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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를 통해 잃어버린 슬픔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2022년 7월호(15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9. 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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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영의 시로 보는 마음 2]

저는 시를 통해 
잃어버린 슬픔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른으로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 눈물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힘들고 서글퍼질 때도 있지요. 소유했어야 할 가장 근원적인 것들마저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박탈감이 분노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표현하는 게 참 어려워요.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도 그 마음을 받아줄 마땅한 자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쌓여가는 독소들은 나를 태우고 타인을 태우며 모든 심리적 환경과 관계를 잿빛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죠. 후에는 몸만 살아있지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고 느끼지 않는 무감각, 무감정으로 마음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픈 걸 말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슬픔을 되찾아 그 감정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입니다. 시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요. 시를 읽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는 시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입술을 건너간 이름》의 저자 문성해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 제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어요. 그 시에 쓰여 진 시어에 내 마음이 반응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어떤 구절에서는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읽혀진 마음들에 반응하는 과정이 시를 쓰는 과정이에요. 멋진 단어, 멋진 표현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 마음이 토해내는 단어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종이에 맡기는 겁니다. 그렇게 써내려 가다보면 그때 그 사건, 그때 내 마음을 만나게 돼요.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하고, 손으로 가슴을 치고 싶을 만큼 억울하기도 하고, 머리를 땅에 대고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오열하게도 되지요. 그렇게 잃어버린 슬픔을 만나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슬픔이 떠나가요. 조용히 나를 놓아줍니다. 어둡던 마음 한 켠이 환희 비춰지게 되면 이상하게 몸이 개운하고 마음에도 생기가 생겨나요.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거죠. 에너지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잖아요. 나쁜 에너지가 사라지는 만큼 좋은 에너지가 채워지는 거죠. 억압하느라, 부인하느라 썼던 고된 저항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얼마나 가벼워질까요? 마음이. 《생동》이란 시는 이런 마음들을 담아낸 시입니다. 

진정한 나다움이란 내가 가진 고유한 빛을 내는 삶이에요. 그 빛에는 아픔도, 상실도, 슬픔도, 고통도 재료가 되어야 해요. 그것도 나의 것으로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를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감정을 만나고 그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해방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삶이 저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생동

메마른 향내가 진동하네요
성냥개비 그으면
타닥타닥 불살라질 만큼

생명의 기운 가문 채
당신은 아주 오랫동안
여름 한낮을 견디고 있었군요

지난 가을
포도송이 댕글댕글 열리우고
복숭아 분홍빛 어리울 적에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 차례에요
당신의 시들해진 혈관을 따라
감동잃은 심장을 적시고
기대없는 입술에 물빛으로 스며들겠습니다

오는 가을엔
당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열매로 
빛나볼 거에요. 

슬픔을 소유한 당신은 슬픔을 공감하는 최고의 치유자랍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만 우산 하나 없이 차가운 비를 맞는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자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 내 존재를 사랑으로 품어줄 한 사람이 꼭 존재한다는 것. 그리하여 내가 살 가치가 있고 내가 태어난 순간이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는 것. 넝마 같던 인생의 조각들로도 기적 같은 보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저에게는 그런 기적이 있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걸려있던 작은 풀뿌리 같았던 저에게도 그런 기적이 있었어요. 

생애 반전은 누구에게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면서도 온전한 자기로 살지 못한 채 끌려다니며 이리저리 내쳐지는 심리적 환경을 소유한 사람도 잠재된 민들레 홀씨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소중한 인연이 꼭 찾아와주길 바랄게요.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소중한 인연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가 당신에게 작은 우산 하나 되어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가야

아가야
슬픈 밤이 시작되었단다

이제 모든 걸 잊고
널 위해 준비된
가장 따뜻한 언어 속으로 
아장아장 걸어오렴

널 비난하던 날선 언어들은
저기 서쪽하늘로
날아가고 있구나

견딜 수 없던 
불면의 밤은 
잠든 기억이 되고

부서진 날개는 
깊은 어둠의 수면 속에
놓아둔 채로

아가야 
슬픈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이제 모든 걸 버리고
널 위해 준비된
가장 따뜻한 기억 속으로
아장아장 걸어오렴.

 

전선영 시인
한국문인 등단/시치료전문가
율목문학상 등 시부문 수상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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