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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군불 지피기

2022년 11월호(15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2.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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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군불 지피기

 

43.5도씨. 현재 나의 온도.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걱정 마세요. 중고거래로 유명한 앱의 제 매너온도랍니다. 수년 전, 유명했던 한 중고거래 카페에서 아이폰을 구입하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중고거래 경험이 별로 없었던 저는 순진하게도 판매자를 믿고, 물건을 받기 전에 먼저 돈을 송금했는데 보기 좋게 먹튀를 당했죠. 그 뒤부터 중고거래를 할 때 마다 또 사기를 당할까 늘 걱정을 하며 안전거래 결제 서비스 등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앱인데, 동네에서 직접 만나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2020년 5월, 내게 잘 맞지 않았던 커블체어를 흐뭇한 가격에 판매한 게 첫 거래의 시작이었어요. 그 뒤로 주위 분들에게 거래를 부탁 받을 정도로 즐겨 사용하고 있지요. 아빠는 뚝딱 물건을 팔고 사는 제가 신기하셨나 봐요. 스티커를 붙여 내다놓아도 가져갈까 말까 한 책장들까지 팔아보라고 은근히 푸시하시더라고요. 물론 시행착오도 꽤 있었습니다. 보온용으로만 사용할 밥솥이라 저렴하게 사와 뿌듯해 했는데, 무료나눔 해도 시원치 않을 물건을 사왔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죠. 하여튼 내가 필요한 물품들뿐 아니라, 주변에 스마트폰을 전화기로만 사용하는 언니들과 부모님의 물건까지 거래해 주느라 매너온도는 자연스레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나의 활동범위와 위상이 점점 커져가던 어느 날, 급히 야구글러브를 찾아봐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평소 KT위즈 팬으로 야구를 좋아했던 저였기에 흔쾌히 검색을 시작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사이즈도 다양하고, 종류도 다양해서 시간이 제법 걸렸어요. 그러다 포수글러브와 일반글러브를 같이 올려놓은 판매자가 있어 재빨리 채팅을 보냈습니다. 
 “거래 가능한가요?”, “시간은 언제가 좋을까요?”, “장소는요?”
이전처럼 하나하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판매자가 솔깃한 제안을 했어요.
 “포수 보호대도 드릴까요?” 웬 횡재!
 “그것도 있으면 좋은데, 혹시 그냥 주시는 건가요?”물어보니, 7천원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같이 주시겠다지 뭐예요. 너무 고마웠죠. 마지막으로 혹시 포수보호대에 사이즈가 있을까 싶어 물었습니다. 그때 돌아온 연이은 대답들!
 “제가 중1인데 커요.”
 “아 나 초6이지.”
 “구라가 상습이라;;;;”
허걱… 내가 지금 초딩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구라가 상습인 초딩이랑! 순간, ‘구라가 상습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건 뭐지?’, ‘그럼 이 글러브가 본인 게 맞을까?’, ‘거짓말로 나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대화를 더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죠. 거래 당일, 도대체 어떤 당돌한 초딩과 거래를 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 친구는 엄마와 형을 대동해 앞에 세운 뒤 조용히 뒤에 서 있더군요. 그 모습이 초등은 초딩이구나 싶으면서도, 그 친구도 내가 부담이 되고 못 미더울 수 있었겠구나 싶더라고요. 잠깐 의심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포수보호대를 나눔 해 준 것이 더욱 고마웠습니다. 

이번 거래에서 스스로 당근거래를 하는 아이와 그 판매금액을 아이에게 정확하게 돌려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물건의 가치도 매겨보고, 경제개념도 가지게 되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고요.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구라가 상습’이라는 그 아이의 채팅 글이 잊히지 않습니다.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신뢰’ 일 텐데, 그 아이는 어떻게 거짓을 습관처럼 익히게 된 것일까요? 제가 아는 분이 얼마 전에 최신 폰을 거래했다가 판매자가 폰의 힌지부분에 문제가 있는 걸 말 안하고 판매해 나중에 AS센터에서 자기 돈으로 수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듣는 저도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이런 경험은 아니라도 아무렇지 않게 약속을 어기고 살짝살짝 속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은연중에 배운 것은 아닐까요?

얼마 전, 제가 이용하는 이 앱의 상위 0.01%에 해당하는 매너온도 최상위 ‘인간 용광로’ 님의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직접 물건을 배달 해줄 뿐 아니라, ‘괜히 헌 거 샀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과거에 자신이 판매한 물건이 작동이 안 될 경우 A/S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펄펄 끊는 용광로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이 뜨끈해지는 마음 씀씀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작은 노력으로 신뢰의 군불을 지필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그 출발로 내가 판매하려는 물건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불편했던 점을 그대로 알려 주어 적어도 구매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거죠. 더 나아가 사용하면서 알게 된 물건의 특징들을 팁처럼 제공해 구매자가 더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돕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물건을 받은 것에 작은 감사의 반응을 한다면 내 매너온도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생각해보면 저도 엄마집의 커튼을 무료 나눔 할 때 커튼을 받으러 오신 분이 까만 봉지에 참외를 한가득 건네주셔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에서 쓰지 않는 운동기구를 무료 나눔 할 때에도 뽑아 쓰는 키친 타올을 받았었고요. 저도 이번 거래에서 포수보호대를 나눔 해 준 친구에게 야구장에 함께 가자고 초청을 했었죠. 무료 나눔이 아닐지라도 거래를 하러 갈 때 좋은 시 한편이라도 코팅을 해서 선물하면 괜찮을 것 같고요. 아~ 생각만 해도 따뜻해지는 것은 저만의 기분만은 아니겠죠?

 

경기도 안양시 이한결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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