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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고3을 마치면서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 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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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고3을 마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작년 고등학교 3학년인 내가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되뇌인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수험생의 시간이 끝났다.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돌이켜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학교에선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교육청에 프로젝트 활동을 하러, 주말엔 다른 학교로 수업 들으러,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 못 보면 어떡하지? 성적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휩싸이던 나의 지난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돌이켜보면 꼭 힘든 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힘든 시간 속에서 잠깐 잠깐의 행복이 나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점심시간, 몰래 나가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학교는 조용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학습을 신청한 터라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독서실에 돈 주고 가느니 학교에서 밥 얻어먹으며 공짜로 공부하겠다고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 꿋꿋이 학교에 나왔다. 그 넓은 자습실에서 혼자 공부했다. 홀로 공부를 하고 있자면 문득 외로워지기도 했다. 급식을 먹으러 잠깐 나온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학교 안을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수능을 약 한 달 앞둔 어느 날, 햇살은 가득하고 단풍이 한창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급식을 먹고 교내를 걷던 중, 이번에는 문득 학교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가정학습을 쓴 친구들은 떳떳이 교문을 드나들 수 있어서 옆에서 내게 나가자고 유혹했다. 때마침, 교문 지킴이 선생님도 자리를 비우셨다. ‘그래! 선생님들도 모르시겠지. 그냥 나가자!’그렇게 우리는 교문을 나섰다.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일과 시간에 교문을 몰래 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들키면 어쩌지’하는 불안감도 잠시, 예쁘게 핀 단풍들을 보며 수험생활의 스트레스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 주위를 한참 걷다가 교과 선생님들을 마주쳤다. 멋쩍은 웃음으로 선생님들께 인사를 했다. “요즘 학교 참 좋아졌네~” 선생님들은 웃으시며 지나가셨다. 우리도 몰래 하는 산책은 실패했다며 한바탕 웃었다. 학교로 돌아가던 중에 이번에는 저 멀리에 담임선생님이 보였다. 다시 길을 되돌아가자니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앞으로 가자니 점심시간에 몰래 나왔다고 혼이 나면 어쩌나 싶었다. ‘에이 설마 혼내시겠어’ 우린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멋쩍게 웃으며 인사를 드렸다. 학교 밖에서 제자를 만난 담임선생님은 약간 놀라신 듯했지만, 꾸중 없이 웃으며 지나가셨다. 학교로 복귀한 후에 담임선생님은 내게 외출증을 끊어 줄 테니 편하게 산책 다녀오라고 배려해 주셨다.

 
점심시간에 몰래 산책을 하다가 선생님들을 만나고, 게다가 담임선생님까지 만나다니! ‘몰래’하는 산책은 완전 실패로 끝났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점심시간이 되면 외출증을 끊고 마음 편히 산책하러 다니곤 했다. 급식을 먹고 친구들과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하는 짧은 시간의 산책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추워진 날씨에 그때의 분위기가 그립기까지 하다. 물론 수능이 그리운 건 아니다. ‘수능 못 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단풍을 구경하던 날들.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열아홉 살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으며 느낀 것들
나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도움을 받는 것에는 영 낯설고 불편하다. 그런데 올 한 해는 유독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젠 도움 받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주변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했다. 성적 고민으로 힘들어하던 내게 정신적인 지지는 물론 자기소개서, 면접까지 대입의 모든 것을 함께 해 주신 담임선생님, 바쁘신 데도 나의 자기소개서를 여러 번 첨삭해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신 국어과 선생님들, 잘 될 거라고 항상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교과 선생님들. 수다쟁이인 나의 말동무가 되어 함께 웃으며 불안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친구들, 그리고 ‘수험생’ 막내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특히 “시험 못 보면 어떡해”라는 나의 걱정 섞인 말에 늘 “못 봐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나의 걱정을 덜어준 가족들의 응원이 있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히 먹을 수 있었다. 수험생활을 보내고 나니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때론 밉기도 하지만 그 어떠한 일이 닥쳐도 나의 편이 되어줄 소중한 자산이다. 무엇보다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들, 친구들이 늘 곁에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이제 스무 살이 된다. 영원할 것만 같던 10대를 보내고 20대를 맞이하려니 여러 생각이 든다. 수능만 끝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이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택해야 할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등등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20대는 이처럼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 일 테다. 그렇지만 나의 스무 살은 너무 스트레스만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막연한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스무 살이 된다는 게 설레기도 한다. 대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각종 대외활동에 참여해 견문을 넓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 가슴이 벅차다. 또한,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돌며 여행도 하고, 코로나19가 좋아지는 대로 해외로 놀러가고 싶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처음으로 돈도 벌고 인생 경험을 쌓아가고 싶다. 

 


올 한 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듯이 나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어른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 이제 입시라는 큰 산을 넘었고 앞으로 취업, 결혼 등등 많은 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승리를 거머쥐어 도취하지도, 실패하여 좌절하지도 않는 20대를 맞이하길 바란다. 시계는 살 수 있으나, 시간은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먼 훗날에 나의 스무 살을 떠올릴 때 미소를 지을 수 있게끔 밝고 희망찬 스무 살을 기대해본다. 얼마 전에, 면접까지 끝내고 정말 수험생활에서 해방됐다. 면접을 마치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사진이 하나 왔다. 내가 작년에 멘토링 활동을 마치며 나에게 쓴 응원 문구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앞으로도 파이팅!”

 

의정부 효자고등학교 
3학년 양진용 
timi0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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