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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호(15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9. 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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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3]

마음으로 보기

 

여행을 가면 꼭 그곳의 풍경이 담긴 그림을 삽니다. 20대에는 아껴야 하는 여행경비 때문에 엽서를 사곤 했죠. 직업을 가진 후에는 다른 비용을 줄이더라도 꼭 실제로 그린 그림을 사 왔습니다. 물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길거리 화가의 그림이죠.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액자에 담긴 그림을 보면 ‘잘 그렸다, 못 그렸다’에 대한 평가 없이 그때의 추억들이 떠오르며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04년도에 캐나다 여기저기를 여행했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림을 보고나서 쓴 일기를 발견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아래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오는 길에 지나다가 이 그림을 보았다. 한참을 서서 쳐다보았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멋지게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언제쯤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 


20대 초반의 저는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현실의 벽이 꽤 높았나 봅니다. 지금처럼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많은 관심을 갖기 전이라 누구의 작품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때의 일기를 보며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이 그림이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 1951~)의 ‘노래하는 집사’(The singing butler)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하는 집사’는 영국에 있는 그 어떤 그림보다 더 많은 엽서와 포스터로 나왔으며 가장 많이 팔리는 아트 프린트 상품 1위라고 합니다. 이렇게 유명한 그림일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의 그림과 다르게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지식을 알고 내 것으로 가지지 못하니 불편한 마음이 생겨 계속 자료를 찾다가


“나는 아방가르드가 뭔지, 그런 것은 잘 모른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스스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연출 한 게 내 그림이다. 그것은 도피처이자 노스탤지어다”라는 작가의 인터뷰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그동안 제가 가슴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보려고 한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림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제 생각과 감정보다는 그 그림에 대한 설명과 전문적인 해석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을 읽고 ‘아! 저 그림이 의미하는 게 이것이구나!’라는 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래야 ‘그림 좀 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도슨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너무 좋은 경험입니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가의 진짜 이야기 그리고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듣고 나면 모를 때 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가끔은 천천히 그림을 보며 나만의 해석과 감정을 느껴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림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나는 그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은지, 사용된 색 중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색은 어떤 것이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와의 대화가 필요한 순간들 말입니다.


 ‘오랑주리 박물관’을 찾아갔을 때 관람객들이 하나의 그림을 몇 시간이고 앉아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인상 깊었습니다.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때 봤던 모네의 수련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해주었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그 어떤 행동도 없이 제 마음을 그토록 평화롭게 해준 것은 그동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림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림을 찾게 되고 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나는 그림에 대해 잘 몰라’, ‘내가 느낀 대로 말하면 무식하다고 할 수 있어’, ‘내 생각이 맞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림이 나에게 주는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그림에서 꼭 이것을 봐야 하거나 느껴야 하는 것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차분하게 그림 그 자체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보이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나만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는 경험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끔은 이런 생각의 자유로움을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을 보는 이 순간에는 작가의 의도보다는 지금의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요. 

 

리네아스토리 대표 김민정, 조세화
lineastory.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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