우고 싶으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하셨죠.그래서 2년 동안 돈을 모아 2017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한국에 왔습니다.


34세,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판소리 시작
제가 한국으로 간다고 하자, 카메룬에 있는 엄마와 프랑스 이모는 반대하셨어요. 프랑스에서 번 돈으로 카메룬의 가족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죠. 딱 1년만 다녀오겠다고 간신히 설득해 한국에 왔는데, 초기에는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현재는 코로나로 공연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제적으로 참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많이 알게 됩니다. 34세에 판소리를 시작해서 현재 5년 정도 되었으니, 정말 늦게 판소리를 시작한 거죠. 5~6세 정도에 판소리를 시작하는 게 보통이니, 배워야 할 게 산더미입니다.


카메룬 가족들 앞에서 판소리 공연 
2019년 카메룬에서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판소리 공연을 가족들이 와서 봤어요. 한국에 가려고 할 때 엄청 스트레스를 주며 반대했던 가족들인데, 제 판소리를 듣고 너무 좋아했어요. 특별히 판소리를 불어로도 불러 가사도 이해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하셨죠.(불어 판소리가 감이 잘 오지 않아 한 소절 불러달라 부탁 드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할 때보다, 불어로 판소리를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춘향가의 “그때 도련님이…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부분을 불어로 표현하려면 가사도 어감에 맞게 바꿔야 하고, 박자도 정확하게 맞추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죠.(웃음) 이제는 가족들이 판소리 하는 저를 많이 이해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한답니다.

 

로르마포의 프랑스문화원 공연

 

외국이면 무조건 K팝을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이면 무조건 K팝을 좋아하고 관심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판소리를 하는 저에게도 “K팝 좋아하세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같은 질문을 정말 많이 하세요. 제 프랑스인 친구 중 하나는 이 똑같은 질문에 화가 나서 “저 K팝 좋아하지 않아요. 한국 옛날 가수 노래 좋고, 판소리 좋아해요. K팝에 관심 없어요.”라고 답하기까지 했죠.


정작 한국에서는 판소리에 관심 무!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가 30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판소리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어디서 보는지도 모르더라고요. K팝 공연 광고는 비교적 많이 하는 편인데 판소리 공연 광고는 잘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판소리에 대한 홍보,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전통음악에 대한 교육이 한국에서 꾸준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판소리를 현대에 맞게,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이날치처럼 퓨전화하는 작업도 중요하죠. BTS가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변형해 부른다면 정통 판소리와는 좀 다른 느낌이겠지만 새롭겠죠. 또 판소리를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놓으면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신선하고 지속적인 홍보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과 닮은 카메룬의 문화
10살 때 카메룬에 있는 엄마가 이모가 있는 프랑스로 저를 보내셨어요. 여러모로 카메룬보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 처음 5년 동안은 계속 집에만 머물렀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주체의식이 강하고, 다른 사람이 도움을 달라고 하지 않는 한 관심이 별로 없어요. 아프리카에서 함께하고 서로 챙겨주는 문화에 익숙했던 저에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죠. 이런 아프리카의 문화적 특징은 한국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프랑스에서 한국기업인 삼성에 다닐 때도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고, 프랑스에서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는 한국 친구들에게는 작은 도움까지 줄 수 있었죠. 또 한국인들에게 있는 한(恨)의 정서도 알게 되었는데, 지리적으로 강대국들이 옆에 있어 침략을 많이 당해서 생긴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태어난 카메룬과 아프리카도 역사적으로 유럽의 침탈을 많이 당해 어느 정도 비슷한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판소리에는 한(恨) 외에도 이날치와 서도(Seodo) 같은 쾌활한 정서가 있어서 좋아요. 

판소리를 배우면서 존경하는 스승
‘민혜성’선생님입니다. 판소리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작은 것 하나라도 설명해주고 반복해야 하니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연습도 많이 시켜주셨죠.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제가 한국에 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대에 함께 서 보자고 하셨어요. 저는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은 가능한 무대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하시며 지금까지 준비한 대로만 해보자고 하셨죠. 그래서 3개월 만에 무대에 올라 선생님과 같이 공연을 했어요. 만약 제가 다른 선생님을 만났다면 한국에서 과연 판소리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판소리 공부 차, 지방에 있는 산에 올라 갈때도 제 주머니 사정을 훤히 아시고 도와주시며 매번 같이 가자고 하시죠. 이런 좋은 선생님께 감사의 표현을 잘 못해 늘 죄송합니다.(부끄러워하는 표정) 선생님은 15년 동안 벨기에와 파리에서 판소리 워크숍을 꾸준히 하셨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가족을 두고 매년 한 달 동안 외국에 나가 판소리를 가르치셨으니까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아쉽게도 못하고 계십니다. 

 

민혜성 선생님과 함께 국회의사당에서 공연

 

나에게 있어 판소리는 ‘음악 테라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판소리는 ‘음악 테라피’랍니다. 제가 판소리를 통해 받은 치유와 안정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이전에 저는 힘들 때 그것을 표현하기보다 계속 참아 왔습니다. 하지만 판소리를 하면 소리를 내야 하니 속 안의 것을 밖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저에게 긍정적인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배워야 하겠죠.

각국의 역사를 담은 창작 판소리
판소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 한국 역사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지난번 ‘5월 광주’라는 창작 판소리를 들었는데, 이 공연을 보고 ‘아! 판소리로 이렇게 역사를 가르치는 것도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각 나라의 문화나 역사를 판소리로 표현하면,  관객들이 판소리에 재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정통 판소리뿐 아니라 창작 판소리도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 깊이 있게 공부를 해야 하죠. 사실 프랑스에서 음악 공부를 전혀 한 적이 없어 장단 공부 하는 것만도 무척 어려워요. 이번 기말고사 시험 볼 때 굿거리장단을 장구로 쳐야 하는데…(웃음) 


나를 도와준 한국 천사들
한국에 와서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다녔는데, 1학기를 배우고 돈이 없어 그냥 프랑스로 돌아갈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2018년에 ‘이웃집 찰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이틀 후에 어떤 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무슨 일이지 했는데, 놀랍게도 어학당에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분이 바로 연세대 송자 총장님이셨는데, 덕분에 어학당을 다니면서 판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죠. 어학당을 졸업하고 찾아뵈려 했는데, 때마침 카메룬에 공연이 있어 다녀온 후 만남을 갖기로 했어요. 그런데 공연에서 돌아와 와보니, 친구가 총장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너무 놀라 장난치는 줄 알았죠. 판소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귀한 분이셨는데… 너무 안타까웠어요. 
또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자기 집으로 저를 초대해 같이 살게 해준 ‘송주실’언니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엄마와 친언니처럼 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밥 먹었냐”며 챙겨주셨죠. 카메룬의 저희 할머니도 꼭 이렇게 저에게 물어봤거든요. 제가 밤에 늦게 집에 오면 주실 언니의 남편은 지하철역까지 나와 기다려 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한국 가족의 지지를 충분히 받으며 생활하니 마치 제가 친가족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올해 봄날, 한예종(한국종합예술학교) 교정에서 한 컷


한국 와서 달라진 점
먼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 한국이 더 좋아졌어요. 프랑스에서는 회사 다니며 경제적으로 문제도 없고 겉보기에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프랑스에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굳이 찾을 수는 있었겠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랄까요? 지금은 돈도 없고 늘 부족한 유학생이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에서는 힘들 때 참고 그냥 집에만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힘들 때 제가 뭔가 빨리 해결해야 하죠. 이게 달라졌어요. 판소리 덕분에 더 지혜로워진 거죠. 

로르 마포의 꿈
혼자서 3시간 30분 정도 되는 ‘흥보가’ 완창을 하는 게 판소리에 대한 저의 목표입니다. 학교에서는 춘향가를, 민혜성 선생님께는 흥보가를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한국어와 불어로 판소리를 하는데, 가끔씩 영어로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물어보곤 해요.(아~ 그런데 영어는 다 잊어버렸어요) 미국 하와이에 있는 친구가 가을에 하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판소리 공연을 할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코로나로 이래저래 힘든데 꼭 하고 싶어요. 그곳에서 공연하려면 영어로 판소리를 해야 하니 참 할 일이 많습니다.(웃음) 연습밖에는 방법이 없죠. 외국어로 판소리를 할 때는 발음과 추임새 등이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하면 어느 날 갑자기 ‘확’하고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가 너무 좋습니다. 제일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제가 지금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 1학년인데 끝까지 공부를 마치는 것입니다. 판소리 공부에만 집중해 실력을 쌓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들도 함께 해결해야 해요. 코로나로 공연도 많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아~ 그냥 프랑스로 돌아갈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겨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통해 사람들이 도전을 받기도 하고, 저 또한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에게 판소리 하는 외국인의 스토리를 들려드리고 싶어 몇 개월 전부터 컨텍을 하던 중, 드디어 ‘로르 마포’ 소리꾼과 연락이 닿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제법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 다른 매체와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까 고민도 했고요.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에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이 유럽, 미국에서 유학하셨던 분들의 이야기였는데, 이젠 정반대로 한국에서 유학하는 외국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뿌듯하기도 하고 새로웠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무엇보다, 판소리 공부를 마치고 싶은 ‘로르 마포’의 간절한 바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적은 금액이라도 마음을 모아 ‘로르 마포’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도 작게나마 도움을 건네려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기획은 없었는데, 인터뷰하면서 제 마음이 움직인 거죠. 아래에 ‘로르 마포’계좌를 남기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많은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로르 마포(Laure Mafo) / 한국이름 ‘소율’ 
하나은행 391-911168-48607
laure.mafo@gmail.com  
인스타@lacameraseoul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2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