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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속에 존중과 배려를 담다 - 김동진 검도관장

2021년 8월호(14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8. 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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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속에 존중 배려를 담다 

- 김동진 검도관장

 

빵과 우유의 유혹에 시작한 검도
국민학교(현재는 초등학교이죠) 시절, 제가 키도 크고, 운동에도 소질이 있다 보니 육상, 씨름 등 운동이라는 운동은 다 해봤습니다. 하루는 체육 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손에 막대기 같은 것을 쥐어주며, “지난번 축구 대회 나가 준우승했으니, 이번에는 검도 대회에 나가봐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검도부는 수련이 끝나면 단팥빵과 200ml 우유를 간식으로 주었죠. 너무 배가 고팠던 저는 그 유혹에 아무것도 모르고 검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우유와 단팥빵이 저의 유일한 간식이었고, 시합 연습을 위해 토요일에 도장에 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초·중학교 때까지는 춥고 배고프니 운동을 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새벽에 운동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한 저는 검도로 한 번 끝까지 가보자 다짐을 했습니다. 그전까지 검도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생각했었는데, 그 결심 이후로 그만둘 생각이 아닌, 정말 열심히 수련해서 용인대학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 남편, 아버지 사이에서
검도를 하며 매 수련시간, 매 시합 때마다 힘들고 어렵게 훈련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많은 시간들이 애틋한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이 있어요. 광명시청 프로팀에 입단해 10년 정도 근무한 후, 청명 고등학교 엘리트 검도부 학생들을 지도를 할 때였습니다. 엘리트 코스는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하고, 그 후, 국가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한 목표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책임을 등한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회를 치르고 훈련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인생이 갈리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에 몰입하며 가족들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전지훈련과 시합출전으로 아들, 딸 출산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아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지도자 생활을 할 때에는 시합과 전지훈련으로 집에는 2~3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누구세요?”그러는 겁니다. 그 말에 상당히 쇼크를 받았죠.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감독 은퇴를 선언하고, 아내와 함께 검도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묵묵히 키운 제자, 대회마다 상을 타다
제가 고등학교 감독을 할 때 한 학생의 부모님이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학생은 검도를 너무나 하고 싶어 했지만, 신체조건이 안됐습니다. 키는 큰데 몸이 너무 말랐고, 특히 하체가 너무 말라 기본적으로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래서 부모님들이 검도를 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어 오신 겁니다. 
“저에게 3년 정도만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시고, 저와 아이를 믿어 주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거라면 지금 그냥 데려가세요.”라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이런 저를 믿고 맡기시더군요. 아이에게는 고등학교 1~2학년 때까지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기초 훈련인 체력훈련과 기본기만 시켰습니다. 고등학교 2년동안 대회에 나가 입상 한 번 못했죠. 무시 아닌 무시도 많이 당했고요. 고등학생들은 입상을 못하면 대학을 못가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님의 속도 많이 탔을 거예요. 그렇지만 부모님은 일체 간섭을 하지 않으셨고, 그 친구는 그냥 저를 믿고 버텨줬습니다. 이 친구가 주장이 되고 나서는 훈련을 할 때마다 식당과 숙소도 알아서 잡아놓고, 팀에 필요한 일들은 제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다 해놓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참 기특했죠. 이런저런 실력이 쌓이다 보니 고등학교 3학년, 고교 상비군 선발전(고등학교 국가대표)에 나가 10명 선발중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그 이후 놀랍게도 모든 대회마다 계속 입상하는 거예요. 정말 화산이 폭발할 때 마그마가 밑에서 끓고 있다가 어느 순간 분출하는 것처럼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는 고3, 4월에 이미 한 대학의 장학생으로 뽑혔고, 현재는 수원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만나 식사도 하고 대화를 하는데 이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바른 정신, 바른 마음, 바른 칼
김동진 검도관에는 3훈이란 것이 있습니다. 1)바른 정신 2)바른 마음 3)바른 칼입니다. 그 중 가장 우선 하는 것은 바른 정신입니다. 우리는 칼이라는 장비를 쓸 때 폭력이 아닌 타인을 향한 존중과 배려를 칼에 담아야 된다는 거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곧은 마음에서 비롯된 바른 정신이 함양된 검도인이야말로 진정한 검도인이라 생각합니다. 
검도를 통해서 체력과 힘과 스피드를 배우지만, 상대방에게 배려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체득하기까지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느 정도 기다림이 있어야 하고요. 아이들은 수련하다 맞으면 우선 아프니까 울고 싸우기도 하는데,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사과할 때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수련을 통해 성장해가지요. 부모님들께도 그런 부분을 잘 설명드리면 이해를 해주세요. 

 

나의 우승보다 더 기쁜 제자의 우승
제가 선수 시절 우승했던 것보다 제자가 우승하는 것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제자였을 때는 시합에서 지면 ‘아~ 감독님한테 맞겠구나.’라고 패잔병처럼 들어왔다면, 제자를 키우게 되니 제자가 지고 시무룩하게 있는 모습, 또 그 제자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에 마음이 쓰이더군요. 비록 시합은 졌지만 “계속 지진 않는다. 고개들고 웃어라!!”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경기로 인해 입시가 결정되고, 아이 인생이 갈림길에 놓이다 보니, 한 판을 이겨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지면 또 억장이 무너지고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이 이기는 것이 훨씬 기쁘고 기억에 남습니다. 

 

규정지을 수 없는 ‘검도의 세계’
‘검도는 나에게 000이다’라고 규정지으면 거기에만 국한될 것 같아서 섣불리 말을 못 하겠습니다. 검도는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도 참 어려운 운동 같습니다. 상대방과 함께 많이 수련을 쌓았다 생각하고 대련을 하면 막상 마음처럼 칼이 안 나오고, 다시 수련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다 생각하고 막상 대결을 해보면 또 멀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거죠. 나중에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검도의 의미를 깨닫지 않을까요? 아직은 검력이 부족해 당장 검도의 의미를 논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말보다 검으로 대화하는 지도자
저는 지금도 수련 중이고, 앞으로도 칼로 대화하려 합니다. “검도는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검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이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백날 말하는 것보다 칼을 맞대주고 서로 교감하는 것이 훨씬 더 배우는 사람에게 효과적이지요. 아이들이 운동한 도복보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스승 도복의 땀 냄새가 더 지독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닌, 검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동진 검도관장
010-2080-2338
blog.naver.com/kdj1395217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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