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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척, 잘 듣는 척, 대답하는 척 하는 영혼이 멈춘 아이들

2021년 10월호(14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0. 1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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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장의 공부 이야기 #4 

공부하는 척, 잘 듣는 척, 
대답하는 척 하는 영혼이 멈춘 아이들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 상담 시간에 하는 첫 질문은 늘 “너 뭐 좋아하니?”이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흥미도 적성도 그 아이의 성향도 있다. 모든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진 않는다. 또 모든 아이가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 사고를 잘하는 아이가 있고, 직관적 암기 능력이 좋은 아이가 있다. 눈썰미가 좋아 사람의 옷차림, 표정, 얼굴 등을 잘 기억하는 아이가 있고, 무덤덤한 성격으로 주위 환경 변화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주어진 일을 잘하는 아이가 있다. 20여 년이 넘게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학생의 흥미 안에 아이를 파악할 수 있는 많은 단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향적 성격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하는 운동, 게임을 좋아하고 자기 이야기하기를 즐겨한다. 하지만 반대로 자기 의견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친구들이 있다. 외향적 친구들은 사람들을 대하는 서비스업 등에 관련된 진로 주제를 잡아주고, 내성적이지만 크게 변화가 없고 꾸준한 친구들은 그에 어울리는 연구원 쪽의 진로를 소개해 준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친구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다. 진로진학 방향을 설정하고 학교-대학을 잇는 컨설팅이 정말 필요해서 받으러 온 친구들이 아니라, 엄마 친구의 소개로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 좋은 선생님이 있다는 소릴 듣고 무작정 찾아온 친구들이다. 이런 친구들은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도 일주일에 많게는 15시간 이상의 학원 및 과외 수업을 듣는다.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방과 후 아이의 시간을 학원으로 돌렸고, 혼자 무언가에 골몰해 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아이의 자율 시간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만 되면 바깥으로 아이들을 돌린다. 국영수 과외는 기본이고 필요하다고 이런 저런 학원을 다녀본 친구는 내 앞에 와서도 다른 과외를 받는 모양으로 듣는 ‘척’, 잘 대답하는 ‘척’을 한다. 이런 친구들을 다루긴 쉽지 않다. 네네 하며 대답을 잘 하지만 대답에는 들음이 없고, 눈에는 빛이 없다. 무엇을 좋아하냐 물으면 답할 것이 없다. 스스로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며 주도적으로 자신의 능동적인 시간을 가지고 활동해 본 일이 없다. 성공이건 실패건 어려서부터 부모가 기다려 준 적이 없다. 실패를 해도 스스로 하고 성공을 해도 스스로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성공을 통해 성취감을 맛 본 일이 없다. 그래서 좋고 싫음의 호불호가 없는 영혼이 멈춰버린 아이들이다. 

이런 친구들은 대부분 엄마의 많은 잔소리로 단련이 되어 있어 다른 어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학원에 의존해 의문이 생기면 찾고 파고들기보다 겉핥기식으로 공부를 했기에 어느 정도 문제들은 풀어낼 수 있어 2~3등급 정도는 유지한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고민한 흔적을 묻는 변별력을 위한 문제들은 풀어내지 못해 결국 전교 등수의 벽을 넘어서진 못한다. 엄마는 학원을 끊으면 그마저도 아이가 책을 보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한 달에 200만원 가량을 사교육에 투자하고 아이는 온 종일을 학교와 학원에 있다. 어려서부터 의욕 있게 스스로 결정하고 해 보지 않아 자신의 욕구와 의욕을 다루는 기술은 유아기에 머물러 있고, 돈으로 성적이 떨어지지 않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형태의 아이들. 은근히 주변에 찾아보면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상당히 많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 차라리 백지 상태의 아이들, 부모님이 생업에 너무 바쁘셔서 아이를 챙기지 못하고, 학교나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 친구가 우연히 공부를 하고 성취감을 얻게 되어 끝까지 도전해 최상급까지 치고 올라가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위와 같이 공부하는 ‘척’에 매몰된 친구들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주고 자기 가능성을 넓혀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친구들은 더 꼼꼼하게 상담에 들어가 필요 없는 수업을 줄이는 일부터 먼저 한다. 아이들은 각종 숙제와 과제에 헐떡이며 침묵 속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견디고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자가 호흡력이 약한 친구들에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천천히 스스로 호흡할 수 있도록 시간의 숨을 터준 뒤, 여유 속에 생긴 의욕을 바탕으로 천천히 바꿔나가는 것부터 필요하다. 그래도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오래 어딘가에 의지한 채 숙제를 공부로 알아 숙제를 하면 공부를 하는 줄 착각해 온, 오랜 기댐의 습관을 바꿔 자가 호흡과 자기주도학습으로 학생을 바꾸어 내는 일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성향을 배워가고 알아가는 일은 늦었지만 그 때부터가 시작이다.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오랜 나쁜 습관을 고치는 일은 부모에게도 필요하다.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실 부모들은 알고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준 존재이자 아이의 가장 오랜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가 공부의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건 학교 성적이나 지식 암기가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일임을 안다면, 그 때부터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바리에테 창의교육 연구소장 임대균
대학인 입시연구소 대표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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