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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빠져마음껏 헤엄치며 세상을 매료시킨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2022년 7월호(15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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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빠져
마음껏 헤엄치며 세상을 매료시킨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19세기 초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은 잠자고 있던 바흐(1685~1750)의 오라토리오 ‘마태 수난곡’(BWV 244)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마태 수난곡’이멘델스존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후, 바흐의 작품 전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게 되었죠. 그로부터 100년이 넘게 흐른 1955년, 캐나다의 23살 젊은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작품 하나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바흐의 작품번호(BWV) 988번, 우리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변주곡인데, 원래는 ‘2단 건반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클라비어 연습곡’이라는 긴 제목의 곡입니다. 대위법으로 치밀하고 복잡하게 구성된 이 변주곡은 그 때까지만 해도 연주자들에게나 청중에게나 무미건조한 톤의 매력 없는 작품으로 여겨져 잘 연주되지 않고 있었죠. 하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이 곡은 수많은 청중의 귀와 마음까지 사로잡는 위대한 곡으로 탈바꿈하게 되니, 바로 음악 못지않은 특이한 행동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입니다.

 



굴드는 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사랑했을까?,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까?
 1955년에 녹음된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출시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이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음악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굴드에게 이 곡은 단순히 연주자로서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내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한 정도의 가치만을 가진 작품이 아닙니다. 그는 한 번 녹음한 작품은 다시는 음반으로 내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고 그가 죽기 바로 전해(1981)에 이 변주곡을 다시 녹음해 발표합니다. 어찌 보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음악세계의 시작과 끝을 화려하고 극적으로 장식하고 있는, 더 나아가 그의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고 말할 정도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의 무덤 석판에는 이곡의 아리아, 첫 소절의 피아노 선율이 조각되어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렌 굴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그렇게 사랑했으며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로, 가족적 배경 속에서 어머니, 플로렌스 그레이그(1891~1975)의 영향이 컸습니다. 
굴드는 어려서부터 아니, 뱃속에서부터 그의 생애에 걸쳐 단 2명의 피아노 선생님 중 하나인, 습관성 유산으로 마흔이 넘어 얻은 귀한 늦둥이 외동아들을 유명한 음악가, 그 중에서도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었던 엄마로부터 바흐의 음악을 소개 받았습니다. 철저한 기독교 신자이며, 완고한 도덕주의자로서 늘 원칙과 질서를 강조했던 그녀의 성격상,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이며 많은 교회음악을 만든 바흐의 음악은 아들에게 소개하기에 가장 이상적이고 안전한 것이었을 테지요. 여기에 한 가지 더 재미있게 생각해 볼 수 있은 굴드가 9살 전까지 ‘굴드’가 아닌 ‘골드’라는 성(姓)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모피업에 종사하는 가운데 유대인으로 오해 받는 것을(같은 업종에서 골드라는 이름을 사용 하는 유대인들이 많았음) 극도로 싫어한 할아버지의 성화에(그래서 더 의심이 되지만) 성이 골드에서 굴드로 바뀐 것이지요. 그러기에 ‘골드’라는 근사한 성을 가졌던 굴드가 변주곡의 제목에 있는 ‘골드’라는 단어와 어느 정도 자기를 일치시키고 관심을 가졌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굴드 자신도 이 변주곡에 자신의 성을 넣어 ‘굴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으니까요.

둘째로, 굴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육체적, 정신적 특징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굴드는 왼손잡이였는데, 피아노 연주에서 반주역할 하는 왼손을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은 바흐의 대위법 곡들에서는 오른손과 대등한 역할을 할 수 있었기에 그가 더욱 매력을 느꼈을 것입니다. 2)이런 좌우의 손을 고르게 사용함에 더하여 이 곡은 특별한 음악적 지시부호가 없기에 빠르기와 강약 등을 연주자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함은 고지식한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과 동시에 엄마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갈망이 뒤섞인 가운데, 저항적이며 특별하기를 갈망했던 굴드에게 그야말로 바다에 던져진 물고기 같은 해석적 자유를 선사했을 것입니다. 3)그러나 무엇보다도 굴드는 음악을 가슴으로 느끼는 방식이 아니라, 지성을 발휘해 파고들어 구조와 흐름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작곡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어머니 뿐 아니라, 그의 두 번째 피아노 스승이었던 알베르트 게레로(1886~1959)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것으로, 굴드는 스승들과 곡의 해석에 있어서 끝없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복잡하지만 철저히 수학적인 대위법을 사용할 뿐 아니라, 전체 구조에 있어서도 3번째 곡마다 캐논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서 전반부 15곡과 후반부 15곡에 앞뒤의 아리아 2개로 잘 짜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야 말로 이러한 지성적 이해를 추구하는 굴드에게 딱 맞는 곡이 아닐 수 없었지요. 이런 가운데 굴드는 이 변주곡을 깊이 이해하고, 이전에 통상 한 시간이 넘게 연주되던 이 변주곡의 시간을 40분으로 단축시킨, 대위법으로 겹겹이 쌓여진 음들을 단조롭게 연주되던 이 곡에 조각하듯 입체감을 불어넣어 세상이 깜짝 놀랄 새로운 연주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죠. 


세 번째로, 방향을 바꿔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자체가 굴드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흐가 작곡한 수많은 곡들은 그 목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제목부터가 특이한 ‘커피칸타타’(BWV211)와 같이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곡들, 두 번째는 피아노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BWV846~893)과 같이 음악 자체의 즐거움과 발전을 위한 곡들, 마지막은 ‘마태수난곡’과 같이 종교적 목적을 위해 작곡된 곡들입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표면적으로 두 번째 부류에 넣을 수 있는데, 30개의 변주를 통해 건반악기를 어떻게 연주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실험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이곡이 단지 음악적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카이저링크 선제후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맞다면, 굳이 바흐에게 늘 따라다니는 종교적인 힘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곡이 정신을 맑게 해주고 심적인 위로와 새로운 힘을 주는 곡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여러 부정적인 영향 속에 늘 심리적으로 평상 어려움을 겪었던 굴드가 사춘기부터 이 변주곡에 푹 빠진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어쩌면 그가 수많은 정신적, 육체적 약점들 속에서 그토록 찾았던 어머니의 자궁 같은 안정감을 이 곡에서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굴드는 바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만약 내가 여생을 무인도에서 보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어떤 작곡가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해야 한다면, 그 작곡가는 거의 틀림없이 바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매우 깊고 일관성 있게 감동시키고… 그것의 모든 기술과 탁월함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것, 즉 그것은 인간애적이다."

바흐가 일생을 음악뿐 아니라 삶의 치열한 투쟁(그가 아내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자녀를 질병으로 잃었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직장을 찾아다니고, 엄청난 양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가운데 싸웠던) 속에 살아가며 만든 이 작품을, 외동아들로서 엄마의 지나친 보호 속에 삶의 치열한 현장을 음악으로 도피하며 지극히 자기중심으로 살았던 글렌 굴드가 얼마만큼 이해하고 해석하여 연주했을까는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가 해석하고 연주한 바흐의 곡을 들으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굴드가 가진 수많은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완벽주의자로서 치열하게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했던 노력과 더불어, 바흐의 음악 속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었던 그 자취를 연주에 고스란히 담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당장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1981년 녹음을 추천합니다.  아래 링크) 부분을 찾아 조용히 들어보신다면 여러분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글렌 굴드, 1981년 녹음)


어메이징 스페이스 대표 고종훈
dyl815@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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