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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최초의 불법복제 곡은?

2022년 5월호(15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6. 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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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5]

클래식 최초의 불법복제 곡은?

 

휴일엔 밀린 전시를 몰아보기도 하지만 사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을 읽거나 한가롭게 집에서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몰아보기도 한다. 며칠 전,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했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았다. 평소 좀비물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가 왜 인기였는지 궁금해서 뒤늦게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리즈 중간쯤에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생존자들이 좀비들을 음악실로 유인하려고 음악을 트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나온 음악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그렇듯이 종교음악에 기원이 있는 곡인데 기독교에서 예수가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만 불리는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라는 곡이다. 이 곡은 1638년 교황청 소속 작곡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시편 51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그 뜻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지금도 ‘미제레레’는 화려한 궁정 음악이나 정교회 음악과는 차별화된 곡으로 성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성에서 12성 합창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는 마치 관현악단에서 서로 대결하는 악기군 같이 화음이 배열되어 있다. 성가대가 알레그리의‘미제레레’를 부르고 노래가 고조될수록 제단을 밝히던 촛불을 하나씩 끈다. 성 금요일의 예배가 끝날 때쯤엔 재단 양쪽에 위치한 마지막 촛불도 꺼져서 완전한 어둠으로 마치게끔 전례가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 곡이 세상에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 재위)는 이 성가를 봉인곡으로 지정하여 오로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부를 수 있게 하였고 그것도 부활절 직전 일주일인 성주간, 혹은 고난주간에만 부를 수 있도록 제한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악보가 유출되는 것을 금지하여 성가대원들에게도 파트보만 나눠주고 연주가 끝나면 모두 회수했다. 이렇게 이 곡을 금지한 이유는 ‘미제레레’가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여서 신을 잊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노래를 듣기 위해 성당을 찾기도 했다. 교황청의 봉인조치로 일 년에 한 번 연주되는 이 음악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바티칸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132년간 봉인되었던 이 곡은 모차르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769년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와 모차르트가 이탈리아 여행을 나섰는데 고난주간에 이 곡의 아름다움에 취해 노래를 듣던 천재음악가 모차르트는 들은 것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적었고 숙소로 돌아와 필사본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악보를 맞게 적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틀 뒤 시스티나 성당을 다시 찾았다. 모차르트는 성가대원에게 152마디를 다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곡이 유출될까 염려되었던 성가대원은 일부러 틀린 음으로 불러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린 모차르트는 이렇게 지적했다. “그 부분은 si가 아니라 sol로 부르셔야죠!” 로마 교황청은 발칵 뒤집혔고 교황청의 금기를 깬 죄로 어린 모차르트가 끌려왔다.
바티칸에서는 이 작품을 몰래 밖으로 유출시킨 14세 소년에게 그에 상응하는 큰 형벌을 내려야 마땅하였지만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처벌 대신 모차르트의 천재적 기억력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 하여 감탄하며 황금박차 기사단 훈장을 수여하였다. 그 후로 ‘미제레레’는 모차르트 불법 복제 사건을 기점으로 봉인에서 벗어나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인류의 역사는 용감하게 행동한 자, 시대를 앞서간 자, 인류를 위해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 자들에 의해 움직여지곤 한다. 좀비들을 피해 생사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삽입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상징하는 ‘미제레레’ 음악을 듣노라니 유혈이 낭자하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했던 이 시리즈가 메타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느껴졌다. 
좀비극을 보다가 뒷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클래식을 듣다가 모차르트까지 떠올린 휴일 오후였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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