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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장의 공부이야기

2021년 12월호(14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2. 3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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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장의 공부이야기 #6]

임소장의 공부이야기

 

 

3년 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회 균형 전형으로 서울대학교에 지원했던 학생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필자에게 자기소개서 구성 상담을 받으러 왔었는데, 상담 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감명 깊게 6번이나 읽었다며 자신의 자기소개서에 꼭 넣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의 제목은 《롤리타》, 나이 어린 여성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롤리타 콤플렉스’의 그 롤리타 맞다. 요즘 시대적 관점으로 당장 미성년자보호법이 떠오르며 금기시 되는 소재라 학생의 학교 선생님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다 만류하셨단다. 


나 역시 이 책을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조혼의 풍습 및 문화적 다양성, 문학적 상상력 등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글을 풀어가면 좋겠다고 조언해 책을 서류에 기록하게 도왔다. 참고로 춘향전의 춘향이와 이도령은 16세 동갑이었고 4·19혁명, 촛불혁명은 중·고등학생, 우리의 10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소설《롤리타》는 출판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당당히 세계문학전집에 실려 있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자기소개서에 사회적으로 예민한 인물들을 언급하게 될 때 “이런 내용을 입시 서류에 써도 될까요?” 학부모님들, 교사분들께 실제로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학생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서류들을 보고 읽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갇혀 무작정 착하고 성실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만들어진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이지, 서류 속에 학생의 관심사가 넘치고 개성과 생각이 넘쳐 대입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착하게 보이고자 노력하지만, 착한 아이는 오히려 매력이 적어 보이기 쉽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좋은 입시 전략이 아닌 것은 또한 중·고등학교와 대학 공부의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주로 주어져 있는 지식, 정보를 통해 기존 사회의 문법을 익히고 답습하는 공부를 위주로 한다면 대학에서는 철저히 기존의 문법을 배제하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사상, 이론과 생각들을 열어두고 의심 속에서 공부를 한다. 필자의 인문대 대학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포르노그라피를 보고 토론을 하기도 하고, 6.25 전쟁 북침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텍스트를 읽기도 했다. 그러니 마음껏 의심해 보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대학의 공부 과정에선 고등학교 시절의 모범생, 착한 아이에게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비판하는 법, 권력에 저항하는 방법, 파업-시위하는 법 등을 학교에서 가르치며 장려하는 독일에서 통용되는 유명한 말이 있다. ‘죽은 물고기만 강의 흐름을 따라간다.’ 즉, 자신에게 들어오는 지식들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학생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며, 이것은 지식을 다루는 태도가 아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들이 오픈된 현 시대의 학교 선생님들이 보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는 ‘내가 수업 중 틀린 말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틀렸는지 학생들이 궁금하면 찾아보고 알려주길 바래’라고 말하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실리적으로, 또 명분적으로도 정보와 지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는 중·고등학교 공부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꿨다거나 뉴턴의 물리법칙을 아인슈타인이 깼다거나 하는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모두가 다르게, 평등하지 않게 태어나며 나를 포함해 대통령이건 기업 총수이건 위대한 철학자이건 누구나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깨닫는다면 이미 사유의 태도, 배울 자세는 다 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나 BTS를 좋아하지 않고 어떤 이는 히틀러를 좋아할 수 있다. 자신의 분노 지점과 자신이 어떤 모습에 반응하는지를 메타인지로 들여다보며, 내가 누구이고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 공부와 진로 찾기의 첫 걸음일 게다. 
  
너 자신을 알라!  

 

바리에테 창의교육 연구소장 임대균
대학인 입시연구소 대표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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