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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흥례문의 숨기고 싶은 비밀

2022년 7월호(15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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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1]

 

광화문과 흥례문의 숨기고 싶은 비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교화의 빛이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교화(敎化)()’는 물론 유교를 말한다. 유교 성리학을 이념으로 내세워 건국한 조선이란 나라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경복궁이란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고 광화문이란 이름은 세종 때 지어졌다. 경복은 큰 복이란 뜻이다. 광화문을 지나 만나는 문이 흥례문이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이 나오고 그 안을 들어가면 경복궁을 대표하는 건물인 근정전이 나타난다. 흥례문은 잘 모르는 문이지만 광화문 못지않게 웅장한 문이다. 우리가 경복궁에 들어갈 때 표를 내고 들어가는 문이다. 흥례문도 유교 국가에 어울리는 문 이름이다. 예를 흥하게 한다는 뜻이다. 유교에서 내세우는 덕목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이 있는데 이를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에 빗대기도 한다. 동은 인(), 서는 의(), 남은 예(), 북은 지(), 중앙은 신()이다. 그래서 도성의 동쪽 문이 흥인지문이 되고 경복궁의 두 번째 남쪽 문은 흥례문이 되었다.

 

흥례문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탈 때 광화문과 흥례문도 운명을 같이 했다. 불탄 경복궁은 몇 백 년이 지나서야 흥선대원군(1820~1898)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때 광화문과 흥례문도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후 경복궁은 하나 둘 허물어졌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기 위해 흥례문이 헐렸고, 청사가 완공되자 광화문도 헐릴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한 사라져 가는 조선의 건축물을 위하여란 글이 반향을 일으켜 헐리는 대신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 살아남았다. 하지만 기구한 운명이었는지 해방 후 한국전쟁 때 목조 부분은 폭격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때 광화문의 남쪽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이때 광화문 현판은 한자가 아닌 한글로 바뀌었다. 지금은 다시 한자로 바뀌었다. 한쪽에선 여전히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꿔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경복궁은 조선의 궁궐이고 그때 한자로 현판을 썼으니 복원할 때도 한자로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 광화문이 처음부터 있던 문이 아니고 20세기에 새로 지은 문이고 우리 한글을 알린다는 측면에서 한글로 현판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옛 조선을 대표하는 경복궁이 이제 21세기 새로운 한국의 경복궁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996년 조선총독부가 폭파되어 헐리고 그 자리에 있던 흥례문도 2001년 복원되었다. 2001년 당시 내가 흥례문 복원에 참여했다면 흥례문(興禮門) 현판에 문제 제기를 했을 것이다. 현판을 한글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례문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 같다. 세종 때 이름은 흥례문이 아니라 홍례문(弘禮門)이었다. ‘홍례는 널리 예를 펼친다는 뜻이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옛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흥례문으로 바꿔 달았다. 왜 그랬을까.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5~1796)의 이름이 홍력(弘曆)이었다. 흥선대원군은 건륭제의 이름 을 피하여 홍을 흥으로 바꾸었다. 높은 사람의 이름에 쓰인 한자를 쓰지 않는 것이 당시 예법이었다. 이를 피휘(避諱)라고 한다. 경복궁을 처음 세울 때는 중국 명나라를 사대로 모셨고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중국 청나라를 사대로 모셨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청나라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홍례문을 흥례문으로 바꾸었다. 그렇다고 흥선대원군을 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는 그 시대의 논리에 맞게 행동했다.

 

아쉬움은 2001년이다. 흥선대원군이 세운 흥례문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모르겠는데 흥례문이 일제에 의해 헐리고 다시 그 문을 우리 손으로 복원한 다음에 현판을 달 바에는 흥례문이 아닌 홍례문으로 현판을 달았어야 했다.

 

건물을 짓고 건물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그 시대의 사대에 맞게 홍례문을 흥례문으로 바꾸는 것은 괜찮고, 광화문을 말 그대로 새로 지으면서 21세기 한글 시대에 맞게 한글 현판을 달자고 하는 데는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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