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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PD의 죽음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7. 1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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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야기]

젊은 PD의 죽음

 

 

  얼마 전 모 채널에 입사한 신입PD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어렵사리 공채를 뚫고 정직원으로 안착한 청년은 왜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PD는 영상을 통해서 메시지를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드라마, 음악, 코미디, 예능, 다큐, 뉴스 등 PD의 영역 또한 다양합니다. 저는 처음엔 막연히 영상에 대한 매력과 영향력의 파급에 놀라워하며 PD를 꿈꾸었지요. 대학을 졸업하며 방향을 정했고, ‘조연출’이라는 수련과정을 통해서 빨리 PD가 되고 싶었습니다. 특히 교양 다큐멘터리는 아이템과 내용을 취재하고 공부하면서 완성해가는 과정이 대학에서의 아카데미즘의 연장과도 같아서 기쁨이 컸었죠. 반면에 조연출의 과정은 주중의 시간과 주말의 시간 대부분을 제작에 쏟아야 했습니다. 방송 시간이 정해지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불철주야 개인생활이 없이 집중과 몰입해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조연출이라면 연출자보다도 더 세심하게 챙기고 서두르고 깨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야 했지요.


  어쨌든 어렵게 2-3년의 수련이 지나면 드디어 입봉을 해서 조연출에서 ‘연출자’로 신분이 바뀝니다. 연출자가 되었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죠. 이때부터는 자기 프로그램의 완결성과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 또한 경쟁사에 대한 우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시청자들의 입에서 반응이 회자되기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실제로 우리의 영유아 보육과 교육에 대한 현주소를 미국, 일본, 프랑스 등과 견주며 사회복지의 취약성과 방향성을 제시했을 때, 우리 사회가 서서히 변화 발전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흐뭇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TV에서 공들여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방송이 되더라도 모두 시청이 불가능한 사각 시간대에 보여줍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너무나 간단합니다. 방송사는 본래 돈이 없습니다. 방송사는 시청자들의 방송 습관을 형성해서, 그 시간에는 세상 없어도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혀야만 하고, 그래야 광고주들의 관심을 얻게 되는 거죠. 시청률을 높게 가져가야만 타 방송사보다 높은 값에 대기업의 광고를 사이 시간에 유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요즘은 방송의 소비형태가 바뀌어 굳이 그 시간에 TV에 모이지도 않을 뿐더러, 컴퓨터나 모바일로 자기가 보고 싶은 때에 콘텐츠를 즐깁니다. 이제는 지상파보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탈과 유튜브 및 모바일로 광고의 비중이 옮겨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종이 신문은 이미 매체력을 잃어가고 있고, 제한된 파이를 나눠야하는 지상파, 종편, 케이블, 위성 사이의 경쟁은 눈물겨운 현실입니다. 사실 광고로부터 자유롭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우라고 수신료를 거둬서 공영방송 KBS와 EBS에 지급하지만, 이건 얼마 되지 않는 돈이죠.

 
  우리가 아직도 자연다큐멘터리 등을 BBC에서 수입해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자본력의 차이에서 생긴 겁니다. 영국은 상당한 양의 돈을 수신료로 거둬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PD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사회를 밝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다큐프라임’등 수많은 주옥같은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이끄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자본은 쇼와 오락과 스포츠와 트렌디 드라마 속의 소비욕망을 조장하며 상업성의 관철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신입 PD의 비극적 선택은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성 안으로 들어온 젊은이는 성 밖의 사람들을 부려서 자본이 정한 시간 안에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해 독해져야만 했을 겁니다. 스텝들의 잠도 덜 재워가며 제작에 몰아가야하고, 외주 인력을 냉철하게 관리하고 잘라내야만 하는, ‘갑’으로서 ‘을’을 막 대할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 지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런 현실에 순응하기에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정의롭고 순수한 사랑과 꿈을 지닌 청년이었을까요?


  성 안에 서 있는 자는 겸허한 성실과 사랑이 있어야하고, 성 밖에 있는 자에게는 성에 들어갈 기회와 통로가 언제든지 열려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PD란 직업을 떠나서, 저는 잠시동안의 성찰이라도 분주함보다 유익하다고 믿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디에 서 있건 어떠한 흐름과 요동에도 견고할 수 있는 중심과 깊이가 있고, 시대를 통찰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프린랜서 PD 이준구
ejungu@hanmail.net
010-7759-5817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3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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