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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현대적 숨을 불어넣다 ‘김원천’ 한옥건축가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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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한옥에 현대적 숨을 불어넣다
‘김원천’ 한옥건축가

 

회사명이 ‘참우리건축’인데요, ‘참우리’의 뜻이 무엇인가요? (양진용 학생기자)
참(旵)의 한자는 ‘햇살비칠 참’으로 날 일자에 뫼산이 아래 있어요. 2014년 한옥을 짓는 장인들, 건축가들이 모여 돈으로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위한 진짜 집을 지어보자는 마음에 ‘참우리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출발을 할 때, 이 한자의 모양대로 산의 아주 깊숙한 골짜기 안까지 해가 닿는, 계곡 안쪽에 만들어진 동네를 생각하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현실의 벽을 통감하다
‘참우리협동조합’은 5년 정도 운영되다가 현재 잠시 접은 상태입니다. 처음부터 협동조합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었으니 아쉬움은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사회적으로 왜? 한옥이 없어지는지, 반대로 왜? 한옥은 남아있어야 하는지, 한옥이 꼭 옛날 방식이 아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일해 왔어요. 그래서 한옥에 살고 싶은 고객이 돈이 많지 않을 때는 우리 모두가 십시일반 힘을 모으고 지혜를 발휘해 벌고 싶고, 만들고 싶은 욕심을 조금씩 빼고, 줄이며 일을 진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하는 장인분들, 건축가들의 삶의 방식이 다르고, 무엇보다 이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좋은 취지와 이상을 가진 조직에 있으면 기분은 좋고 보람도 있지만, 결국에는 현실적 문제에 귀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이 일을 하며 많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구조를 바꾸었습니다. 설계자, 시공자, 관리하는 사람,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 등이 모일 수 있는 테두리를 만들어 소통할 수 있게 했고, 세 개 영역의 회사를 각각 독립된 법인으로 각 특성을 살려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직원들도 적성에 맞는 회사를 선택해 옮겨 다닐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김원천 한옥건축가


여행에서 유명한 건축물들을 찾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양진용 학생기자)
예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석해 베니스에 3주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묵었던 숙소는 도미토리라고 할 정도로 침대가 많고 화장실, 욕실도 공용인 복잡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3주정도 있다 보니, 동네사람들만 아는 pub같은 곳에서 술을 마셔도 숙소를 찾을 수가 있더라고요. 잠시 동안이지만 그 동네 사람이 되어 살아본 거죠. 
유명관광지들은 삶이 아닌, 관광지로서의 가치만 있기에 오히려 유명하지 않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곳에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오히려 더 기분이 더 좋고, 나만의 뭔가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체코의 프라하에 갔을 때도 같이 간 사람들은 프라하 궁 근처만 보고 가려 했어요. 그런데 제가 평범하며 장식 되지 않은 건축을 옹호한 ‘아돌프 로스’가 지은 집을 보러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패러다임과 완전히 다른 집을 지었던 건축가였죠. 그가 동네 사람들을 위해 지은, 실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곳을 가기위해서 엄청 걸어야 해서 다들 투덜거렸지만, 도착해서는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내 어릴 적 꿈은 대도(大盜)
초등학교 때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 했습니다. 아가서 크리스티 전에 아르센 뤼팽, 셜록 홈즈 등 말이죠. 특히 뤼팡은 훔치는 일을 하는데, 그 일로 사회적으로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캐릭터여서 너무 흥미로웠죠.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장래희망에 ‘대도둑’이라고 썼어요.(네? 큰 웃음) 당연히 선생님께 불려갔죠. 왜 장래희망이 도둑이냐는 선생님의 추궁에 “뤼팽처럼 되려면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것들을 알아야하는데, 그런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적었습니다.”라고 했다가, 다재다능한 것이 도둑밖에 없냐는 선생님의 한소리를 들어야 했죠. 중·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막연하게나마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희 집 가훈이 ‘의롭고 참되게’인데, 홍익인간의 땅에 태어났으니, 제가 만드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유익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전공으로 건축을 선택했습니다.

‘대도’가 아닌 ‘대목’이 되다
1990년대 후반 서양건축을 전공했던 저는 일본 건축가들이 나라의 성장과 경제의 풍요함 속에서 자신들만의 전통적 요소를 반영한 건축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나도 건축으로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한옥은 그냥 전통건축 정도로 여겨지던 시기였는데,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 싶어 찾아보니 몇몇 유명한 교수님들이 만든 학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공부하고 싶지는 않아, 한옥의 단청을 가르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을 찾아 접수를 했습니다. 그 때 담당자께서 “자네는 뭐하는 학생인가?”, “건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니 “그럼 단청 말고 한옥 짓는 대목을 해야지” 하더군요. 이렇게 한옥과의 연을 맺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2000년부터 경복궁, 창덕궁 등을 수리, 복원하신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신응수 대목장님의 대목 반에 들어가 배우며, 한옥 짓는 목수일은 2001년부터 2005년 초까지 했습니다. 

동서양사람들의 가치관과 건축과의 상관관계
서양은 선을 그을 때 시작한 점에서 직선처럼 목표를 가지고 쭉 긋는 작업을 하고요. 동양은 뭔지는 모르겠는데 원심적이고, 어디에 중심을 두기보다 시작한 곳에서 어디론가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양은 목표 지향적으로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를 만들어 그곳으로 가려 합니다. 만약 건축 재료가 돌이라면 돌이 얼마큼 필요하고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디테일하게 기획하여 진행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한옥을 지으며 처음부터 느꼈던 것은 한옥은 완성에 대해 목표 지향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변화를 인정하고, 거칠지만 소박하고, 일반적 기술수준과 사람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그 용도에 맞게 구축하며 짓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무언가를 담죠. 사찰이면 부처, 궁궐이면 왕, 집이면 다양한 사람들, 죽은 사람과 산 사람들이 이어서 함께 담기는 거죠. 예전에는 대청에 선조인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걸어놓기도 하고 위패도 모셨으니까요. 이런 차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1938년, 한옥의 역사


한옥의 곡선, 현대건축에 영향을 줄 수 있나?
직선이나 모서리가 명확히 네모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고, 무뎌지게 되어 있어요. 견고히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놓는 것들에 시간을 불어넣는 순간, 영원히 그대로일 수 없고 변화하기 시작해요. 시간 속에 사계절이 있고, 바람도 불고, 물도 흐르고, 결국 우리 몸이 늙어가듯 건물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한옥은 안에 미리 그 변화를 넣어 놓았어요. 맨 처음부터 구부려 놓으면 계속 휜 상태로 있으니 역설적이지만 지속성을 가지게 돼요. 이 집도 1938년에 지어진, 80년이 넘은 집인데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까요. 보시는 것처럼 기둥마다 모서리를 굴리는 거예요. 나무가 터지더라도 그 형상인거죠. 이런 한옥들의 곡선이 현대건축에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곡선의 유연함이 주변과의 단절이 아닌, 이어짐이 되고 세상과 연결되어 우리를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거든요.  

 

1938년 한옥, 2022년 현재모습


한옥의 가장 중요한 점, 변한다는 것!
한옥은 변화가 기본입니다. 먼저 재료인 나무가 변합니다. 한옥 목재로 130cm의 나무를 가져와도 이동 중에 습도에 변화가 있어 길이가 129.5cm로 줄 수 있어요. 이것을 ‘아 이거 잘못 온 거 아냐?’하며 분쟁을 일으킬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의 목적은 변화 속에 살아 갈 수 있는 한옥을 짓는 것인데 나무가 그 성질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또 한옥을 이야기할 때 저는 고인돌부터 이야기합니다. 기둥 두 개, 기둥 네 개를 세우면 공간이 생기잖아요. 한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간 안에 내 삶, 가족의 삶, 우리 공동체 삶을 위한 비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은 계속 바뀐다는 것이죠. 80년이 넘은 이 집도 예전에 한때 헌법재판관이 살았다고 해요. 1950년대에는 주택이었고, 그 이후에는 하숙집에, 게스트하우스에, 지금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옥의 공간이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바꾸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빌라, 아파트 안에 한옥을 담다
지금 우리나라 도시 주거형식의 60% 이상이 아파트입니다. 좁은 땅에 인구를 수용하려니 이용이 효율적인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익명성의 그늘이 있지만 공동체의 규모는 커졌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살지가 중요해진 시대인거죠. 혜화동의 빌라를 한옥으로 리모델링하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동네길이 집안까지 연결되도록 길을 연장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집에서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인 공간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세상을 향해 열려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거죠. 그리고 편안한 주거생활을 위해 거실안의 나무기둥, 소파, 마루 등 한옥 느낌을 살려 배치했습니다. 나무기둥에 볼을 가져다 대는 느낌은 마치 골목 안에 있는 기분을 연상하게 하죠. 이 자체는 ‘내 집을 내가 만진다. 껴안는다.’는 감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공간인 집을 사랑하게 되죠. 아파트라도 이런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아파트에서 내가 내 집을 만진다는 표현을 하지 않잖아요. 아파트 전체를 한옥으로 하기보다 주로 가족들이 모이는 공간, 대청과 베란다 정도 바꾸어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내 집이라는 느낌과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1938년 한옥, 현대적으로 바뀐 실내 모습
한옥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욕실 내부


전주, 북촌, 공주, 최근 은평 한옥마을 등이 갖는 의미
저희 일의 절반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 안에 오래된 한옥들이 있거든요. 이미 만들어진 한옥마을도 있지만, 신규 단지인 은평 한옥마을은 다른 의미가 있죠. 
지자체에서 우리의 고유한 기술, 주택, 이미지를 유지하고 확산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니까요. 제도를 만들어 이곳은 한옥만 지을 수 있다고 정해놓아, 한옥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그 테두리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의 경우, 1990년 후반 개발업자가 갑자기 한 지역의 밀집된 백여 채 가까운 한옥을 허물고 양식 주택들을 지었을 때, 우리가 살던 터전인 한옥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어 보전된 것이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이죠.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자본의 논리에 따라 한옥은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역사에는 커다란 흔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작은 역사들도 있어요. 한옥은 이웃들의 작은 역사이고, 예전 사람들이 집을 이렇게 짓고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죠. 또 아파트 분양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것을 살려낸 것은 다시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옥 쉐어하우스, ‘따로 또 함께’ 
우리나라 1인가구가 40%에 가까운데 앞으로 더 늘어날 추세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뭔가 같이 사는 중요함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오롯이 혼자 단절된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이지, 나 혼자만은 살 수 없으니까요. 원서동 한옥쉐어하우스를 리모델링하며 개인프라이버시 공간과, 둘 또는 넷이 만날 수 있는 공간 등을 점진적으로 배치하면서 사업상 많은 돈이 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좀 더 새로운 사회자본을 만들어 내야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게 될 때 집이 있어야 하는데, 집을 혼자 구하기 힘들면 같이 지어 ‘너희는 여기 살고, 우리는 여기 살자’며 공유할 수 없을까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한옥의 한계
한옥은 사람들이 많이 살 수 있는 밀도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옥을 4층으로 지으면 조금 더 저렴하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 경제 구조 속에서 한옥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한옥은 이러한 가운데 밀도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한옥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가 숙제입니다. 한옥을 짓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합니다. 그런데 관리하는데 손이 많이 가고,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으면 힘든 것이 현실이죠. 웬만한 사람들은 짓고 살기 힘듭니다. 

한옥보수, “제가 책임질께요!”
1년 전 400년 이상 된 땅에 지어진 한옥보수 문의가 왔습니다. 직접 내려가서 보니 대들보를 재활용했는지 보기에 200~300년은 되어 보였어요. 알고 보니 동네에서 유명한 문중의 장손 집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이 한옥을 보수해서 나머지 인생을 살 것이고, 앞으로 자기 자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이 집을 이어서 살 텐데 기존의 것은 살리고 지금에 맞는 한옥을 짓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미래의 주인들까지 생각한 설계를 해서 올해 공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또 양평에 있는 농부께서 7~8개월 이메일을 계속 보내며 보수하기를 원해 가보니, 저희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집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옥 일을 하며 보수하는 생각과 기술에 대해 “이게 정확하고 안전합니다. 제가 책임질께요.”라고 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들만 하고 있어요.(웃음) 사람으로 치면 거의 병원 중환자실을 운영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건축가는 삶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양한 삶이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용도는 면적이 이래야 되고, 또 이것은 맞지 않으니 새로 지어야 한다며 삶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어떻게 삶의 공연을 펼치게 할 것인지 변화를 인정하는 공간을 고민해야하는 것이죠.”라고 하는 김원천 한옥건축가의 말에서 인간과 지금 시대의 한옥을 접목하는 가운데 전혀 새로운 공간을 고민하는 흔적이 인터뷰 내내 전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질문에 대답도 하시면서 찻잔이 비어지기 않게 계속 보이차를 채우며 대접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을 배려하듯이 한옥건축을 할 때도 이런 온기를 넣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모쪼록 ‘참우리건축’이 올 한해 직원들과 함께 더 비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김원천 한옥건축가

2001 ~ 2005 
창덕궁 규장각, 경복궁 근정전, 
태원전, 조계사 대웅전 대목참여
2008 ~ 2013
북촌 등 한옥설계, 서울 문경 등 
한옥시공 다수참여
2015 ~ 현재
㈜참우리건축 한옥연구소 소장 
㈜한옥살림, ㈜참우리건축 대표
2018 
은평한옥‘백세청풍’설계 및 시공
공동체(쉐어하우스)한옥 신축공사 
설계공모 우수작 
2020 
원서동 소공헌, 가회동 K한옥, 
평창한옥 설계 및 감리
2021  
견지동H, 이태원한옥, 공주한옥 
설계 및 시공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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