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오토바이 타는 여자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2. 19:49

본문

오토바이 타는 여자

 

나의 첫 책《안녕, 나의 한옥집》에서 엄마에 대한 부분을 쓸 때 그 장 제목에 대해 고민을 했다. 엄마를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 어떤 이미지가 좋을까. 엄마는 젊은 시절 시를 썼으니까 ‘시를 쓰는 여자’ 어떨까? 아, 너무 평범하다. 한옥집에서 세 딸을 키우고 시부모와 남편을 봉양하며 가정 선생님으로 학교 일까지 야무지게 해냈던‘24시간이 모자라’의 엄마.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그러다 내 글 중에서 찾아낸 구절이‘오토바이를 타는’그녀였다. 24시간이 모자라던 그녀의 발이 되어준 소중한 오토바이. 엄마는 자그마한 키와 몸집, 강아지 털 같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오토바이에 잘 어울리는 가죽재킷 대신 직접 만든 하얀 원피스와 스카프를 두르고, 역시 직접 만들어 준 포플린 원피스를 입은 세 딸을 싣고 그녀는 공주 시내를 달렸다. 그녀는 천상 ‘오토바이 타는 여자’였다. 그렇게 나는 첫 책 중 어머니에 관한 그 장의 제목을 찾았고, 그것은 몇 달 전 출간된 나의 두 번째 책의 제목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지어놓고는 나 스스로 몇 번이나 감탄을 하고 만족을 했다.《오토바이 타는 여자》라니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하지만 내가 스스로 만족을 하는 것은 비단 제목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세월을 오토바이가 잘 상징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고도 작은 공주시내, 교육의 도시이자 양반의 고을. 그 작은 도시에 대학이 세 개가 있을 만큼 교육이 이끌어가는 도시였고, 양반의 고을이라는 자부심 덕에 그지없이 보수적이기도 한 곳이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주’에서 엄마는 교육자로서, 또 한옥집 여인네로서 한 세월을 살아냈다. 그 세월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 자명하므로 ‘살아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지 못했다면 결코 통과해내지 못했을 세월이었다. 그곳에서 늘 바쁘고 고단했던 엄마에게‘오토바이’는 사람들의 시선도 어쩌지 못한 새로운 여성의 모습이었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여자의 애달픔이었다. 걸어 다닐 때보다는 자전거를 탈 때가 시간을 얼마간 단축해 주었다면, 오토바이는 그 몇 배의 시간을 여자에게 벌어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는 공주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딸들의 ‘황금박쥐’가 되어 어디든 나타나 주었다. 내게 기억되는 어린 시절 엄마는 오토바이 위에 올라 야무지게 양 핸들을 잡고 부릉부릉 시동을 걸며“타! 얘들아!”를 외치던 세상 가장 멋진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오토바이와 함께 잃어버린, 과거의 시를 찾아주고 싶었던 게 바로 내가 두 번째 책《오토바이 타는 여자》를 출간하게 된 계기였다. 엔진소리 컸던 오토바이 뒤로는 여자의 시와 서정이 있었다. 젊은 날 어느 곳에 사뿐히 놓고 온 그녀의 시를 찾아주고 싶었다. 제목은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오직《오토바이 타는 여자》였다. 이 제목 덕분에 재미있는 일도 생겼다. 책 제목을 인스타그램에 태그해 놓자 계속해서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들의 온갖 사진들이 내게 저절로 보이는 것이었다. 다 그냥 넘겼지만 어느 수입 오토바이 회사의 사진들에 눈길이 갔다. 참으로 예쁘고 앙증맞은 여성용 오토바이 홍보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은 꼭 오래 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담당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아 엄마의 사인을 담은 책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메세지를 받은 담당자가 이렇게 답했다. 


“지금도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가 흔치 않고,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시절 오토바이를 타신 어머니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면서 책과 함께 이벤트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본인들의‘오토바이’에도 그런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재밌고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이 시대의 ‘오토바이를 타는’ 젊고 트렌디한 여성들에게 사십여 년 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여자가 전해주는 메시지. 이 또한‘오토바이’를 통해 그리고 엄마의 시가 담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인연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세상에 엄마의 오토바이를, 엄마의 시를, 한 세월 살아낸 엄마의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담하고 정겨운 공주 시내 아니 그때는 공주 읍내의 한옥집을 나와 제민천변, 대통다리를 건너 사대부중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날아가던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를 기다리다 저 멀리 골목 끝에서 파란 오토바이가 나타날 때면 방방 뛰고 즐거워하던 어린 나의 모습도 보인다. 지금은 나보다 훨씬 작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엄마의 자그마한 어깨, 여린 허리를 마치 아기오리처럼 꽉 부여잡고 오토바이에 올라탄 나와 언니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토바이 타는 여자, 나의 엄마가 보인다.

아침이면 원피스를 휘날리며 하얀 모자를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여자의 모습은
시내의 명물이 되었다.
오토바이 앞에 딸 하나,
뒤에 딸 둘을 태우고 다니는 모습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를 시작으로 시내의 여교사들도
하나둘씩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가게에서 고맙다며 추석에 갈비를 보내왔다.
한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작은아이가 말했다.
“엄마, 언니가 없어.”
놀란 여자가 멈추어 보니
저만치 뒤에 큰아이가 떨어져 있었다.


- 《안녕 나의 한옥집》중에서

 

 

 

미국 메릴랜드에서 임수진
밤호수 블로그
blog.naver.com/moonlake523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