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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2022년 3월호(14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3. 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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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농부 이야기 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작년 12월경 지역의 농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업 문제로 상담을 하던 중 “버섯 농사 할 만 하세요? 쉽지 않을 텐데요.”라는 직원 질문을 받고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질문이 아닌 정말 무게가 실린 현실감 있는 질문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짧은 시간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나 “현실을 더 잘 아시잖아요.”라는 저의 답변에 그분이 던진 “농사를 통해 한 달에 순수익 백만 원 남기는 것은 정말 정말 쉽지 않아요. 귀농 교육은 현실성이 없어요. 나름 선방하셨다니 다행이지만 많은 분들이 힘드실 거예요”라는 말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대화 내용을 계속 곱씹고 곱씹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차가운 농촌 산업의 현실과 수많은 실패의 원인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소수만이 농업을 통한 수익을 내고 있고, 단순한 수익을 넘어 새로운 사업과 새로운 농촌 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할까 등등을 말이지요. 이런 가운데 귀농인들이 놓치고 있는 큰 원인으로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면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생각 
귀농한 사람들이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조합을 만들면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할 뿐 아니라, 생산품을 판매해서 수익을 더 잘 낼 수 있기 때문에, 농사를 짓게 되면 반드시 영농조합이든, 작목 연구반이든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외적으로만 보면 조합이 형성되고, 그 조합을 통해 판매 루트를 뚫고,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들을 판매함으로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나름 앞을 향해 달려가는 영농조합들을 보면 이런 좋은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기 위해 먼저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다양한 대화의 과정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보기가 되는 조합들이 되려면 아주 작은 수익을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자신들의 시간을 내어 놓아야 하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생기는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갈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금방 만들어 갈수 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영농 조합이든, 작목반이든 열의 하나는 실패한 현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말입니다. 실제로 저 또한 작은 모임을 만들어 보려 시도해 보았습니다. 키우는 작물에 대한 정보 나눔부터 시작해 생산한 물건들을 공동구매 등을 통해 함께 판매하는 시도까지 말이지요. 그러나 공통의 목적을 위해 눈앞에 보이는 개인적인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등 조금은 민감한 부분들을 대화하는 단계에서 멈추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모임을 통해 서로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자기의 것은 포기하지 않은 체 그저 자신의 이익을 얻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내가… 내가… 
사실 외적인 조합이나 모임들이 형성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내 생각으로는… 내가 경험하기로는… 왕년에…’이 모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수십 년 동안 자기 사업을 해 왔고, 사장이나 회사의 관리자 등으로 지내오는 가운데 형성된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하루 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농촌에서 수십 년 동안 땀 흘린 수많은 농부들이 보여주는 ‘함께’라는 모습을 귀농인들은 잘 보지 못합니다. 작은 작물 하나라도 서로 대화하고 일정을 조율하며, 가장 적절한 때에 함께 심고, 함께 수확해서 판매하는, 삶 그 자체가 ‘함께’로 이루어져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데도 말이지요. 귀농 교육 속에서 이런 부분을 많이 강조하지만 마치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처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기대
그럼에도 함께 대화하고, 함께 땀 흘려 일하고, 함께 좋은 물건들을 판매하는 등등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나서 작은 농촌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꿈은 놓아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차가운 농촌의 현실을 경험하면서도 실제로는 솔직한 대화조차 할 수 없고, 늘 말은 함께라고 하지만 실상은 이 함께를 이루어가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다면, 시작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수익을 내기 위해 모임을 만들려고 모였다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간의 대화와 소통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을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상상농부 한상기
01sangsang@hanmail.net
010-4592-3488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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