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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공원에서의 독백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7. 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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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그리며]

묘지공원에서의 독백

 

  부모님을 LA 외곽 Glendale의 묘지공원인 Forest Lawn Memorial Park에 모셨습니다. 양지 바른 자리에 계신 저의 부모님 묘 잔디에 앉으면 앞 시야가 탁 트인 채 멀리 산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지요.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가끔 이곳에 오자 하셔서, 모시고 오면 전망이 좋다고 흡족해 하셨지요. 부모님께서 모셔질 산소자리는 공원 내 도로에서 경사가 있는 언덕바지여서 어머님께서는 힘들다고 차 안에 계시곤 했습니다. 차에서 묘 자리까지는 제법 가파른 잔디를 몇 십 미터 올라가야 하는데, 어머님께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묘지공원은 온통 펀펀한 잔디에 관이 묻힐 공간 위주의 현판만이 일정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어, 부모님 묘소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무덤을 밟고 가로질러 갈 수 밖에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고인들의 이름과 생애의 시작과 끝의 날짜가 새겨져 있는 현판은 절대 밟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신 사람들 위를 딛고 가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게 되어 있는 이곳 묘지공원의 구조입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해에 어머님께서는 휠체어에 타실만큼 거동이 불편하셔서 하관식 때 여럿이 어머님을 태운 휠체어를 들어 묘지 옆 큰 소나무 밑의 약간 편편한 곳에 모셔 진행했지요. 그래도 어머님이 원하셔서 여럿의 부축으로 올라오셔서 하관되는 관 위에 꽃 한 송이를 얹으셨습니다. 그리고 일 년 후 어머님께서도 아버님 곁으로 가셨는데, 부모님 계신 이곳을 찾을 때마다 묘지 잔디에 앉으셔서 전망이 좋다고 말씀하시던 아버님과 소나무 밑 휠체어에서 아버님과의 마지막 이별을 꼼꼼히 바라보시던 어머님 모습을 떠올리며 아련한 그리움을 삼킵니다.

 

  저희 부부는 추석이나 설 같은 특별한 날 말고도 가끔 부모님을 뵈러 옵니다. 어떤 때는 저 혼자 오기도 합니다. 혼자 오면 오래 앉아 있다 갑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 생전 기억을 맘껏 더듬다가, 아무 때고 궁둥이 털고 일어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내가 챙기며 성묘 가자하여, 따라 나설 때도 많습니다만 그 때마다 저는 속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80년대에 오클라호마에서 모시던 부모님께서 한인들도 별로 없고 대중교통수단도 전무한 그곳의 몇 해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기에, 가시는 길에 LA에서 잠시 살아 보시라고 LA의 한인타운 근방의 노인아파트를 마련해 드렸지요. 그런데 많은 한국인 이웃 노인들과 정이 들어 그곳에서 십 년 넘게 사셨습니다. 불효하게도 저는 해외 출장 중이어서 부모님의 임종을 보지못해 돌아가신 후에야 황망히 달려오곤 했었는데, 아내는 제 몫까지 다 해내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에 있는 큰 아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둘째, 그리고 오크랜드에 사는 셋째, 이렇게 온 가족이 저희가 사는 LA 남쪽 오렌지카운티에 모이면, 아버님 어머님 뵈러 이곳 공원묘지를 필히 들릅니다. 그 옛날 오클라호마에 함께 사실 때 가족이 공원에 나들이 가면 당신께서는 두세 살짜리 손주 소변보는 연습시키시겠다고 종이컵을 들고 쫓아다니셨지요. 그런데 이제 그 아이들이 사십이 되었고 그 동안 태어난 일곱 명의 증손들을 이곳 공원묘지에서 모두 만나 보셨습니다. 오렌지카운티 저희 집에서 차 두 대를 꽉 채우고 식구가 모두 이곳에 도착하면, 당신의 증손주들은 뛰어 올라가고 당신의 손주들은 나름대로 활기 있게 걸어가는 중에, 당신의 아들과 며느리는 숨 고르며 천천히 올라가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곧잘 저 아래 묘지공원 내 도로에 주차 해 놓은 차 안에 앉으셔서 힘겹게 오르시는 아버님께 찬찬히 눈길만을 드리시던 생전의 어머님을 생각 하곤 합니다.

 

  부모님을 이곳에 모신 후 같은 묘지공원 내 좀 떨어진 곳에 저와 아내의 묘 자리도 사놓은 게 있어 성묘간 김에 식구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어쩐지 어색한 반응에다 그것을 보여주는 저 자신도 청승맞은 것 같아 후회하였습니다. 자기의 묘 자리는 자기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묘지공원은 말 그대로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늘 깨끗하고 정숙합니다. 거의 일 년 내내 가을 날씨인 이곳의 청명한 하늘 아래 잔디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가운데 성묘 온 가족들이 듬성듬성 보이지요. 저에게는 요상한 상념이 늘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버님 사신 만큼은 살다 가겠지 하는 막연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지곤 합니다. 그 이상 산다면 덤이며 그 이하면 제가 뭔가 잘못 산 탓으로 돌려야 될 것 같은 괜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죽을 고비를 몇 번 겪습니다. 더러는 기억나는 고비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고비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제 명을 다하고 죽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맥도널드에서 80센트짜리 노인 우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우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 사람이 지구 반대편 묘지공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이제 자신이 묻힐 곳마저 이곳에 정해 놓은 채, 미국 사람으로 태어난 2세와 3세들을 어우르며 산다는 게 어찌 보면 쉽지 않습니다. 땅도 넓고 관습도 다른 미국에서 한국식 산소와 성묘의 틀에 익숙해 있는 이민 1세가 LA의 묘지공원에 모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가지게 되는 미래의 막연한 상실감은 어쩔 수 없는 이민 1세의 곤혹스런 독백이 아닌가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문병길 드림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3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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