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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2022년 7월호(15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2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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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몇 년 전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지방대 시간강사인 83년생 김민섭 작가는 문득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특가로 올라온 후쿠오카행 비행기표를 7만 3천원에 구매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잠깐동안은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행을 열흘 앞두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하필 수술날짜가 후쿠오카로 떠나는 전날이었다. 김민섭 씨는 환불이 가능한지 문의해 보았지만 할인티켓이었기 때문에 1만 8천원밖에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돈을 돌려받느니 누군가 대신 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항공사에 문의해 보니 기본조건이 대한민국 남자이어야 하고, 양도 받을 사람의 이름이 '김민섭'이어야 하고 여권의 영문 철자가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김민섭 씨는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라고 올리게 되었다. 몇 백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어떤 사람은 한 끗 차이로 한글 이름이 달라서 개명이라도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영어철자가 살짝 달라서 안타깝다, 친구가 김민섭인데 알려줘야겠다는 등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갔다. 며칠이 지났을 때 정말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가 왔다. ‘저는 스물다섯 93년생이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졸업 전시 비용이 부족해서 지금은 휴학하고 있다.’
드디어 김민섭을 찾았고 83년생 김민섭씨는 이젠 누군가에게 자기가 가지 못한 항공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83년생 김민섭이 93년생 김민섭에게 항공권을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민섭 프로젝트를 감동 깊게 보았고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숙박비 30만원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프로젝트는 이 고등학교 교사의 숙박비 지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쿠오카 시내버스 무제한 이용 1일 패스권 2장을 기꺼이 양도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어느 대기업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담당자는 ‘93년생 김민섭씨가 졸업전시 비용이 부족하여 휴학 중이라 들었는데 아마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이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이 청년이 여행을 잘 다녀와서 졸업전시까지 무사히 잘 치를 수 있다면 평범한 청년들이 여기에서 희망을 얻지 않겠나 싶어 졸업전시 비용을 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그러면서 83년생 김민섭씨가 올린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93년생 김민섭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로 발전시켜 보자고 제안했다. 여행을 3일 앞두고 펀딩 프로젝트가 개설되었고 2박3일 동안 270여명의 사람들이 270만원 정도를 모아 여행을 떠나는 93년생 김민섭씨를 응원하였다. 93년생 김민섭씨는 “정말 잘 다녀오겠다. 언젠가 저도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씨를 찾아서 아무 조건 없이 꼭 여행을 보내주고 싶다”며 후쿠오카로 떠났다.
나는 5년 전 진행되었던 이 프로젝트를 눈여겨 지켜보았었고 그때 펀딩에 아주 소소한 금액으로 참여했었다. 그 당시 나도 큰 수술을 받은 뒤라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활동할 수 있을지 막막한 때였다. 하지만 두 명의 김민섭으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고 희망을 발견하면서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그래서 세세하게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얼마 전 모 예능프로그램에 두 명의 김민섭이 출연한 것을 보고 그 당시가 떠올랐다. 


공자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덕목은 ‘너그러움’이라 했다. 너그러움을 체득하는 것이야 말로 덕을 완성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이 김민섭 프로젝트를 지켜보면서 인간의 본성 중에는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가 위대했던 것은 소소한 이야기로 나비효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누군가를 도와 해외여행 보내주었다가 아니라,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많은 삶들도 응원받아 마땅한 삶이라고 일깨워주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각자 스스로의 삶이 어려울수록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조금은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느끼려면 우리가 속한 거대해 보이고 상관없어 보이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고 그 힘이 모이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전해주고 싶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고 싶은 나만의 김민섭을 찾아보자.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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