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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미생물 디자인하기(2)

2021년 10월호(14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0. 1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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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인간, 그리고 디자인 2]

집안의 미생물 디자인하기(2)

 

이 칼럼은 에밀리 앤시스의 《The Great Indoors》(한국어 제목: 우리는 실내형 인간)라는 책 내용을 중심으로 공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디자인의 역할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항균 제품이 대세가 된 시대
바야흐로 항균 제품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방 재료는 물론 가전제품에서 가구, 유아용품, 문구, 장신구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가공제품에 항균 성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읽던 신문을 접어 두고 집안을 살펴보아도, 항균 성분의 제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코로나 19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진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항균 제품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파편화되고 분석적인 서양문화의 위험
지난 호에 잠시 말씀드렸듯이 서양문화의 무엇이든 치밀하게 분석하고 파고드는 특성을 따라 그동안 우리의 관심 밖이었던 보이지 않는, 하지만 거대한 생태계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미생물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해로운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대항할 ‘항균’, ‘살균’의 힘을 우리는 기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로운 미생물을 막기 위해 만들어낸 성분들이 집안의 건강한 미생물 생태계를 깨뜨리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서양문화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물질(물건) 혹은 기술을 만들 때 그것이 미칠 영향을 총체적으로 다루기보다 당장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양문화의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항균제
몇 년 전, 치약에 유해 한 성분이 들어있다는 소식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트리클로산’(triclosan)이라는 항균 물질이 문제였습니다. 트리클로산은 1970년부터 오랫동안 사용된 대표적인 ‘항균 물질’로서 과거에는 병원용으로만 제한했지만, 어느 순간 병원용 제품에 물을 타 농도를 희석한 뒤 다양한 소비재 제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최근엔 양말이나 속옷 등의 섬유 제품, 칼과 도마 등 다수의 생활용품에도 트리클로산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4년 3월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 트리클로산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햇볕에 노출되면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으로 분해되어 어류와 조류 등 해양 생물 및 수중 생태를 심각하게 교란함을 밝혔습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생태계를 위협하는 살충제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됨을 밝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해 이 물질이 발암, 환경호르몬 작용, 항생제 내성 유발 등 인체에 유해하다는 보고가 잇따라 발표되었고, 전 세계 많은 전문가들은 위생용품에 트리클로산의 무분별한 사용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트리클로산이 생체에 축적되어 그 농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2002년 스웨덴의 연구에서는 여성의 모유 속에 높은 농도의 트리클로산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고, 미국의 질병통제센터는 75퍼센트 이상의 미국인들 소변에서 트리클로산이 발견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건강한 면역체계 형성을 방해
무분별하게 항균, 살균 제품을 사용할 경우 인간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까지 없애버리거나 미생물의 다양성을 파괴해, 결국에는 인간을 온실 속의 나약한 화초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양한 미생물 군집을 접하는 것이 면역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미국의 두 농촌 공동체인 아만파와 후터파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두 공동체는 대가족 중심, 중부 유럽 혈통 등의 공통점이 많지만 아만파 아이들은 5%만 천식을 일으키는 반면, 후터파 아이들은 21%가 천식을 앓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핵심은 아만파 농업 공동체는 첨단장비를 사용하는 후터파 공동체에 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축을 이용해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은 집 가까운 헛간에서 노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축과 헛간 등의 공간에서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된 게 오히려 아이들의 면역체계를 단련시켰던 것입니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강력한 내성의 세균과 박테리아를 양성
넘치는 항균 화학물질의 사용은 해로운 미생물들의 내성을 엄청나게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실내 먼지 샘플에 항균 화학물질 농도가 높을수록 항균제 내성 유전자가 더 많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무분별한 항생제의 남용이 슈퍼 바이러스를 만들었듯이, 항균 화학물질로 가득한 집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강력한 유해 미생물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총체적 접근이 필요
그렇다면 디자인의 측면에서 어떠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까요? 현재 항균 성분의 건축(인테리어)자재인 목재, 플라스틱, 마루, 장판, 벽지와 가구 등이 엄청난 속도로 만들어져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품을 사용한 공간의 상태와 주거인의 건강을 충분히 고려할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미생물 생태계까지 고려한 환풍, 햇볕의 양, 철저한 방습 등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건축 항균 신소재의 개발은 독자적이 아닌, 건축, 의학, 생물(생태)학, 감염병리학, 위생학, 식품학 분야 등과 충분한 대화를 하며 겸손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메이징 스페이스 대표 고종훈
010-6378-1349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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