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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희생과 배려의 사이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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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작은 희생과 배려의 사이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길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가 자신의 나이를 87세라고 하면 “아이구 한창이네, 많이 젊어!”라고 이야기 하시는 저희 친 할머니! 올해로 96세(1922년생)이십니다. 어느 누구든 나이에 대한 서글픔이 찾아오려 할 때,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이런 느낌을 단번에 날려 버리죠. ^^

 

 

  할머니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사셨을까요? 할머니의 인생을 잠깐 말씀드릴께요.
  16세에 1살 연하인 할아버지와 결혼하고, 저희 아버지가 7세 때 할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에 평생을 과부로 사셨어요. 그러나 결혼 전에는 외동딸로 예쁨을 많이 받고 자라셨고 어머니가 한글도 가르쳐주셔서 장화홍련전도 읽으시곤 하셨다고 해요. 남편이 죽고 시할아버지를 일찍이 여의신 할머니의 시어머니는 서울로 일을 하러 가셨고, 저희 할머니는 시골에서 시동생들과 중풍 걸리신 시할머니를 12년, 또 치매에 걸리신 시할아버지를 꽤 오래 모시고 어려운 살림을 사셨다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저희 아빠가 엄마와 결혼해 4남매를 두셨는데, 두 분이 항상 바쁘셔서 저를 포함한 손주들을 할머니가 손수 키워 주셨죠. 평생을 자신보다는 가정에 헌신하며 사신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 만약 내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면... 상상할 수도 없어 고개가 절로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우리 할머니는 성격이 밝고 매우 긍정적이셔서, 저희 손주들을 비롯해 주변에 계신 분들이 모두 할머니를 좋아하지요. 이렇게 씩씩하게 사신 분이 올해 5월 말에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으셔서 대퇴부가 부러져 수술을 받으셨어요. 연세도 많으시고 과거에는 위험한 수술로 알고 있어서, 저희 식구들은 모두 긴장하고 힘든 마음으로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는 간호사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나오시더군요. 

 

  너무도 감사하게 재활치료를 하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몸도 몸이지만 처음에는 할머니의 절망한 마음을 격려해드리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제 한 숨 돌리고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고 나오시면 되겠다 생각할 때 즈음이었어요. 부끄럽지만 가족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지요. 엄마는 아빠에게 힘든 삶을 호소하였고, 둘째인 저는 큰언니 가족들이 집안을 어지럽혀 놓고 간 것으로 크게 화를 내었고, 병원에서는 성질 급한 막내 여동생이 할머니 휠체어를 밀며 좌우 보지도 않고 빨리 재촉하는 바람에 또 저와 다투었죠. 이래저래 서로 날카롭게 되어 이럴 바엔 할머니를 혼자 간병하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순간 올라오기도 했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문제는 바쁜 식구들 모두 그동안 응급실과 병실로 오가며 간병한다고 많이 지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겁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때에 정말 희생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의 희생뿐 아니라, 서로의 상황을 헤아려 주는 마음 자세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전보다 아침 일찍 요양병원에 찾아가 할머니를 돌봐드리며, 작은 희생들을 먼저 감당하고자 마음을 먹었지요. 그랬더니 그 이후로 가족을 더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저 자신에게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일 후에 할머니는 담도에 종양이 발견되어 또 한 차례 대학병원에서 몸에 관을 집어넣는 꽤 큰 시술을 받으셨어요. 위급한 상황도 몇 번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겨 물리치료를 시작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없진 않겠지만, 이 시간을 통해 가족들이 많이 성숙해지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한편으론 할머니가 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셨는데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잘 정리하실 수 있도록 손녀인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어요. 너무 연세가 드셔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실 수 있으니까요.

 

  이 세상에 간병으로 지치신 모든 분들께 큰 박수로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

 

서울시 잠실에서 김선미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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