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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방향키를 돌고 돌리며…

2022년 11월호(15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2. 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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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방향키를 돌고 돌리며… 

 

얼마 전 100세 시대 관련 책을 읽다가 자신의 인생을 적어보라는 문구에 한번 정리를 해야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이렇게 일본에서‘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와 인터뷰를 하게 되니 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네요.

일본에 대한 관심
어렸을 때, 친척 중 할머니 한 분이 일본에 살고 계셨습니다. 일본에서 온 선물을 받곤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막연했지만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또 터울 있는 큰 오빠가 여행사에서 사진사로 근무하는 것을 보며, 나도 대학가면 일본어를 전공해 여행사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문 학원을 다니며 일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당시(1982년)만 해도 일본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아,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도 따가웠던지라 책을 보이지 않게 커버를 씌워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지금처럼 미디어 자료도 많지 않아, 일본 영화를 접하기 위해 일본문화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 혹시 간첩 아닌가?’ 남편을 만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중소기업의 금속기술 연구소에서 일본과의 기술협력을 위한 번역, 통역 업무를 했어요.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일 년 만에 그만 두고, 하고 싶었던 관광통역일을 하기 위해 여행사에 취업을 하고 약 8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지금의 일본인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되었죠. 회사의 위안 여행으로 한국에 여행을 왔던 남편이 일본에 돌아가서 다음에는 한국에 홀로 낚시 여행을 오겠다며 제가 다니는 여행사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를 저로 지목하며 여러 번 팩스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싱글이었고 계속 거절을 했지만, 결국에는 운전사 1명과 저 그리고 지금의 남편과 함께 강원도 양양의 은어낚시로 유명한 남대천으로 향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이 사람 간첩인가’ 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 종로에서 한국 지도 5000분의 1인 세밀한 지도를 사지 않나, 한국의 모든 낚시터를 거의 꿰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때론 계류낚시를 위해 비포장도로인 강원도 산속 여기저기를 다녔습니다. 가족들은 “그러다 북한에 납치되는 거 아니야?” 하며 걱정을 했습니다.(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 어떤 유명한 사람이 한국의 계류낚시 관련 책을 썼고, 읽는 가운데 감동을 받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한국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1급수 하천에만 서식하는 은어, 산천어, 열목어가 한국 하천에 많이 생존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안심하면서 늘 “자연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남대천에 은빛 찬란하게 빛나던 은어는 몇 년 후에 도로가 깨끗하게 포장되면서 눈에 띄게 줄어 아쉬웠지요. 그렇게 인연이 닿아 지금은 남편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 전 결혼할 다른 사람이 있어 프러포즈에 퇴짜를 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어 교사로 
대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딸아이의 아빠와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3년 만에 결혼생활은 마무리 되었죠. 딸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이었고 전 여행사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여행사의 어두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 일이 싫어지더군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보자고 결심했죠. 이를 이루기 위해 가슴은 아프지만 어린 딸아이를 1년 동안 친정에 맡겨놓고 일본 유학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 1년의 유학시절이 얼마나 고통의 시간이었는지… 그 당시엔 전화도 어려웠지만 화상통화도 없기에 자라나는 딸아이를 볼 수 없어 무조건 참아야만 했습니다. 공부와 알바로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돈을 아끼기 위해 두부만 먹었고, 빵집 앞을 지나갈 때면 달달한 냄새에 고통스러웠죠. 그렇게 신주쿠에 있는 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교사양성과정을 마쳤고 한국에 돌아와 일본어 강사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체에서 회사원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게 되었어요. S기업에서도 가르친 적이 있는데 1년 살다 온 저에게, 주재원으로 10년을 살다 오신 분이 강의를 들은 적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가르쳤나 싶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 남편
그렇게 홀로 딸아이를 키우다 지금의 남편 연락처로 한번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번호가 바뀌지 않았고 남편 또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재혼을 했고 초등 1학년이 된 딸과 함께 저는 1998년부터 일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본에서 아이 교육을 비롯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저처럼 국제결혼으로 일본에 오게 된 분이 없는지 수소문해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딸의 일본어 문제가 가장 시급했고, 학교 적응을 위해 제가 직접 통역을 하며 같이 등교한 적도 있었죠. 외국인 학생에 대한 언어지원을 하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학교 측에서 딸이 일본어를 못하니 특수학급(장애인 학급)에 넣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화를 내며“일본어를 못하는 것뿐이지 왜 내 딸이 장애냐”며 항의를 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반학급에 다닐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일본에서 적응하느라 고생하며 자란 딸은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잘 자라주어 국제학과를 졸업한 뒤, 항공사에서 일을 하다 지금은 호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어 교사로
남편 회사 일을 도우면서 일본에서의 삶에 적응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지인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딸의 일본어 공부를 위해 다니던 일본 교회에서 한국어 선생님이 필요하다며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하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한국어 교육은 독학으로, 조선어 교육학회에 가입해서 나날이 발전해가는 한국어 교수법을 배우고, 3년 동안 연수를 받아가며 나만의 교재를 만들어갔습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 달 동안 고려대 한국어양성과정을 이수한 뒤, 1년에 한 번 있는 한국어 교원 국가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어와 일본어의 교수법을 비교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양 언어의 문법과 발음 등을 비롯한 교수법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죠. 2006년부터는 일본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며, 드디어 2010년엔 정식교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면 알수록 늘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 고민을 이야기하자 남편의 지원으로 2008년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언어교육학을 전공하며 행복함을 만끽하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이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늘 누군가에게 가르치기만 했던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며 얻는 기쁨이 너무 컸습니다. 대학원에서 언어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지금까지 가르치며 풀리지 않았던 의문스러웠던 점이 하나씩 풀려가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 저는 나만의 노하우 교수법과 자료들을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나의 교수법 아이디어와 다른 사람의 교수법을 서로 업그레이드해서 아이들에게 정말 질 좋은 가르침의 방법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교포세대 후손들의 정체성과 민족교육에 대한 고민
요즘 저는 단순히 가르치는 교사에서 벗어나 교포세대의 후손 아이들에게 정체성과 관련된 민족교육(한국역사, 전통, 예술 등)과 더불어 실제 세상에 나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 중입니다. 시대가 바뀌니 교육도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 프로그램에 안주하려는 선생님들이 있고, 도리어 교육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선생님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근본적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답을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 역사, 사회를 경험케 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를 들면 한 아이가 너무 똑똑하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스스로 자신을 작게 보고 “나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살고 싶어요.”, “그냥 전문대나 갈래요” 하는 말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한국어,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도 보람되지만,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쳤을 때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룰 때가 있습니다.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과거 인생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전 일본목욕탕에서 우연히 아이들과 목욕을 하러 온 한국 분을 만나게 되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길 듣고 한국어를 가르쳐보라고 했었어요. 그 분이 잊지 않고 몇 년 간 공부를 한 후에 한국교원자격증을 따서 우리 학교에 강사로 오셨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여러 사람들, 지금까지 가르쳤던 학생들, 모두가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받아왔듯이 앞으로도 누군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 앞만 보고 달려 왔는데,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며 하고 싶었던 것을 해 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일본 전국을 돌아보기 위한 차박과 캠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별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일본 교토에서 김영지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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