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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추억, 사람을 기억하다

2022년 7월호(15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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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추억, 사람을 기억하다       

 

캄보디아 출장에 대한 추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고 생생하다.
신선한 경험과 깊은 인상을 몸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탓인데, 2012년은 1년 내내 코이카의 아시아지역 지원실태를 기록하기 위해 대륙 전역을 돌아다녔다. 영상 피디 2명과 카메라 감독, 사진작가, 현지 코디들을 수반한 촬영이라 스텝들이 많았다. 10여 개국을 다녀야 하는 일정의 첫 발을 내디딘 나라가 바로 캄보디아여서 특별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프놈펜에서 묵을 숙소와 시아누크빌의 호텔은 서울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기에 바우처만 챙기면 됐고, 공항에서의 픽업과 가이드 및 운전사 역시 컨택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대개는 영상 제작사에서 연출진이 이런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 촬영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코이카의 프로젝트를 큰 기획사가 맡아 주관하면서 나는 영상으로 5분 내외의 보고물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즉 영상제작 외의 숙박과 식사, 코디, 차량 렌털, 일정 짜는 것 등에 관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식재료를 사서 씻고 다듬어서 준비하는 과정이 힘든 거지 넣고 끓이는 과정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아무튼 부담이 덜한 첫 출장지인 캄보디아에 도착하니, 1월 한 겨울의 엄동설한에 동동 싸매어지고 굳어 있었던 몸이 한 여름의 습한 무더위에 노출되었다. 겨울 추위에 경직되었던 세포들이 한낮의 태양에 흐믈흐믈 무장해제당하기 시작했다. 동태가 해동되어 해롱해롱거리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지 가이드와 드라이버의 마중으로 어려움 없이 숙소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프놈펜의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 순간 외마디 탄성이 튀어나왔다.
‘와 이렇게 넓고 멋진 공간을 혼자서 사용하다니’ 촬영팀과 사진가 4명이 각각 방 하나씩을 배정받고 환호성을 질렀다. 촬영 다니면서 이런 호사?를 누려보지 못했기에 다소 생경하고 얼떨떨했다. 두 명이 한 방을 사용한다 해도 룸은 충분히 크고 넉넉했다. 더구나 금방이라도 웃통을 벗고 들어가도 될 풀장이 로비 옆에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럴 줄 알았다면 수영복이라도 챙겨 오는 건데… 해외 출장은 매번 일에 쫓겨서 풀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실현해보지 못한 환상과도 같았다. 도착한 날 저녁은 갑작스러운 더위에 지쳐, 이름난 음식점이란 곳엘 갔어도 맛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런 멋진 방에서 혼자 잠들어도 되는지 서로가 의아해하면서 아침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실은 간밤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여성 코이카 봉사단원이 있었는데, 우리가 묵는 방 하나를 내주고 잘 재워서 아침에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초면에 과잉 친절일까 싶어서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타지에서 고생하며 봉사하는 이에 대한 애틋함이었다. 푹신한 침대의 쿠션이 온몸의 피로감을 말끔하게 흡수해 준 듯한 상쾌함으로 눈을 떠 조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향내에 군침이 일었다.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쌀국수를 시작으로 신선한 열대 과일과 야채, 치즈와 고기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아침 조식이 아니라 저녁 디너와 같은 차림에 한없이 행복한 아침을 들었고, 본격적인 프놈펜 촬영에 들어갔다.

 

메콩강의 해상 가옥과 아이들1


가이드와 드라이버
우리 일정을 전적으로 리드한 것은 캄보디아 현지 가이드 A였다. 통통한 체격에 안경을 눌러쓴 중년의 그는 자신이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소개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는 두 가지의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방학 때라 시간이 나서 그런 건지 좀 의아해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단지 그가 데려가는 식당과 식사가 가격에 비해 늘 탐탁지 않았다. 동남아의 물가가 우리에겐 큰 부담이 아니라서 입맛에 맞는 식당으로 안내하면 되는 것을, 그는 이것을 잘 못했다. 마치 자신과 커넥션이 있는 식당으로 사람을 데려 가서 가격도 뻥튀기해서 속이고 그 커미션을 받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메뉴판은 외국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기한 음식 사진이나 달러화 표시가 없어서 난해했다. 우리나라가 밟았던 20~30년 전의 과거 풍경과 문화가 이곳에서 너무도 흡사하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유추 가능한 의심이었다. 게다가 현지에 코이카 봉사대원으로 나와 있던 분의 안내로 간 음식점은 가격도 저렴했지만 맛과 양이 너무도 만족스러워 대조적이었다. 반면, 우리를 태우는 운송회사 소속의 기사 ‘섹삭’은 성실하고 젠틀한 청년이었다. 그리 능숙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소통도 잘하고 눈에서 풍기는 진실함에 신뢰가 가는 친구였다. 요구하지 않아도 촬영팀의 무거운 짐을 자연스럽게 이고 지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메콩강의 해상 가옥과 아이들2


캄보디아 방문의 목적
우리가 캄보디아에 온 이유는 코이카가 WHO에 지원하는 보건사업의 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양광 시설을 현지인들이 잘 활용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었다. 프놈펜 도심으로는 메콩강이 유유히 흘러 주민들의 생활식수로 공급된다. 하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물을 얻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모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를 실제로 확인하게 된 순간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빗물을 모으는 집수시설의 종착지에는 커다란 빗물 저장 항아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 마련된 항아리의 모아진 물은 수질도 문제이지만, 이 웅덩이에서 모기의 유충이 자라서 뎅기열과 수인성 질병을 일으키는 온상이 된다는 점이다. 풍부한 물을 확보하고 수질을 유지하는 것이 주민건강의 1순위인데 늘 이것이 어려운 문제다. 메콩강 주변엔 폐수를 쏟아내는 공장도 많았는데, 비용상 여과 장치를 갖추지 못해서 우리나라의 기술이전과 관리 등의 노하우가 절실해 보였다. 뎅기열과 수인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찾아 병원과 연구소 공장 등을 취재하고 나서 세계 보건기구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러 캄보디아 내 WHO 사무국으로 이동했다. 마당에는 UN의 마크가 찍힌 SUV 차량이 즐비했고 국제기구 특유의 서양식 건물이 멋지게 서 있었다. 

이윽고 맞이한 실무 책임자 두 분
한 분은 서양인 남성이었고 다른 한 분은 아시안이었다. 세련된 모습이 한눈에 봐도 한국인 같아 보였다. 그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계시는 여성 박사님을 뵙게 된 것이다. 마음 한 켠으로 뿌듯하고 반가웠다. 가능하시면 인터뷰도 영어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정현미 박사님은 수질 관련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피력해 주셨다. 인터뷰도 깔끔하게 마쳤다. 한국에 돌아와서 편집을 마치고 박사님께 한 번 연락드려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질 않았다. 시간이 흘러 구글로 찾아보니 국립환경과학원으로 복귀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라도 함 연락드리고 싶은 분이다. 어려운 이들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 당당하게 지구촌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프놈펜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캄보디아의 남부 도시 시아누크빌로 이동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안가 남단 꺼슬라 마을로 향하는 풍경은 진흙 색 황토가 태양빛에 반짝이는 농촌의 목가적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다. 개발이 더딘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물과 전력의 문제다. 한국은 상의 군인들이 모여 사는 꺼슬라 마을에 태양광 시설을 지어서 주민들의 밤을 밝혀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세탁기를 돌리고 TV 시청을 가능케 해준다는 것은 문화와 문명을 선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양광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을 공급하니 학교나 가정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확인한다. 특히 현지 초등학교를 촬영할 때 그곳에서 미술교육으로 봉사 중인 김민정 봉사단원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예술적 본능을 일깨우며 다양한 미술도구와 용품을 사용해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이들도 무척이나 친근하게 외국인 선생님을 잘 따르며 어울렸다. 그랬던 김 선생님은 우리 촬영팀이 캄보디아를 떠날 때 많이 섭섭해 하며 아쉬워했다. 헤어질 때 봉사단원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해서 만나자 했는데, 실제로 약속을 지켰고 추억을 곱씹게 되는 대화도 나누었다. 지금은 장애인들의 예술적 재능을 한층 끄집어내서 그들이 작가로 성장하고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함께 현장을 돌아다니며 통역으로 수고했던 코이카 직원 ‘그레’씨는 가정을 꾸려 아름다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10여 년 전의 사진을 대하니 시간은 한순간이란 걸 깨닫는다. 기억은 남겨지고 사람의 관계는 형성되며 인생은 지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그때 등불 앞에서 밤을 밝히며 공부하던 소녀는 이제 숙녀로 변해있을 것이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제클린이 묵었다는 바닷가의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저녁 무렵에 나간 휴양지 해변에는 현지 동양인은 보이지 않고 온통 서양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 일행도 야경을 즐기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맥주 하나씩을 주문했는데 해변가 주위론 통통하게 구운 반건조 오징어를 구워서 파는 행상들이 다녔다. 눈밖에 났었던 현지 가이드가 그간 미안한 점이 있었던지 자신의 돈으로 오징어 몇 마리를 사 왔다. 그 밤에 철썩이는 바닷가 파도 소리에 취하고 거대한 바다의 포용성에 마음이 풀리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가이드의 모습에서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애쓰는 가장의 모습 같은 것을 보았다. 
주홍빛 노을이 깊은 어둠 속에 잠길 때까지 나의 시선은 바다를 벗어날 수 없었다. 

 

 

CMC프로덕션 제작이사/PD 이준구
ejungu@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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