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영의 시로 보는 마음 1]
저는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늘 똑같은 대답을 해요. “저의 꿈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요. 저는 어릴 적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어요. 좀 특이했던 점은 엄마가 형편이 되면 엄마랑 살고 아빠가 형편이 되면 아빠랑 사는 한 부모 가정이었어요. 경제적인 문제와 서로의 성격차이, 서로가 용서할 수 없었던 부분 때문에 저희 부모님은 함께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가 안전한 그늘이 되어주지 못할 때 아이는 아이다움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어른이 되는 가 봅니다. 저도 일찍부터 어른의 역할을 하느라 잃어버린 것들이 참 많은데 그 중 가장 마음 아픈 상실은 슬플 때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에요. 어느 날 엄마가 저와 제 여동생을 세워놓고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없을 거야. 당분간, 둘이 의지하고 서로 잘 돌봐주며 지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이처럼 떼를 쓰며 울어야 했는데 울지 않았습니다. “알겠어 엄마”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날 하교를 한 후 저는 엄마의 옷 냄새를 맡으며 훌쩍였습니다. 엄마의 냄새가 잊혀질 까봐 두려웠지만 동생에게 내색하지 않았어요. 저는 씩씩한 언니여야 했으니까요.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슬픈 상실의 기억입니다. 그때의 마음을 담은 시가 ‘사랑의 순례자’예요.
당신이 떠나버린 걸 안 뒤
나는 제일 먼저
어머니께서 남기고 간
체취를 더듬으며 당신의 옷에
코를 묻었습니다
그날은 하교를 하고 난
오후였지요
햇살이 어머니 주무셨던
방을 지나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주방
깊은 곳까지 낮게낮게
깔리었던 그날의 오후는
마냥 슬퍼야 했는데
적막한 수면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황홀함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슬픔보다 더 지독한 상실의
파촉 삼만 리 같은 임종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저는 아주 오랜 시간 후에 깨닫게 되었어요
부질없는 눈물을
삼키는 법을
아주 일찍부터 배워버린 나는
아무리 갈망해도 손에 쥘 수 없는
행복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채우려 해도 마음에는
실금들이 많아
차가운 바람이 스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하지만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행복을 손에 쥐지 않아도
행복한 법을
금이 간 마음에 스며드는
찬바람과 친해지는 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련한 것들은
모두 빈약한 사랑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그것으로 인해
사랑의 순례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잃어버린 슬픔을 찾게 된 거에요. 슬픔보다 더 슬픈 것은 슬퍼할 일에 슬퍼지지 않는 거란 걸, 슬픔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어요. 자신이 겪은 너무나 아픈 상처의 경험에서조차도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무덤덤함은 너무 큰 비극이지요. 저는 시를 통해 제 슬픔을 되찾았답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열했고 그때 울었어야 했던 울음을 소유할 수 있었어요. 슬픔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된 것이죠. 슬픔을 소유한다는 것은 가치 있고 귀한 일입니다. 이 시를 쓰고 나자 마음에 묶여있던 굵은 매듭이 탁 풀어지는 것처럼 시원했고 정화된 슬픔이 제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선영 시인
• 한국문인 등단
• 율목문학상 등 시부문 수상
• 치유시집《주와》《시로쉼표》
• 시치료전문가
연락처
@juwa_therapist
주와독서심리코칭연구소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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