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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인의 양심은 아직도 빨간불?!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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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인의 양심은 아직도 빨간불?!

 

문구점을 경영하면서 손님이 놓고 간 돈지갑을 십 수차례 돌려주었다. 23년째 되는 재작년 어느 날, 손님이 놓고 간 돈지갑을 수소문까지 하면서 소재지를 알아내어 돌려주었는데 고맙다며 초코렛 상자 하나를 내게 선물했다. 아들과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돌려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라 감격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칠레 산티아고다. 

그때 그 시절, 한국인의 양심
1966년에 서울 금호동에서 김포공항 근처의 방화동으로 이사했다. 이유는 형이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변두리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초가집 한 채를 사게 되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당시 어른들은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으니 초가집이 우리 식구 최초의 재산이 된 것이다. 용산의 육군본부 공병감실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본부에서 중고자재를 헐값으로 공급받아 집을 증축하면서 기와집으로 둔갑시켰다. 말도 못하게 행복했다. 방이 여러 개 생기면서 당시 ‘버스차장’으로 불리우던 누나들이 대거 몰려와 셋방을 살았다. 차장누나 중에 요령이 좋은 누나들은 ‘삥땅’을 잘 쳤다. 버스회사 돈을 빼돌리는 나쁜 짓이었는데도 자랑스러워했다. 듣는 사람들조차 요령 있다는 것에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가끔 요령이 없거나 서투른 누나들은 ‘삥땅’치다가 걸리기도 하는데 욕이란 욕은 다 먹고 회사에서 당장 쫓겨났다. 주로 새벽에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함께 세를 들어 살던 우리 집을 떠났다. 

칠레인의 양심
지금 살고 있는 칠레의 치부를 들출라니 부득이하게 우리네 못살던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을 끌어 땡겨 왔다. 그래야 공평할 듯해서 말이다. 

25년 전,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원단가게에 취직했을 때의 일이다. 저울 눈금을 얼마나 속이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감당이 안 되어 보름 만에 퇴사했다. 1년 뒤 옷가게에 취직했는데 여점원들이 참으로 요령 있게 옷들을 훔쳐갔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돈 통을 열어보면 돈이 얼마간 비어있었다. 그리고 2년 뒤 아내와 문구점에 취직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옷과 달리 문구는 더욱 작아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훔쳐갈 수 있다. 과연 여러 차례 직원들이 훔쳐가는 것이 적발되어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 직원들이 이르거나 눈이 좋은 아내가 주로 잡아내었다. 직원이 훔쳐가다가 적발되면 잘못했다고 말한다. 이때 경찰을 개입시키지 않으면 도리어 그 다음날 노동청에 고발하여 돈을 뜯어간다. 당연히 오리발을 내밀고 노동청 직원들은 당연스럽게 노동자 편에 서기 때문이다. 

잠시 또 삼천포
칠레에 도착하기 전, 독일에서 7년 반을 살면서 양심을 더욱 훈련시킨 나는 이 어수룩하고도 못돼먹은 칠레인들의 국민성을 개조시키겠다고 작심했다. 어물쩍 넘어가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한판 붙었는데 그것은 전기세였다. 2341페소가 틀렸으니 내놓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2300페소를 내게 건네주었다. 41페소를 더 내놓으라고 했더니, “41페소가 그렇게 중요하니?”라고 관리소장이 반문했다. 나는 눈을 부라려가면서 힘 있게, “그래 중요하다! 나 독일에서 살다왔다 왜?”라고 대꾸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잔돈을 마저 주었다. 말도 못하게 기분이 좋았다. 한국인 세입자들에게 특히 악명 높은 관리소장이었기에 더욱 통쾌했다. 아파트를 떠날 때 한국인들은 단 한 번도 한 달 치 보증금을 돌려받은 적이 없다고 했으니 얼마나 악명 높은 관리소장이었겠나. 전부 지 주머니에 들어간다고 하더라. 법규도 제멋대로 만들어 놓고 벌금을 만들어 뜯어 먹는 재주도 각별했다. 아들과 아들친구가 수영장 근처에서 놀다 헛발을 디뎌 수영장에 빠졌는데 수영장 운영시간이 지난 시간에 빠졌기 때문에 벌금을 내라 해서 별 수 없이 벌금을 냈다. 닭 한 마리 키웠다고 벌금 낼 뻔했다가 세게 항의하여 무마시켰다. 우리 부엌의 압력솥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고 벌금을 때려 또 한판 싸워 이기고 말았다. 기가 센 아내의 승리였다. 아무튼 그치랑 마주칠 때마다 세게 나갔더니 희한하게도 나와 친하려고 했다. 몇 년 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방이 셋 있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놀랍게도 관리소장이 한 달 치 보증금을 돌려줬다. 떼일 각오까지 했었는데 받았으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칠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하면서부터 오늘날까지 똑같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교통도덕!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건너가는 사람들 말이다. 가끔 경찰들도 건너간다. 경찰이 있어도 상관없이 건너간다.(물론 차들은 신호등을 지킨다. 안 그러면 벌금을 내야하니까) 딱 한 번 교통캠페인이 있었다. 우리 칠레도 교통도덕 지키자는… 무단횡단 했을 때 적발되면 울타리에 한 시간쯤 가둬놓은 후, 훈방하거나 몇 시간의 교통안전 교육을 받게 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튼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25년을 살다보니 어느 것이 옳은 건지 헷갈린다. 어른이 자기 안전을 스스로 확인해 안전하다고 확신한다면 빨간 신호등에서도 건너 갈 수 있는 나라, 참 좋은 나라 아닌가? 

2021년 5월7일, 잃어버린 돈지갑을 돌려주어서 고맙다고 FERRERO초코렛을 선물로 받음. 칠레에서는 흔치 않은 일.

빨간 우산 이야기
한 달 반 전, 수박과 야채를 토요 장에서 사가지고 집에 도착했는데 뭔가 허전했다. 아~ 이런! 어딘가에다 빨간 우산을 놓고 온 것이다. 혹시나 해서 다시 토요 장에 가보았다. 수박장사 아저씨가 가지고 있었다. 칠레 산지 24년 만에 처음으로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은 것이다. 대단히 기뻤다. 아들이 “칠레인데 다시 가 봐야 집어가고 없을 거예요.”라 했는데…

이제 칠레 사람들도 더디지만 양심이 밝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양심이 지금은 무척 밝은 것처럼!!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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