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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에서 만난 ‘세한도’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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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5]

경복궁 경회루에서 만난
‘세한도’

 

경복궁 경회루는 조선 태종 때 완공된 건물이다. 임금과 신하의 즐거운 만남[경회(慶會)]이 이뤄지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훼손되었다가 고종(재위, 1864~1907) 때 흥선대원군이 중건하였다. 경회루는 저 멀리 인왕산과 북악이 눈에 들어오고 바로 옆의 연못과 어우러져, 건물에 오르면 저절로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건물이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에 유배 갔을 때 1844년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추사가 잘 나갈 때 그렇게 찾아왔던 사람들이 제주도 유배가 길어지자 하나 둘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이상적은 그렇지 않았다. 잘 나갈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한결같았다. 제주도에 유배 간 스승에게 여러 차례 중국에서 나온 책을 구해다 주었다. 세한도는 바로 그런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세한도에는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가 그려져 있고 옆에는《논어》와《사기》를 인용하여 이상적의 고결한 마음을 표현한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세한도의 ‘세한(歲寒)’은 ‘추운 겨울’이란 말로《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즉 ‘추운 겨울이 되어도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말에서 따 온 것이다. 제자 이상적의 한결같은 마음을 기리는 그림의 제목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경회루의 현판은 검은 색 바탕에 금색 글씨다. 검은색은 물을 의미하여 화재를 막는 의미도 있다. 현판의 글씨는 신헌이 썼다. 신헌은 강화도조약 때 우리 측 대표를 맡았다. 그런데 신헌은 추사의 제자이기도 했다. 추사는 신헌의 어떤 글씨는 자기보다 낫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흥선대원군도 추사의 제자였다. 둘은 서로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다. 대원군이 머물던 운현궁의 ‘노락당’ 현판도 신헌이 썼다.

경회루


경회루 주위에는 여러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그 가운데 주목을 끄는 두 나무가 나란히 서있다. 바로 송백, 즉 소나무와 잣나무 또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다. 밑에 떨어져 있는 잎을 주워보면 소나무는 날카로운 솔잎이 2가닥이고 측백나무는 그렇게 날카로운 잎은 아니다.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의 ‘송백(松柏)’은 일반적으로 소나무와 잣나무로 해석해왔다. 최근 백은 잣나무가 아니고 측백나무로 불러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지금은 박물관마다 측백나무로 해석하고 있다. 경회루 주위에도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나란히 세워져 있기도 하다. 나란히 서 있지 않지만 좀 떨어진 곳에 잣나무도 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구별하기 쉽지만 소나무와 잣나무는 언뜻 구분하기 힘들다. 잣나무 밑에 떨어진 잣 잎을 보면 5개의 날카로운 잎이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소나무는 두 가닥, 잣나무는 다섯 가닥이다. 두 나무는 가닥의 개수로 구분된다.
  그런데 ‘백’을 잣나무로 부른 시기는 오래다. 신라 향가의 ‘찬기파랑가’에도 ‘백’이 보인다. 마지막 구절이 ‘아아, 잣가지 높아 서리 모르시올 화랑이여’인데 여기의 ‘잣 가지’에 해당되는 한문 원문은 ‘백사질지(栢史叱枝)’다. ‘백’을 잣으로 보았다. 세한도의 세 그루 나무는 잎을 확인할 수 없는데 고목에서 뻗어 나온 가지의 잎은 개수를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잎이 5개다. 의도적으로 5개를 그린 것 같다. 아마도 세한도의 송백 그림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말하는 듯하다.
세한도에는 집 한 채가 있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김정희와 한결같은 제자 이상적일까. 아니면 김정희가 중국에 갔을 때 만난 스승 옹방강과 완원일까. 스승과 제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경복궁에 경회루가 있다. 경회루엔 임금과 신하의 즐거운 만남이 있다. 세한도의 송백은 둘의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회루의 만남도 주변의 송백처럼 한결같은 마음이었을까?
세한도에서 추사의 제자 이상적을 떠올리고, 경회루에서 추사의 제자 신헌과 흥선대원군을 떠올린다. 세한도와 경회루의 배경에 송백이 서 있다. 또 다른 세한도가 경회루에 펼쳐져 있다. 경회루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상쾌해지고 깨끗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거기에 세한도를 떠올리며 권세와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던 옛사람들의 고귀한 마음도 내 안에 담아보면 어떨까.
이 시대는 어떠한가. 권력을 잡으면 감언이설로 아부를 하다가 권력을 잃으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시대다. 경복궁의 경회루와 추사의 세한도가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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