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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2021년 12월호(14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2. 3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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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아~ 법정 스님의 책이 여기 있었구나!’ 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다시 집어 든 책 속에서 쪽지 하나가 떨어진다.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17년 전 병실에서 만난 환자의 보호자 연락처다. 한 달 동안 2인실에서 지내며 속 얘기를 하던 일이 생각나 전화를 하려다가 ‘아차’싶어 다시 종이를 접었다. 혈액암을 앓고 있는 40대 동사무소 여직원은 그때 골수이식을 앞두고 있었다. 국내에는 적합한 골수가 없어서 해외에서 기증자를 찾았지만 말이 기증이지 4천만 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분당 아파트를 처분해서 병원비를 마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날마다 환자의 언니가 와서 밤새며 간호를 했다. 그러면 난 왜 그 병실까지 갔는가? 


인도에 다녀오고 급성간염으로 응급실로 향했다. ‘리시께시’에서 20루피를 주고 바나나와 오렌지를 샀다가 원숭이에게 습격을 받아, 약을 한 주먹씩 먹어서라고 혼자서 추정해 본다. 종이봉투에 과일을 담으라는 로운리 플레넷의 깨알 같은 조언을 깜빡 잊었다. 비닐봉지에 과일을 담아 덜렁덜렁 걷고 있을 때 원숭이 떼를 만났다. 그중 몸집이 좀 있어 보이는 원숭이가 과일 봉지를 낚아챘다. 봉지는 힘없이 뜯겨나가고 오렌지가 굴러 떨어졌다. 바나나와 함께. 나는 재빨리 바나나 송이를 집어 들었다. 원숭이는 눈알을 굴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풀쩍 풀쩍 몇 번 뛰어 내 손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을 남기고 바나나를 빼앗았다.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웃었다. 유유히 바나나 껍질을 까서 사람처럼 먹는다. 담장 위에 앉아 바나나를 먹는 원숭이를 향해 수중에 남은 오렌지로 겨냥해 던지고 싶었다. 


원숭이를 하누만이라고 숭배하는 힌두교의 나라에서 나의 행동이 부끄러운 짓일 것만 같아 지그시 참았다. 피가 나는 손등을 임시처방 해놓고 병원에 갔다. 공수병(광견병)에 걸리면 치사율 100%란 말이 두려워 찾아갔더니 주사 비용이 100달러였다. 17년 전 100달러이면 우리 가족 4명 일주일 체류비용과 맞먹었다. 인도로 배낭여행을 가면서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고 떠난 무모한 행동을 자책하며 한국에 가서 주사를 맞기로 하고 약 처방만 받았다.


한두 달 잠복하다가 나온다는 공수병은 다행히 발병하지 않았다. 대신 A형 간염이 걸렸다. 간 수치가 30이 평균이라는데 4000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수치를 정상화시키는 한편 간이식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한 달 입원하는 동안 염증은 가라앉았다. 황달 때문에 도마뱀 눈처럼 노랗게 변한 것 빼고는 별일은 생기지 않았다. 천운이었다. 


그제야 옆자리 환자에게 관심이 갔다. 처음에는 벽으로 얼굴을 향하고 말을 섞지 않더니 조금씩 조금씩 곁을 내주었다. 삼 남매의 둘째였다. 언니와 남동생은 결혼하고 본인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단다. 동사무소 직원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생활비며 어머니 병원비며 이런저런 대소사를 챙기면서 자그마한 아파트도 청약해서 분당에 아파트도 있다는 알짜배기였다.


병세는 위중했다. 수혈을 하면 몸에 이상 반응이 와서 발바닥까지 빨개지고 고열로 고통스러워했다. 언니는 숨을 죽여 꺼이꺼이 울었다. 너무 불쌍하다고,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다고 울었다. 양말을 올려놓은 스팀 보일러 앞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오래도록 울었다. 이렇게 애달파하는 언니가 있는 게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간 수치가 정상화되기 시작하면서 환자의 보호자가 늦는 날은 식판도 대신 받아주고 물도 떠다 주었다. 모시고 계신 어머님이 올 만도 한데 환자 곁에는 오로지 언니만 있었다.


“엄마는 남동생뿐이에요. 돈 아껴서 어머니 보약이라도 해드리면 그러지 말고 그냥 돈으로 달래요. 알고 보면 어느새 남동생한테 가 있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나는 뭔가 싶어요. 이렇게 병원비로 아파트 팔 거면 그냥 막 쓸 걸 그랬어요. 하긴 이거마저도 없으면 골수이식은 하지도 못했겠지요. 아파트 팔고도 돈이 남으니 직장 복직하기 전까지 그거로 살아야지요.” 한 번 말문을 트자 이런저런 얘기도 다 전해주어 한 달간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친정에서 우리 엄마가 왔다. 보온병에 죽을 쒀서 가져오셨다. 된죽이 보온병에 잘 나오지 않았다.
“죽이 돼져서 안 나온다.”
발음이 우스웠다. 
“죽이 뒈졌다고요?”


병원에 와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우린 모두 한바탕 웃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쌀죽임에도 속이 확 풀렸다. 간장을 조금씩 놓아가며 쌀죽을 모두 비웠다. 엄마가 귀가하시고 우린 또다시 덩그마니 둘만 남았다. 낮에 회진 왔던 의사 선생님이 옆 환자에게 주었던 희망의 말과, 마치 아이처럼 대하던 친밀함에 생각이 미쳐 다 잘 될 거라고 서로 응원했다. 나의 퇴원은 점차 가까워 왔다. “건강해지시면 꼭 만나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법정스님의 책 안에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끼워 넣었다. 면회 온 남편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편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하라는 우스개도 주고받았다. 한 달 동안 만든 짐은 이것저것 많았다. 병실을 나서는 기분이 가뜬했다. 원숭이 때문에 한 달을 입원했지만 무사히 퇴원을 하니 모든 게 용서가 되었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기로 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다시 만나자는 말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 정리를 하다가 연락처 한 장이 떨어져 전화를 걸고 싶었다. 휴대폰 전화는 없는 번호였다. 대신 02로 시작하는 서울 언니네 집으로 전화를 하면 잊었던 과거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성모병원.”


“아아악.” 비명소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골수이식의 실패, 죽음… “아, 끊을게요. 죄송해요.” 수화기를 놓는 나를 굳이 말리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뚝 끊어졌다. 창문 앞에서 너무 불쌍하다고 울던 환자의 보호자. 끝내 어머니도 남동생도 면회 오지 않았다. 다 같은 자식인데 왜 어떤 자식에게는 주기만 하려 하고 또 어떤 자식에게는 받기만 하려 하는 걸까? 부모 노릇을 공평하게 하지 않으면 어떤 자식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힌다. 분당 아파트는 남동생 몫이 되었을까? 어머니는 누가 모실까? 답도 없는 질문을 혼자서 되물으며 전화번호를 구겨 버렸다.

 

의정부시 효자고등학교 교사
《그 겨울의 한 달》저자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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