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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이 나는 좋더라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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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이 나는 좋더라

 

제가 살고 있는 군포는 크기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작은 시 중에 하나이지요. 이 도시로 14년 전에 이사와 지금까지 살아온 저에게 누군가 “군포는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우리는 수리산이 제일 좋아요”라고요. 사실 어딜 가나 산 밖에 없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저에게 처음부터 수리산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도시 생활이 깊어질수록 수리산은 매력을 넘어 저에게 너무나 고마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수리산 속에서 꾸준한 운동(달리기와 자전거)과 등산, 산책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도시 아주 가까이서 사람들을 이렇게 넉넉하게 안아주는 산은 드물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리산이 왜 좋은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조금 색다른 면을 말해 보려 합니다. 바로 ‘수리산의 어둠’이지요.


새벽어둠_청각과 후각, 공간감의 놀라운 확장
새벽녘 날이 밝아오기 전, 수리산 바로 아래 자리 잡은 납덕골 계곡에 들어찬 어둠을 뚫고 달려보신 적이 있나요? 자전거로도 좋고요. 띄엄띄엄 놓인 가로등 불빛, 그마저도 없는 길을 달리다 보면 청각과 후각이 아주 예민해 집니다. 주변 풍경이 어둠에 지워진 공간속에서 시각적 산만함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다른 감각들이 채우는 거지요. 그래서 밤을 새운 피곤함에 졸음 섞인 풀벌레의 작은 노랫소리뿐 아니라, 가슴 한편을 요란하게 뒤 흔드는 반가운 알밤 떨어지는 소리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지요. 어린 시절 산골 아이들의 가슴마다 깊이 남아 있는 ‘투두둑-’ 그 신나는 소리 말이죠. 그뿐인가요? 꽃들이 피워놓은 아찔한 꽃향기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답니다. 향기의 종류에 따라 주변에 어떤 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가로수들에 갇혀 있는, 쭉 뻗은 길을 달리다 보면, 마치 내가 그 공간에 완전히 꽉 들어차 달리는 것 같은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지요. 


저녁어둠_빛 아래, 달빛 아래 시인이 되는 시간
뜨거운 여름날 무더위를 피해 수리산을 찾는 것 말고도, 수리산의 저녁 어둠은 언제든지 찾는 이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주지요. 어둠이 깔린 산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색과 입체감을 벗어버린 채, 단순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나무들처럼 하루의 모든 분주함을 내려놓고 가만히 나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두움이 짙게 깔린 수리산 계곡에(조용하고 아늑한 장소로는 활터의 공원이 가장 괜찮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을 만나게 됩니다. 잘하면 그 속에서 별똥별을 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고요. 또 달빛은 얼마나 곱고 고운지, 시 한 수가 저절로 읊어지기도 하지요. 

 

경기도 군포시 윤영훈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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